뤼데스하임은 프랑크푸르트에서 60km쯤 떨어져 있다. 작고 예쁜 골목길, 마을을 둘러싼 포도밭, 쉴 새 없이 유람선이 오가는 라인강은 그 자체가 낭만이며 아름다운 풍경화다. 뤼데스하임은 유람선을 타려는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도시로서의 이미지가 매우 강하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큰길에서 벗어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보면 뤼데스하임 특유의 소박하고 정감 어린 풍광에 금세 매료되고 말 것이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아기자기한 마켓도 열린다.
뤼데스하임 최고의 명물은 ‘독일에서 가장 예쁜 골목길’을 자처하는 드로셀가세(Drosselgasse)다. 일명 ‘티티새 골목’이라 불리는 좁은 골목길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브라스밴드의 경쾌한 폴카 연주와 노래도 끊이지 않는다. 따라서 뤼데스하임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유롭게 골목길 이곳저곳을 걸어보는 게 제격이다. 기념품 가게로 들어가 간단한 선물을 준비해도 좋다. 뤼데스하임의 권할만한 기념품으로는 각종 가죽 제품을 비롯해 값이 싸고 색상도 다양한 스카프, 원목으로 만든 뻐꾸기시계, 독특한 모양의 뤼데스하이머 커피잔 등이 있다.
뤼데스하임에서 꼭 해봐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상큼한 과일 향이 나는 ‘뤼데스하임 와인’을 맛보는 것이다. 골목길을 걷다가 지치면 마음에 드는 카페로 들어가 와인을 마시거나, 뤼데스하임에서 만들어지는 브랜디인 ‘아스바흐 우어알트(Asbach Uralt)’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아스바흐는 1892년부터 뤼데스하임에서 만들기 시작했으며 알코올 도수는 40도다. 뤼데스하임의 와인은 그냥 보통 와인이 아니다. 바로 이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슬링(화이트 와인)의 명산지이기 때문이다.
화이트 와인의 주요 품종으로는 샤르도네(Chardonnay), 리슬링(Riesling), 쇼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슈냉 블랑(Chenin Blanc), 세미용(Semillon)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뤼데스하임이 속한 ‘라인가우(Rheingau) 지역에서는 고급 리슬링을 생산하고 있다. ‘라인강 유역의 와인 산지’를 의미하는 라인가우 지역은 호흐하임(Hochheim)부터 로르히(Lorch)까지 약 36km 구간을 가리킨다. 그 중심에 있는 마을이 바로 뤼데스하임이다. 리슬링은 라인강변의 추운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품종이다. 하지만 충분한 햇볕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라인강변의 포도밭들은 대부분 급경사의 비탈면에 조성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햇볕을 더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라인가우의 리슬링은 다른 지역에 비해 향은 조금 약한 반면 깊은 맛을 지니고 있다. 입맛에 따라 다르지만, 뤼데스하임을 찾아온 여행자들은 일반적으로 스위트한 리슬링을 선호하는 편이다.
뤼데스하임 주변에는 아이스 와인으로 유명한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Schloss Johannisberg)를 비롯해 슐로스 폴라즈(Schloss Vollrads), 슐로스 라인하르트하우젠(Schloss Reinharthausen) 등 많은 와이너리가 있다. 이 가운데 슐로스 폴라즈는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세계 곳곳에 현존하는 와이너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다. 1211년에 와인을 만들어 수도원에 판매했다는 전표가 800년이 넘는 역사를 대변한다. 슐로스 폴라즈의 와인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직접 찾아와서 맛을 보고 그 후기를 남겼을 정도로 유명하다.
뤼데스하임에는 리슬링 말고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있다. 커피 특유의 쓴맛보다 톡 쏘는 맛이 더 강한 ‘뤼데스하이머 커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뤼데스하이머 커피를 주문하면 종업원이 테이블로 재료(아스바흐 미니어처 1병, 각설탕 3개, 커피, 휘핑크림)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는 잘록하게 생긴 커피 잔에다 아스바흐 미니어처를 붓고, 각설탕을 넣은 후 불을 붙이고, 커피를 부은 후에 휘핑크림을 얻으면 순식간에 뤼데스하이머 커피가 완성된다. 커피의 쓴맛과 생크림의 단맛, 알코올 도수 40도의 아스바흐가 만들어내는 맛은 과연 어떨까?
뤼데스하임의 중심가인 드로셀가세의 노천카페에서 흥겨운 시간을 보낸 여행자들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골목에서 빠져나와 라인가우 와인박물관에 들르거나, 곤돌라를 타고 니더발트 전망대까지 올라가면서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라인강의 절경을 감상한다. 곤돌라가 도착한 곳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게르마니아 여신상이 나타난다. 38m 높이의 이 여신상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이긴 프로이센 왕국의 빌헬름 1세에 의해 세워졌다. 니더발트 전망대에서 뤼데스하임 중심지까지는 포도밭 사이로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이어져 있다. 올라갈 때는 곤돌라를 타고, 내려올 때는 포도밭 사이로 천천히 걸어서 내려오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이 길은 독일의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즐겨 걸었다 해서 ‘브람스의 길(Brahmsweg)’이라 불린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여행자들이 뤼데스하임을 즐겨 찾는 이유는 또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이네의 시로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이 있기 때문이다. 라인강의 얼굴과도 같은 로렐라이는 뤼데스하임과 장크트 고아르스하우젠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로렐라이’하면 강변에 우뚝 솟아있는 높이 134m의 암벽을 가리키지만 독일 가곡 ‘로렐라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독일의 후기 낭만파 시인인 브렌타노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삼은 ‘라인강 설화’가 ‘로렐라이’의 원조격이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이 설화를 바탕으로 시를 쓰고, 프리드리히 질허는 곡을 붙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독일 가곡 ‘로렐라이’다.
‘프랑스인의 머리에 독일인의 마음을 가졌던 시인’이라 불리던 하인리히 하이네. 라인강변의 뒤셀도르프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라인강을 ‘마음의 고향’ 또는 ‘평온한 안식처’로 삼았다. 누구보다 라인강을 사랑했던 시인 하이네. 파리 몽마르트르 묘지의 그의 묘석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새겨져 있다.
“언젠가는 길에서 지칠 나그네의 마지막 휴식처는 어디일까 / 남국의 야자나무 그늘일까 / 아니면 라인강변의 보리수나무 아래일까”.
뤼데스하임은 분명 고즈넉하고 멋진 여행지이지만 라인강 유람선의 주요 승선지로도 유명하다.
라인강은 독일을 대표하는 긴 물줄기다. 알프스 산자락에서 발원해 유럽의 여러 나라를 지나는 라인강의 길이는 약 1,230km. 이 가운데 약 700km가 독일에 속해 있다.
라인강은 그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인해 오랜 세월을 두고 많은 작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이네를 비롯해 괴테, 빅토르 위고, 바이런 등과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이 라인강의 절경을 노래했다. 라인강은 쾰른에서 마인츠까지 이어지는 약 180km의 유람선 운행구간이 아름답다. 특히 ‘마인츠–뤼데스하임–코블렌츠’를 잇는 약 90km 구간이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
라인강을 끼고 있는 라인계곡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중북부 라인계곡(Upper Middle Rhine Valley)’에 오래된 고성과 예쁜 마을이 밀집되어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은 지난 2002년에 그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중북부 라인계곡’은 독일 라인란트팔츠 주의 빙엔에서 코블렌츠까지 약 65km 구간을 가리킨다. 이 구간에 로렐라이 언덕이 있으며, 빙엔은 뤼데스하임의 이웃 마을이다.
독일 여행. 특히 뤼데스하임을 찾아온 여행자라면 아무리 일정이 빠듯하더라도 한 번쯤은 유람선을 꼭 타 봐야 할 일이다. 오래도록 간직할 만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강 언덕의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펼쳐진 포도밭, 협곡 곳곳에 세워진 중세의 고성들, 따사로운 햇살을 벗 삼아 유람선 갑판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여유로운 모습 등 어느 것 하나 낭만적이지 않은 게 없다. 일명 ‘로맨틱 라인’이라 불리는 마인츠–코블렌츠 구간의 유람선 소요시간은 약 5시간이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라면 뤼데스하임에서 장크트 고아르스하우젠까지의 구간을 선택해도 좋다. 이 구간에서는 로렐라이 언덕, 팔츠그라펜슈타인성, 슈탈레크성을 비롯한 많은 고성들을 볼 수 있다. 뤼데스하임에서 장크트 고아르스하우젠까지는 약 30km이며, 유람선으로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 유람선 안에서는 간단한 음식, 커피, 와인, 맥주 등을 판매하고 있다. 그동안 유레일패스 소지자는 KD라인에서 운영하는 유람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으나 2015년부터는 20%만 할인을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