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윤 교사는 밝고 유쾌했다. 처음 만나는 얼굴임에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스스럼없이 사람을 대하니, 마주 앉은 이조차 오랜 친구처럼 절로 마음이 열린다. 누가 보나 교사라는 직업이 잘 어울려 보이지만 양경윤 교사는 사실 처음부터 교사를 꿈꾼 건 아니었다. 교사였던 큰언니가 교대에 원서를 넣어보라고 한 게 시작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너무나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냈던 그는 무난하게 교사가 됐고 결혼과 동시에 워킹맘으로서의 험난한 길을 걸으며 바쁘디 바쁜 교육자의 삶을 살았다.
“제가 하브루타 수업을 만나게 된 시기는 교육계에 학생들의 배움을 좀 더 강조하는 교육 풍조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때였습니다. 1990년대의 열린 교육과는 조금 다른 시조였고 제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한 학교 교육의 변화의 바람이 거세어졌어요. 저는 2012년에 수석자격 연수를 받았는데 그때 배움 중심 수업의 여러 형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거꾸로 학습, 배움의 공동체, 하브루타 등등 이 수업들의 공통점은 모두 학생들이 잘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어요.”
여러 형태의 수업 중에서 양경윤 교사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하브루타 수업이었다. 배움의 시작을 학생들 간의 대화로 만드는 것, 교사가 디딤돌이 되는 질문을 다시 제시한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던 것이다.
“제가 질문을 접하고 보니 배움은 자신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어요. 대한민국 교실 현장에 적합한 형태의 질문 수업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하브루타 교육연구회’도 그즈음 만들어졌다. 교사들의 자발적 전문적 학습공동체인 하브루타 교육연구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양경윤 교사를 포함, 단 두 명이 시작했다. 이후 연구회에 참여하는 교사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수업 변화의 저변 확대를 위한 이 연구회는 5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다. 수석교사로서 연 200회 이상 열고 있는 그의 공개 수업은 늘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특히 하브루타 수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교사들의 관심은 절대적이다. 오늘 3교시, 6학년 학생들과 함께하는 하브루타 수업 참관을 위해 걸어가는 길은 그래서 덩달아 꽤나 설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수업의 기본 패턴을 바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우리나라 교실은 모둠을 버리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모둠을 파기하고 짝으로만 이루어지는 수업입니다.”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아주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한다. 오늘 수업은 소설 <어린 왕자> 중 ‘꽃’이 나오는 대목이다.
학생들이 펼쳐놓은 노트를 슬쩍 들여다보니 빼곡하게 적어 놓은 질문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왕자는 꽃의 어떤 부분 때문에 설을까?”, “어린왕자는 왜 허영심 많고 심술궂은 꽃을 잘 돌봐주었을까?”, “꽃은 왜 어린 왕자를 계속 귀찮게 굴었을까?”
꽃이 등장하는 그 짧은 단락을 두고 빼곡하게 질문이 들어차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양경윤 교사의 하브루타 수업은 일대일이 아니다. 계속 짝을 바꿔가며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 형식이다. 이는 유대인의 하브루타와는 다른 부분으로 그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효과적인 결론이다.
“똑같은 주제라도 사람이 바뀌면 얘기가 다르게 나와요. 여자하고 남자하고도 다르고 나와 친한 아이, 내가 한 번도 말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하고도 다르죠. 이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하는 상대를 바꾸면서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뉘앙스를 무의식에 저장시키는 겁니다.”
학생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질문과 답은 학생들이 서로를 알게 되는 중요한 단초가 되며 교사 역시 학생들을 좀 더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교실 안은 학생들의 질문과 답으로 시끌벅적했다. 어느새 모여든 교사들도 뒤에서 이 수업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질문과 답하기 시간에 이어 어린왕자와 꽃의 관계성에 대해 양경윤 교사가 이야기를 하다가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말로 표현해야 할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까?” 이미 친구들과의 문답에서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진 학생들이 너도나도 손을 든다. “저는 ‘모쏠’인데요!!!” 한 남자아이의 말에 그만 뒤에서 참관하던 선생님들까지 폭소를 터뜨렸다. “행동만 하면 모르니까 말로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로만 하면 오해를 하거나 짜증이 날 수도 있어요!”
깜짝 놀랄 정도로 진지하고 알찬 답들이 쏟아져 나오니 쉬지 않고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수업 시간은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지나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아무도 소외되지 않았고 비어 있는 노트는 단 한 개도 없었으며 학습의 몰입도도 아주 높았다.
양경윤 교사는 이 아름다운 하브루타 수업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꼭 필요했던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저는 하브루타 수업 이전에 감사일기를 썼습니다. 처음 3년간은 실패했어요. 감사거리가 매일 같은 패턴으로 나왔기 때문이지요. 감사일기가 성공한 것은 구체성을 갖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제가 놓치는 부분까지 생각을 발전시키니 감사일기의 양상이 아주 달라졌어요.”
양경윤 교사는 감사일기를 쓰면서 한쪽 방향만 보던 걸 180도로 보게 되고 나중에는 360도로 보게 됐음을 고백했다.
“다양하게 보니까 다양한 시선으로 보게 됐어요. 애들의 질문이 허접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 이상한 질문도 많지만 그게 삶의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죠. 이상한 질문들을 골라서 수업 속으로 끌고 올 수 있는 게 바로 교사의 역할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매사에 감사하는 교사로 변하자 학생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많이 웃게 됐다는 것이다. 하브루타 수업의 진지한 대화 속에서 학생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걸 보는 것은 양경윤 교사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하브루타 수업은 질문과 대화를 통해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단계가 어디인지는 알 수 있는 과정입니다. 안다·모른다를 구분하고, 할 수 있다·할 수 없다를 구분해야 자신이 어디로 나아갈지 방향을 정할 수 있어요. 도덕규범은 가르친다고 배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꺼냄으로써 내면화를 만들어가는 거죠.”
교사 자신이 행복함으로써 학생들을 행복하게 하고 다시 그 학생들로부터 행복을 얻는다는 양경윤 교사는 이를 두고 ‘힐링 수업’이라고 표현했다.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를 구원하고 치유하는 시간. 그는 확실히 대한민국 교실의 수업 시간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재정립하는 중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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