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따라 소리 따라 함께 노나니,
이 아니 즐거울 소냐
남도의 가을에는 구성진 소리가 있다. 아름다운 산자락이 있고 빛깔 고운 단풍도 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우리 역사와 인물들이 남도의 가을 결 속에 촘촘히 자리를 잡은 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2% 부족한 도심 속 가을을 떠나 100%의 가을을 만끽하러 떠난 은빛동행 여행길, 시종일관 흐드러진 행복이 찾아든 그 여정에 함께 동참해보자.
- 글. 이경희
- 사진. 김도형
뻔한 여행은 가라, 새로운 여행이 왔다
지난 10월 31일 오전 10시 30분. 오늘은 한국교직원공제회 은빛동행에서 남도풍류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서울, 강원, 경상도 등 전국에서 모여든 회원들 모두가 설렘과 기대를 한가득 안고 목포역에 차례차례 도착한다. 오늘 은빛동행은 그 어느 날보다 특별하다. 전형적이고 뻔한 단풍놀이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남도의 풍류를 멋스럽게 즐길 수 있는 뜻깊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도풍류여행을 이끌어줄 사람은 국악이론가 변상문 씨다.
“국악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우리의 역사, 국악으로 우리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를 연구하고 그 연구결과의 산물을 교육자료로 생산하며 생산된 교육자료를 공연 형태로 융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전문가”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회원들 모두가 ‘오늘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큰 박수를 보낸다. 두 대의 전세버스가 형형색색으로 물든 가을의 복판을 뚫고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두륜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이다. 변상문 씨는 “오늘 자신이 설명하는 내용은 교과서에는 없는, 자신이 발품을 팔아 정리한 날 것의 이야기”라며 회원들의 기대치를 더더욱 높였다. 먼저 금강산도 식후경, 대흥사 입구에서 압력 돌솥으로 지은 찰밥과 나물, 생선 등이 가득 차려진 푸짐한 남도식 반찬으로 맛있는 점심 식사를 마쳤다. 뱃속이 든든해지자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드디어 남도 풍류를 즐길 준비가 완벽히 된 것이다.
다산을 만나다, 풍류를 만나다
대흥사 입구에서 경내로 들어가는 길고 아름다운 숲길에 회원 모두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에 위치한 대흥사는 신라 진흥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으며 유독 유명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특히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일화로 아주 유명한데 추사 김정희가 귀양길에 대흥사에 들러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현판에서 내리고 자신의 글씨를 올렸다가 훗날 귀양에서 풀려나 다시 원교의 글씨로 돌려놓을 것을 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일까? 흥미진진한 역사 야화를 들은 회원들 모두가 부지런히 대흥사를 누비며 기념사진을 찍고 아름다운 글씨들이 새겨진 현판을 꼼꼼히 올려다본다. 은빛동행 회원들이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다산초당이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했던 이곳은 강진의 깊숙한 숲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외딴섬 같은 곳이다.
10분 거리라지만 곳곳에 드러난 나무뿌리와 거친 돌 때문에 숲을 오르는 발걸음이 쉽지는 않다. 올라가는 길 도중에 만난 다산의 제자인 윤종진의 무덤은 특히나 회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스승 다산의 저술을 후대에 남기고 다산계를 조직해 평생 다산을 기린 인물. 오늘날 그 의미가 퇴색해가는 스승과 제자의 연이 새삼 기껍게 다가온다. 도착한 다산초당은 기와집 두 채가 나란히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다산이 기거했을 때에는 지금보다 훨씬 허름하고 누추한 모습이었을 터, 그 안에서 변상문 씨가 들려준 다산의 이야기 안에는 600여 권에 해당하는 연구 보고서를 만들어낸 학자의 사상이 들어있고 유배 종료 서류가 관청에 묻히는 바람에 억울하게 5년을 더 유배살이를 했다는 안타까운 뒷얘기도 있었다. 다산이 좋아했던 풍류 사상이 깃들어있던 피리와 태평소 소리가 안마당에 울려 퍼진다.
‘한오백년’의 구성진 소리가 동백나무 가지에 부딪치고, 소리의 떨림이 차를 마셨던 넓고 편편한 돌 위에 머무른다. “이런 여행은 1박 2일쯤 하고 싶다”는 어느 회원의 속닥거림에 깊게 동감을 한 순간이다.
우리 소리의 얼과 흥을 깨닫다
자,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장소다. 강진 사람들이 사랑하는 시인이자 국가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수 출신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이다. 소월과 견줄 만한 남도 시인으로 꼽히는 영랑은 1930년대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아름다운 순수시와 서정시를 썼고 동시에 판소리 고수였던 인물. 이렇듯 의미 있는 이곳에서 아주 특별한 순서가 마련됐다.
대금, 아쟁, 피리, 장구, 판소리와 함께 하는 소리공연이 펼쳐진 것이다. 영랑생가의 작은 툇마루에 하얀 한복을 입고 앉은 국악 연주자들 그리고 소리꾼들이 등장하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변상문 씨가 들려주는 각 지역의 소리 얘기에 귀를 기울인 회원들은 이어서 아쟁산조, 남도와 경기지역의 민요 메들리, ‘날 좀 보소’, ‘진도아리랑’, ‘사랑가’, 트로트 등 신명나는 소리와 가락을 즐기며 흥겨운 어깨춤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소리의 본고장 남도에서 우리 소리의 얼과 흥을 제대로 느낀 오늘 하루! 회원들 모두의 얼굴에는 그 어떤 여행과도 닮지 않았던, 아주 특별했던 오늘이 준 행복으로 생기가 가득 넘친다.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또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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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여행으로
목석원(고객지원팀 차장)
더 풍요로운
가을을 느끼셨길…”이번 여행은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회원님들과 동반가족 총 120명을 모셨습니다. 남도 가락을 통한 풍류 여행이 가을과 잘 어울릴 것이라 판단해서 기획했는데 회원분들이 무척 좋아해서 보람이 큽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네 흥을 북돋고, 마음속의 화는 식히면서 우리 소리를 통한 우리 얼 찾기에 도움을 받으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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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악을
정찬영 회원·아내 윤영숙
제대로 느끼다”교직원공제회 홈페이지를 보고 아내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신청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먹을거리, 들을거리, 볼거리가 풍성했는데 특히 귀를 호강시켜준 들을거리가 정말 좋았어요. 그동안 좀 낯설었던 국악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아내와 함께 자주 이런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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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 영랑의 숨은
이호연 회원
뒷이야기가 흥미로운”오늘 여행을 통해 학교에서 교과서적으로 봐왔던 다산이나 영랑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고 남도 정서에 맞는 판소리도 직접 즐길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사실 퇴직하고 나면 찾아주는 데가 별로 없는데 교직원공제회에서 늘 퇴직 회원을 불러주고 찾아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여행, 좋은 공간 많이 소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