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에세이

마티즈 타는 교사

「에세이」는 교사의 마음이 느껴지는 공감 에세이로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선생님들의이 야기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 글. 박선영(광주 태봉초교 교사)

퇴근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공문을 끝내지 못했다. 하다 만 공문을 급하게 컴퓨터에 저장하고 학교를 나왔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차를 탔다. 운전 5년 차, 이제는 운전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도로를 달려 카페로 갔다. 카페 근처 아파트에 주차한다. 여전히 주차는 어렵다.
‘선생님, 저 과학고 합격했어요. 한번 찾아뵙고 싶어요.’
‘민준아. 정말 잘 됐다. 축하해!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선생님이 네 학교 근처로 갈게. 학교 근처 카페에서 5시 30분에 보자.’
‘네, 선생님, 감사해요. 영호도 같이 간대요.’
영호의 이름을 듣는 순간, 5년 전 느꼈던 복잡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다.
카페에는 아이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절로 웃음이 났다. 아이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보다 키는 훨씬 커 버렸지만, 앳된 얼굴은 그대로였다. 반갑기도 하면서 어색했다. 묘한 분위기 속에서 음료를 주문했다.
“선생님, 차는 바꾸셨어요?”
나는 아이들이 내 차를 봤나 싶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영호야, 어, 어떻게 알았어?”
“다 아는 법이 있죠. 선생님, 그때 마티즈 타고 다니셨잖아요.”
5년 전, 난 마티즈를 타고 다녔다. 흰색에 회색 줄무늬가 있는 조그마한 중고 마티즈였다. 마티즈 주변으로 큰 차들이 지나갈 때면 왜 그리도 흔들리던지, 마치 장난감 자동차를 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그맣고, 주변 환경에 쉽게 흔들리는 마티즈, 그 마티즈는 날 닮아있었다. 특히 영호에게 난 마티즈 같은 교사였다.
영호 앞에서 난 참 작아졌다. 영호는 에너지가 많고 남성적인 학생이었다. 4학년 때 영호 담임 선생님은 카리스마가 넘치고 지도력이 있어 영호가 담임 선생님을 많이 따랐다. 그런데 5학년이 되어 날 만나자, 내 특유의 부드러움과 친절함이 영호에게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영호와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참 어려웠다.
영호가 거친 행동을 하거나, 반항적인 눈빛을 보일 때면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내가 작년 영호 담임 선생님처럼,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이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쓰렸다.
5년 전 영호가 내 앞에 앉아 있다. 난 작아지려는 마음을 다시 추스르며 영호를 보고 웃는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색함이 조금씩 사그라든다. 영호는 특유의 입담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한다.
“아, 그때 선생님 마티즈 탈 때, 진짜 좁았는데. 선생님, 저랑 몇몇 애들 데리고 애슐리 갔잖아요? 식당으로 출발하려고 차를 타려는데, 차가 엄청 작은 마티즈였어요. 그 좁은 차에 우리가 타고 갔어요.”
그랬다. 난 그 좁은 마티즈에 아이들을 태우고, 이곳저곳을 다니곤 했다. 그때는 무슨 열정이었을까?
“한번은 선생님이 우리 공부시키신다고 토요일에 도서관에 데리고 가셨잖아요. 시험공부 대비시킨다면서요. 그때 지겨워서 민구랑 저랑 PC방으로 도망갔는데.”
영호는 5년 전에 일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잊어버린 일들을 말이다.
“이야, 어떻게 그 일들을 다 기억하고 있니?”
“당연히 기억나죠. 그리고 선생님, 애들이 말 안 들으면 화도 내세요. 제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 말을 안 들어서 그런지, 요즘 초등학생들 문제 일으키는 것 보면 화가 나더라고요.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대단해.”
영호의 말 속에는 왠지 모를 따뜻함이 있었다. ‘선생님, 고마워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만의 착각일까?
착각 속에 웃고 있는 나에게, 민준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5학년 때 선생님을 만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민준이의 말에 마음이 뭉클했다.
“고마워, 민준아. 선생님은 네가 자랑스러워.”
차를 마시고 난 후, 두 아이는 내 차가 있는 곳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내 차도 구경할 겸 말이다.
“오, 선생님한테 어울리는 차에요. 색깔도 좋은데요.”
아이들은 마티즈에서 바뀐 내 차를 확인한 후, 나를 배웅해 주었다.
내가 영호를 위해 마음을 쓰고 애썼던 일들이 그 당시에는 모두 쓸데없는 노력 같았다. 그런데 영호는 다 기억하고 있었다. 5년이란 세월 동안 난 까맣게 잊고 있던 일들을 말이다. 민준이는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선생님인 날 기억하고 연락을 줬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이 따뜻하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낡고 작은 중고차 마티즈. 그 마티즈가 내 진심을 아이들에게 전달해줬나 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보잘것없는 마티즈를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마티즈를 타던 교사, 내 과거를 안아준다. 상처도, 아픔도, 기쁨도, 보람도. 그래, 고생 많았어.

*학생들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박선영 선생님은 섬세한 감성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행복한 교실 공동체를 가꿔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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