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미디어에서 바다거북의 코 깊숙이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심해로 흘러간 미세플라스틱을 물속 생물들이 먹이인 줄 알고 섭취한다거나, 바다로 밀려든 플라스틱 쓰레기가 태평양 한가운데 한반도 면적의 7배에 가까운 커다란 쓰레기 섬을 형성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미 지구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처럼 인간이 지구의 자연환경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급속한 생태계 변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생겨났고, 기후변화는 자연재해, 이상기후 현상 등 지구 환경에 영향을 주게 됐다.
단순히 일회용품을 적게 쓰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면 해결 될 문제일까. 이 같은 개인적 실천도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할 필요는 있다.
남성현 교수는 그 해답을 바다에서 찾고 있다. UN 산하 국제해양학위원회 역시 2021년부터 2030년까지를 ‘해양과학의 10년’으로 선언했다. 남성현 교수는 “UN 산하 기관에서 이러한 선언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전한다.
“‘해양’의 10년도 아니고 ‘해양과학’의 10년이라고 한 데는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제가 학생일 때만 해도 해양은 미지의 영역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우주보다도 접근성이 낮았습니다. 그래서 해양 관련 데이터를 얻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해양과학이 이론 중심으로 발전해온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양관측 기술이 발달하면서 무인 해양관측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자동화된 데이터를 확보할 기회가 열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구의 70%는 바다’라고 배웠지만, 정작 많은 사람에게 바다는 휴양을 즐기거나 식자재를 얻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아쉽게도 해양과학을 포함한 지구과학은 아직 일반 대중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분야다. 그래서 남성현 교수는 이러한 간극을 좁히고자 지구과학의 대중화를 모색하는 중이다. 2020년 출간한 과학 교양서인 「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은 그 시작.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도 출연해 ‘바다를 알아야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알고 보면 바다는 지구 환경을 조절하는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다. 일례로 대표적인 자연재해인 태풍 역시 바다에서 생성되고, 경로나 강도 역시 바다의 상태가 영향을 미친다. 바다를 모른다면 이러한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어렵다.
“2018년에 우리나라에 태풍 ‘솔릭’이 상륙한 적이 있어요. 매우 강한 태풍이 될 것이라고 기상청에서 역대급 피해를 예고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태풍 솔릭이 육지에 상륙했을 때는 기세가 약해져서 바람 피해가 크지 않았어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예측이 틀렸다며 기상청에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태풍 솔릭은 제주도를 지나 북진하면서 왜 기세가 약해졌을까. 남성현 교수는 “서해부터 제주도 남서부의 저층에 분포한 차가운 바닷물이 강풍과 만나 표층의 따뜻한 바닷물과 위아래로 섞여 태풍의 에너지를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해양과학은 실험실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성현 교수도 일 년에 몇 차례 직접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현장 장비가 측정한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극에 다녀왔다. 남극 대륙 주변을 도는 남극저층수라고 불리는 심층해수가 어떠한 경로로 빙하의 아랫부분을 파고드는지 파악해 남극 빙하의 돌발 붕괴 가능성을 조사했다. 따뜻한 해류가 빙하 아랫부분을 녹이면 어느 순간 빙하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 특히 현재 지구에서 가장 빠르게 녹고 있는 남극 서부의 스웨이트 빙하는 마치 코르크 마개처럼 서남극 대륙 빙상이 바다로 흘러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데, 녹아내리면 해수면 상승을 급격히 가속화할 수 있어서 운명의 날 빙하로도 불린다.
이처럼 바다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하면 지구 환경이 왜 변했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 수 있다. 남성현 교수는 “지구가 사람이라면, 지구과학자는 지구를 진찰하는 의사”라고 말한다. 의사가 속이 아픈 환자에게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권고하듯, 지구과학자들은 지구의 건강을 위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경고가 약을 처방하는 일이라면, 공학적인 시도로 지구환경을 조절하는 것은 수술에 해당한다. 하지만 수술은 끝까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검토해야 할 최후의 수단이다.
“영화 「설국열차」를 보면, 기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려고 했던 지구공학의 부작용으로 설국이 왔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영화 「투모로우」 역시 기후 변화 때문에 해양 표층 수온이 올라가면서 심층 순환 동력이 약해져 빙하기가 온다는 설정이 담겼죠. 이러한 내용은 사실 모두 실제 과학 연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전례 없는 자유를 얻었고, 물질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편의에 집중한 삶의 방식은 지구환경 악화라는 대가로 돌아왔다. 남성현 교수는 “이대로는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천체물리학자 스티브 호킹 박사가 생전에 ‘지구온난화로 인간 멸망을 원하지 않는다면 200년 안에 지구를 떠나라’고 경고한 적이 있어요. 사실 인간은 지구를 떠날 수도 없지만, 떠날 자격도 없습니다. 20세기까지는 경제 성장이 최우선이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지내는 일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지났는데, 저는 코로나 19를 기점으로 진정한 21세기가 열렸다고 생각해요. 환경과 생태의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며 사회적인 전환을 이뤄가야 하는 시점이죠.”
남성현 교수는 “현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들이 이 문제를 더 빨리 깨닫고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좀 더 힘을 써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이제는 기후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미래세대의 교육 방향도 각자도생이 아닌 공존의 지혜를 찾는 쪽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바다가 전해주는 수많은 데이터가 위기의 지구를 구할 길을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