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2시간 남짓 달린 끝에 강원도 철원에 있는 서면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도착하자 윤성숙 교사가 한달음에 달려 나와 방문객들을 환한 미소로 맞이한다. 아이들이 등원할 때 온몸으로 품어 안는 선생님의 따스함, 바로 그 느낌이다.
“올해로 유치원 교사 생활 29년 차입니다. 처음부터 유치원 교사에 대한 원대한 목표를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는 게 더 현실적인 목표였지요.”
취업 그 자체를 간절히 바랐던 그가 달라진 것은 학기 중에 가졌던 교육실습 덕분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유아들의 예쁘고 해맑은 눈망울을 보면서 이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행복해질 것 같다”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는 윤성숙 교사의 고백에 말간 미소가 곁들어진다.
철원 지역에서의 유치원 교사 생활은 특별한 점이 있다. 강원도의 최대 곡창지대인 철원평야, 최전방 군사지역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희 유치원은 면 지역으로 작은 마을에 위치하고 있어요. 서면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18명, 초등학교 56명의 학생들로 구성돼 있으며 전교생의 90%가 군 자녀들입니다. 교사로서 신경 쓰는 부분은 군 자녀가 많아 전출입이 다른 지역에 비해 잦은 편이기 때문에 교육과정 자체도 유아들의 정서 안정, 행복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유아 시절의 경험, 감정, 배움이 생애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에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교실은 윤 교사에게 별을 키우는, 거대한 우주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윤성숙 교사에게 유아를 위한 ‘교육과정 만들기’는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2019개정누리과정」이 바뀌고 작년부터 유아 놀이 중심 교육과정이 현장에 적용되는 상황에서 그 역시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프로그램 짜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단순히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놀이가 아닌, 교육과정과 연관이 있어야 했으니까요. 관련 연수란 연수는 다 찾아서 다니며 배우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철원의 ‘강원행복더하기두레유치원’ 동아리에 강사를 초빙해 놀이 중심 교육을 했던 교사들의 사례를 들으며 직접 시연도 해봤습니다. 교사가 주도하는 느낌을 배제하고, 아이들에게 놀이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큰 숙제였지요.”
그러나 오랜 경험과 숙고 속에서 윤성숙 교사는 유아들과 함께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공룡에 대해서 알아봤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은 다 모르는데?” 했더니 선생님이 알아 오면 자기들도 공룡 모양과 이름을 찾아오겠대요. 그렇게 공룡에 대해서 알게 되더니 이젠 교실에 쥬라기 공원을 만들고 싶대요. 교실을 치워서 공간을 넓게 만들어주니까 블록을 쌓아서 담장을 만들고, 학부모들이 쉴 수 있는 장소도 만들고, 공룡을 위해서 동물 병원도 만들었어요. 그러다 날이 더워지니 자연스레 물놀이로 관심사가 또 바뀌더라고요. 놀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스스로 사고를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 거죠.”
윤성숙 교사는 마을 교육과정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원래 초등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꼼꼼히 살펴보고 유아들이 참여할만 하다고 판단하면 “저희도 끼워 주세요!” 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한 노력으로 유아들은 전래놀이, 연극 등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접했고, 마을 도서관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 책 대여 방법, 도서관 이용법, 도서관 규칙 등을 배우기도 했다.
“마을의 일원으로서 축제에도 참여하고, 체험학습을 멀리 나가는 대신 가까운 지역에서 특산품 체험을 했습니다. 뽕나무 농장에 가서 누에 먹이도 주고, 포도 농장에 가서 포도도 따고, 자연물 염색도 하고, 젖소농장에 가서 치즈를 만들어보는 식이었죠. 애향심도 키우고 마을 어르신들의 귀여움도 받고, 상부상조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죠.”
그는 그렇게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누구보다 선명하게 앞장서 실천하고 있었다.
교육과 관련해 그 어느 것인들 쉬운 것이 있겠냐마는 유아교육은 특히 교사 혼자만의 힘으로 온전히 해내기에는 조금 더 까다롭고 어렵다.
“급변하는 현대사회는 가족구조의 변화로 맞벌이 부부, 한 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구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기관에 의존하는 부모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어요. 문제는 어려서부터 유아 양육을 기관에 맡기다 보니 가정에서 부모가 적정 시기별로 유아들의 기본적인 일상생활습관을 지도해야 하는 부분이 부족하다는 거죠. 교사들의 유아 지도 업무가 과중해지면서 많은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윤성숙 교사는 유치원에서의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유아교육은 부모와 교사, 마을이 함께 해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정기적으로 학부모와 상담을 통해 유아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집에서의 교육에 대해 협조를 구하는 것이 그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정인 이유다.
실제로 5세였음에도 부모 외에는 대화를 하지 못하고, 심한 분리불안 증세로 제대로 유치원 생활을 하지 못했던 한 유아의 학부모를 불러 상황을 설명한 뒤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고 수시로 집 밖에 나가 다양한 체험을 하시라”고 설득한 끝에 주말마다 나들이를 나갔던 아이의 상태가 확연히 좋아졌던 사례는 유치원 교사로서 가진 가장 큰 성취이자 보람이다.
“향후 계획이요? 코로나19가 하루라도 빨리 종식되어 아이들과 다양한 놀이와 체험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또 그간의 경험과 경력을 되살려서 유치원 교사들을 위해 ‘학부모와의 관계 맺기’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윤성숙 교사에게 하루하루는 유아들과 함께 누리는 기쁨의 시간이다. 화단의 데이지 꽃을 보고 “선생님! 달걀 프라이 꽃이 피었어요!”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맑고 투명한 심성 덕분에 자신도 지금껏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살 수 있었노라고 고백하는 윤성숙 교사. 그에게 유치원 교사란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인 꽃을 싹 틔우고 뿌리를 내리는 가장 보람찬 첫 번째 도전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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