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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22 Vol.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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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K 예술가

가을앓이, 행간 사이로

부질없는 송신의 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투영 사진

투영

박종열 회원 (남부민초등학교)

수채 물감 20호 2016

작가 노트 :늦가을 통도사의 암자 순례 등산을 하면서 물에 비친 늦가을의 정취에 매료되어 화폭에 담음.

그 해 가을

이구락
노을에 젖은 고로쇠나무 지나
사람들은 바람 속을 굳은 얼굴로 지나갔다
이웃이 집을 짓고 겨울채비를 하고
더러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동안
나는 가을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갔다
까닭없이 몸이 아파왔다
열이 내리면 횃불 같기도 하고 사랑 같기도 한
가을앓이, 행간 사이로
부질없는 송신의 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잠시 반짝이던, 때묻은 희망의 새벽 지나
야윈 햇살 아래 내려서니
고로쇠나무는 잎을 모두 버리고
좀 더 나이든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문 앞에 나와 석간을 기다리지 않았다
다시 행간 사이 자욱한 노을이 지고
오리무중의 수상한 잠 속으로
나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WRITER

작가 인물 사진
이구락 시인은 1951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했으며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구 가톨릭대학교에서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후 대구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대구 수성문화원의 상화문화제조직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서쪽 마을의 불빛』 『그해 가을』 『꽃댕강나무』 『낮은 위쪽, 물같이』 시선집 『와선』 문집 『길 위의 시간들』 등을 펴냈다. 2013년 대륜고등학교에서 정년퇴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