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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22 Vol.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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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누기

좋은 사람 좋은 생각

꽃길에서 벌 떼를 만나고, 진흙탕 속에서 진주를 찾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호락호락하지 않고, 때론 가혹하기까지 하다. 한국인 최초로 존스홉킨스대학교 소아정신과 교수가 된 지나영 박사의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항상 고난 속에서도 이면에 자리한 희망을 찾아왔다. 이제 그가 부모, 아이에게 희망과 행복을 발견하는 법을 전하려 한다. ‘본질 육아’라는 이름의 방법을 말이다.

이성미 / 사진 김수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세 번의 위기는 세 번의 기회였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영국 작가 존 밀턴(John Milton)의 극작 「코머스(Comus)」 속 문장으로 ‘모든 구름은 은색 자락이 있다. 즉 어떤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다.’ 라는 뜻이다.
여러 번의 힘든 일을 겪어온 지나영 교수에게 ‘인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묻자 그가 꼽은 문장이다. 그가 살아온, 그리고 지금의 삶에도 딱 어울리는 말이다.
지나영 교수는 인생에서 세 번의 큰 시련을 겪었다. 첫 번째는 보수적인 집안의 둘째 딸로 환영받지 못한 채 태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차별은 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학창 시절 투병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그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대구가톨릭대학교 졸업 후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수료한다.
두 번째 시련은 인턴 수료 후 찾아왔다. 바라던 정신과 전공의 프로그램에 낙방한 것이다. 재수를 앞둔 상황에서 지나영 교수는 과감히 미국행을 택했다. ‘재수하는 김에 미국에서 영어도 배우고, 의사 면허증도 따오자’라는 다소 무모한 생각이었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문화 속에서도 최선의 노력 끝에 미국 의사 국가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지나영 교수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뇌영상연구소를 거쳐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전임의 과정을 이수했다. 그러고는 한국인 최초로 존스홉킨스대학교 소아정신과 교수가 되었다. 결국, 한국에서의 낙방이 그를 ‘한국인 최초의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되도록 인도한 것이다.
미국에서 발달장애에 관해 심도있게 연구하고, 또 환자를 돌보며 성공 가도를 달리던 지나영 교수에게 2017년 세 번째 시련이 닥쳤다. 난치병인 자율신경계장애와 만성피로증후군이 몸을 지배한 것이다. 각종 스포츠와 야외 활동을 즐기던 그는 잠시 앉아있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신세가 됐다. 결국 의사 가운을 벗어놓고 병세를 완화하는 데만 온 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암울한 상황에서도 그는 ‘빛’을 찾고자 노력했다.
“위기란 지나고 보면 기회라는 것을 저는 살면서 깨달았어요. 시련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도요. 물론 난치병에 걸린 걸 알았을 때는 무척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곧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서 어려움 이면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를 잘 키워서 무엇을 만들려고
낳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 낳죠.
육아의 본질은 사랑이에요.

마음이 흐르는 곳에서 만난 ‘한국 아이들’

지나영 교수는 난치병을 앓으며 비로소 환자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진료실 밖의 더 많은 환자에게도 눈길이 갔다. 더불어 자기 내면에도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자문했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 의사로서 또 환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자’라는 답에 이르렀다.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일. 지나영 교수는 펜을 들고, 컴퓨터를 켰다. 비슷한 고통과 좌절을 겪고있는 사람들에게 인생 여정에서 얻은 깨달음에 관해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2020년 11월, 그렇게 그의 첫 번째 책 「마음이 흐르는 대로」가 출간됐다. 지나영 교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튜브 채널 ‘닥터 지하고’를 개설해 사람들에게 양질의 마인드 트레이닝과 부모 트레이닝 내용을 소개했다. 전공인 소아정신과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그는 ‘육아의 본질’을 강조했다. 아픈 몸을 일으켜 틈틈이 올린 영상만 250여 개. 강연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9월, 많은 사람의 성원 속에서 지금까지의 강연 내용을 모아 정리한 육아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가 세상에 나왔다.
지나영 교수가 육아법을 소개하기 시작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와 아이가 함께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보니 부모 대부분이 아이를 위해 많은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더 많은 일을 찾고 있었다. 간식 하나, 책 한 권, 유치원 한 곳을 선택하는 데에도 수많은 선택지를 두고 고민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점점 지쳐갈 뿐. 따라서 지나영 교수는 부모들에게 말한다. “본질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힘 좀 빼도 된다. 그러면 육아가 쉽고 재미있어진다”라고 말이다.
‘인생의 씁쓸함을 달콤함으로 바꾸는 법’ 강연 모습 [출처:세바시 강연 공식 유튜브]
KBS 아침마당 출연 모습 [출처:KBS 교양 유튜브]

육아는 밥 짓기와 같다. 기본에 충실하라

그렇다면 육아의 본질은 무엇일까? 당연히 ‘사랑’이다. 지나영 교수는 “우리는 아이를 잘 키워서 무엇을 만들려고 낳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 낳죠. 육아의 본질은 사랑이에요. 하지만 많은 부모가 그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그러한 망각이 경쟁 구도를 만들고, 아이를 우울하게 한다고 경고한다.
지나영 교수는 육아를 ‘밥 짓기’에 비유한다. 밥을 짓는 데는 부수적인 재료가 필요하지 않다. 쌀, 물, 불.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 비유하면, 쌀은 아이다. 물은 사랑과 보호다. 물은 쌀이 충분히 잠길 정도만 있으면 된다. 물이 많으면 밥이 아닌 죽이 되듯, 보호가 과하면 아이를 망친다. 그다음 필요한 불은 가치와 마음 자세를 뜻한다. 평탄할 리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가치다.
“아이는 쌀과 같아요. 그 자체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죠. 밥 지을 때 조미료, 향신료를 넣는 사람은 없잖아요? 아이를 기를 때도 이것저것 더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습니다. 아이가 한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하고, 보호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만 하면 되죠.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이를 텅 빈 만두피처럼 생각하는 부모가 많아요. 고기, 채소, 김치 등 각종 재료로 아이 속을 꽉 채워주려고 하죠. 그러니 부모도 힘이 들어요. 자기 자신을 살필 시간도 없고요. 아이와 육아를 짐처럼 여기다 보니 출산율은 점점 바닥을 치게 됩니다. 이것저것 너무 많이 하려 하지 마세요. 기본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해요. 기본만 잘해도 아이는 잘 자랄 수 있고, 부모도 행복합니다.” 부모의 자세도 중요하다.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기다림이다. 우리가 밥을 안친 후 수시로 냄비 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뒤적이지 않는 이유는 ‘기다리면 밥이 잘 될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사랑과 가치를 심어준 후에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절대적인 존재 가치가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조건 없이 사랑해 주고, 자존감을 길러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가치와 마음 자세

지나영 교수는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 네 가지 가치로 정직(integrity), 성실(diligence), 기여(contribution), 배려(consideration)를 꼽는다. 풀어 쓰면 다음과 같다. ‘말과 행동이 진실하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 ‘타인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라’, ‘타인과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라’. 이 네 가지 가치와 긍정적인 마음 자세를 키워주려는 노력, 그리고 사랑과 보호만 있으면 아이는 방향키를 놓치지 않고 인생이라는 항해를 계속할 수 있다.
네 가지 가치는 지나영 교수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과 타인에게 진실하려고 노력했고, 맡은 일에 성실히 임했으며, 가정과 사회에 기여할 바를 찾고, 상대를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려고 했다. 병마가 주는 고통 속에서도 지나영 교수는 진실하고 성실하게, 강연과 저술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한다. 더불어 지나영 교수가 강조하는 것이 또 있다. 교육 현장에서 ‘경쟁’의 결과가 사람의 가치라는 개념을 지우자는 것이다.
“한 가지 가정해 봅시다. 모든 것을 잘하는 국가에 딱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길러내는 일이라면 어떨까요? 국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는 무한경쟁 문화 속에서 경제, 기술,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월등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육아,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때입니다.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길러내야 할 때입니다. 부모 한 사람 한 사람, 교육 현장에 계신 모두가 다 함께 힘을 합쳐 주세요. 육아, 교육 문화가 건강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이 만만해질 리는 없다. 아무리 똑똑해도 당장 한 치 앞을 예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기본에 충실한 육아를 계속해 나간다면 아이는 먹구름 이면의 빛을 발견하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지혜롭게,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법을 배울 것이다. 함께 시작해 보자.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를.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