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매거진(더케이매거진) Magazine
Monthly Magazine
November 2022 Vol.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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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이모작

날마다 소풍처럼
오늘도 청춘


SNS로 세계인과 소통하는
이찬재·안경자 부부

낯선 땅에서 새로 시작하는 ‘용기’, 서툴러도 계속 도전하는 ‘패기’, 힘들어도 끝내 잃지 않는 ‘온기’. 이 부부의 삶을 관통하는 세 가지 기운이다. 인생도 삼모작이다. ‘열정 넘치는 교사’였던 두 사람은 마흔 살에 브라질로 떠나 ‘행복한 이민자’로 지내다, 5년 전 귀국해 ‘유쾌한 노부부’로 살고 있다. 그림 편지와 댄스 영상을 SNS에 올리며 또 다른 즐거움을 누리는 나날들. 팔순의 봄날이 여간 찬란하지 않다.

박미경 / 사진 김수

무엇을 쓰고 그릴지를 늘 생각하니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에 자꾸 눈길이 간다.
대화도 더 많아졌다.
별것 아닌 일의 소중함을,
사소함 속의 특별함을,
일상의 샘에서 부부는 매일 함께 걷고 있다.

그림 편지로 되찾은 인생의 ‘봄날’

노년의 얼굴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주 품은 감정이나 자꾸 지은 표정이, 민낯이라는 ‘이력서’에 오롯이 기록되는 까닭이다. 노부부가 서로 닮는 것도 같은 이치다. 삶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면서, 미소와 찡그림 따위를 함께 새겨나가기 때문이다. 이 부부의 얼굴은 놀랍도록 밝고 맑다. 비울 것은 비우고 채울 것은 채웠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결혼한 지 올해로 55년. 같이 써온 이력서에 ‘사랑’의 역사가 고스란하다.
“시화전을 계기로 만났어요.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그때와 같아 참 신기해요.”
이 부부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기동창이다. 미대생의 꿈을 접은 이찬재 씨는 지구과학교육과에, 시를 좋아하던 안경자 씨는 국어교육과에, 1961년 나란히 입학했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건 3학년 때인 1963년의 일이다. 국어교육과 내 문학 동아리에서 시화전을 열었을 때, 안경자 씨의 시에 이찬재 씨가 그림을 그려줬다. 글과 그림으로 호흡을 맞추는 일은 그로부터 52년이 지난 2015년, 브라질에 살던 이 부부가 인스타그램에 그림 편지를 올리며 다시 시작됐다. 오래전 그때처럼 남편은 그림을 그리고, 아내는 글을 썼다. 봄날이 돌아왔다.
“브라질에서 평온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2015년 1월 딸아이네 식구들이 갑작스레 한국으로 떠나게 된 거예요. 워낙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우리 부부 가슴에 큰 구멍이 나버렸어요.”
손주들의 등하교를 책임졌던 이찬재 씨가 특히 더 허전해 했다. 미국에 살던 아들이 그 모습을 걱정하며 제안했다.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아들은 한국에서 교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펜으로 그림을 그려 엽서를 보내주던 어린 날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손주들을 위해 그림을 그려보라는 것이 아들의 말이었다. 그리움을 그림에 담아 편지로 띄우라는, 너무 근사해 어쩐지 멀게 느껴지는 권유였다.

SNS로 세상과 소통하는 즐거움, 도전하는 기쁨

맨 처음 손사래를 치던 이찬재 씨는 아내 안경자 씨가 설득에 가세하자 이내 용기를 냈다. 손주들과 함께 나눈 일상의 추억부터 손주들에게 들려주고픈 옛이야기까지, 사랑으로 가득한 글과 그림을 인스타그램(@drawings_for_my_ grandchildren)에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이 편지들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BBC와 NBC, 가디언 등 해외 매체의 극찬이 잇달았고, 수십만 명의 구독자(현재 약 40만 명)가 부부의 편지를 매일 받았다.
“아들이 인스타그램 이용법을 알려줬어요. 열심히 배워 결국 적응했죠. 미국에 사는 친손주들을 위해 아들이 영어로 번역을 하고, 브라질에 오래 살았던 외손주들을 위해 딸이 포르투갈어로 번역을 했어요. 우리 그림 편지가 외국인들에게 가닿을 수 있었던 배경이에요.”
2017년 10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부부의 그림 편지는 계속되고 있다. 손주들이 아닌 세상 모든 이를 향해, 그들은 오늘도 소소하되 시시하지 않은 연서(戀書)를 열심히 띄우고 있다. 눈물 나게 아름다운 그림 편지들은 3년 전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라는 책으로 묶였다. 그새 많은 원고가 쌓였으니 새 책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그림 편지 작업을 함께하면서 이들 부부에게 생긴 가장 좋은 점은 세상을 관찰하는 눈이 매우 세심해졌다는 것이다. 무엇을 쓰고 그릴지를 늘 생각하니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에 자꾸 눈길이 간다. 대화도 더 많아졌다. 별것 아닌 일의 소중함을, 사소함 속의 특별함을, 일상의 샘에서 부부는 매일 함께 걷고 있다.
“틱톡에 댄스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건 코로나19 시국에 접어든 직후예요. 강연이나 인터뷰 같은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고 문화센터며 헬스장에도 갈 수 없게 되니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지코의 ‘아무 노래’에 맞춘 댄스 챌린지 영상을 우연히 봤어요. 얼마나 멋지던지 우리도 한번 도전해 봤죠. 이후 딸이 안무를 짜주면 그걸 열심히 연습해 동영상으로 올리기 시작했어요. 250만 팔로워가 우리의 엉성한 춤을 봐줘요. 고맙고 신기해요.”
방금 배운 동작을 이내 까먹곤 하지만, 삶에 춤을 들이니 하루하루가 새롭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도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두 사람이 몸소 보여준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펼친 꿈과 낭만들

두 사람의 첫 직업은 교사다. 1981년 브라질로 떠나기 전까지, 서울의 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찬재 씨는 학생들을 자유롭게 교육하는 교사였다. 체육대회며 합창대회에선 직접 만든 응원가로 아이들의 신명을 북돋웠고, 시험 땐 주관식 10개 문제를 출제해 아이들의 창의성을 발굴했다. 안경자 씨는 ‘시’를 외우게 하는 교사로 유명했다. 시를 통해 감수성을 키우는 것은 물론이고, 시가 가진 리듬이 몸에 배면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두 사람 모두 ‘낭만’을 아는 교사였다.
“한국에 돌아온 뒤 제자들을 몇 번 만났어요. 우리 둘 다요. 환갑을 넘긴 제자들과 그 시절 얘기를 나누는 데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15년 안팎의 교사 생활이 현재의 삶에 큰 기쁨을 주고 있어요.”
브라질 이민은 그 나라로 먼저 이민 간 안경자 씨의 아버지가 ‘한국에 남아 있는 딸들’을 데리러 오면서 이뤄졌다. 흔쾌히 떠났다. 40년간 한국에서 살았으니, 남은 삶은 지구 반대편에서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상파울루에선 의류 사업을 했다. 다행히 적성에 맞았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사랑이 가득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브라질은 가족 중심 사회예요. 아주 사소한 일정조차 온 가족이 함께 움직이죠. 사람들도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해요. 작은 것에도 깔깔 웃는 그곳 사람들에게 우리도 자연스럽게 물든 것 같아요.”
안경자 씨는 그 나라에서도 교사 생활을 이어갔다. 의류 사업을 하면서 상파울루 한국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귀국 전까지 국제학교 한국문학 교사로 활약했다. 「한인회보」 편집장도 지냈다. 장사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면서 행복의 부피를 늘려갔다. 이찬재 씨는 은퇴 뒤에 꿈을 이뤘다. 그림 편지 속 원화들로 산호세와 상파울루, 서울에서 잇달아 전시회를 열며 당당히 화가가 된 것이다. 꿈으로 가는 길에 ‘나이’는 필요 없다는 걸 그들은 이미 경험으로 안다.

‘팔순’이어도 다시 새롭게 아름다운 ‘청춘’

한국에 돌아온 지 올해로 5년. 눈부시게 성장한 고국을 매일 새롭게 바라보면서, 새롭게 뿌리내린 이 땅을 구석구석 살갑게 알아가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고 있다. 이민자로서의 경험이 삶에 큰 도움이 된다. 낯설게 바라보기, 새롭게 시작하기, 따뜻이 소통하기. 올해 팔순을 맞은 그들이 여전히 청춘으로 살아가는 비결이다.
“신길동 문간방에서 신혼살림 하던 때의 일이에요. 집에 가면 연탄불이 꺼져 있으니 퇴근 때마다 시장에 들러 ‘불 핀 연탄’ 을 사 가곤 했어요. 싸늘히 식은 방으로 돌아가면서도 집게 낀 연탄을 들고 같이 걷는 게 얼마나 재미났는지 몰라요.”
안경자 씨의 말에 이찬재 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행복은 ‘발견’하는 자의 것이다. 이 부부의 밝음과 맑음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비로소 알아낸 셈이다. 새로 익힌 춤동작을 익히며 두 사람이 환하게 미소 짓는다. 서툴러도 어설퍼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케이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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