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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3 Vol.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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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곱하기

방방곡곡 숨은 명소

경칩이 지나고 개구리가 깨어날 무렵 섬진강 변 매화마을의 무수한 꽃은 하얀 구름이 산허리를 포위하듯 사위를 둘러싼 채 꿈결 같은 풍경을 내어 보이기 시작한다. 기나긴 겨울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피어나 새봄을 알리는 매화 군락지를 산책하노라면 겨울 그림자는 어느덧 저 멀리 사라져버릴 것이다.

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광양시청

우인재 작가는 10여 년간 출판사에서 여행 콘텐츠 기획 및 취재를 담당했다. 아시아나항공 기내 가이드북 로스앤젤레스 편을 비롯해 대한생명, 교보생명, 외환은행 등 보험·금융사 고객용 여행 가이드북을 기획 및 제작했다. 또 월간 「DOVE」, 「모터트렌드」 등의 매체를 비롯해 인천공항공사, 롯데백화점, 조달청, 롯데제이티비, LS전선 등 기업체 사보에 여행, 드라이브 원고를 기고했다. 현재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광양 매화마을
매화마을 장독대 매화마을 장독대

눈 속에서도 꽃 피우는 군자의 꽃 ‘매화’

온갖 봄꽃 중에서도 가장 먼저 개화를 시작하는 매화는 예로부터 사군자의 하나로 꼽히며 인격의 완성을 이룬 군자(君子)를 빗대어 이르는 소재로 이용되고는 했다. 뜻밖에 내린 하얀 눈 속에서도 독야청청 홀로 꽃을 피우는 매화의 강인한 생명력은 선비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지조와 절개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유명시인 소동파, 왕안석의 작품 등에서도 매화를 종종 다뤘으며, 조선시대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도 매화를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화가 만발한 청매실농원 전경 매화가 만발한 청매실농원 전경
바로 이 매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곧 봄을 맞이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남도의 젖줄 섬진강을 따라 봄소식이 전해지는 고장 광양에서 매화와 함께 가장 먼저 새봄이 열리는 장소는 다압면 매화마을이다. 그중에서도 섬진강 유래비와 수월정(水月亭)이 자리하는 다압면 도사리 일원의 청매실농원은 강변을 따라 구름처럼 피어나는 매화가 연출하는 화사한 풍경으로 백운산자연휴양림, 이순신대교 등과 함께 ‘광양 10경’으로 인정받은 명소다.
쫓비산 자락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청매실농원은 수천 그루의 매실나무가 피워 올리는 새하얀 매실 꽃으로 치장한채 꽃구경 나온 상춘객을 맞이한다. 이르면 2월 말부터 꽃이 피는 청매실농원은 1965년에 심은 매실나무 2,000주로 시작된 농원으로 현재 광양시에서 가장 이름난 관광 명소이다. 호남정맥의 백운산에서 가지 쳐 나온 쫓비산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청매실농원에서 가장 먼저 꽃망울을 틔워 새봄을 알리는 전령은 홍매화다. 청매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보다 조금 일찍 개화하는 홍매는 마치 붓으로 진분홍 물감을 뿌린 듯 청매와 금매 사이에 새초롬한 자태로 숨어 산자락 곳곳을 곱게 물들인다.

섬진강 변을 물들이는 아름다운 봄꽃의 향연

면적이 무려 30만㎡에 달하는 청매실농원은 제대로 마음먹고 부지런히 걸어서 한 바퀴 돌아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릴 정도의 규모를 자랑한다. 게다가 사랑, 낭만, 소망, 추억 그리고 우정 등 다섯 가지 테마별 탐방로를 모두 돌아보려면 그보다 넉넉히 시간 여유를 두어야 할 것이다. 또 섬진강 둔치에 마련된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이동해야 하므로 가능한 이른 아침에 방문하는 편이 좋다. 청매실농원 곳곳에는 전망대를 겸하는 포토존과 함께 매화문화관, 장독대와 휴게실, 영화 촬영지, 은행나무 집 등 농원 측에서 조성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벼락바구, 얼굴바구, 행도바구 등 독특한 형태의 커다란 바위도 볼 수 있다.
매화마을에서는 지자체와 마을 주민의 주도로 매년 매화축제가 열린다. 최근 몇 년간 팬데믹으로 행사가 취소되기도 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호전되어 4년 만에 ‘제22회 광양매화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오랜만에 열리는 행사인 만큼 축제의 주제도 그에 어울리도록 ‘광양은 봄, 다시 만나는 매화’로 정했으며, 축제 기간은 3월 10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으로 확정했다. 특히 이번 축제에서는 차별화된 콘텐츠로방문객을 맞이할 예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홍쌍리 명인의 쿠킹 클래스, 관광객과 함께하는 광양 맛보기 등 기존에 없던 참신한 아이디어를 동원한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광양시청과 매화마을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축제 정보와 프로그램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옥룡사지 동백나무숲 옥룡사지 동백나무숲 백운산자연휴양림 백운산자연휴양림
백운산자연휴양림 야영장 백운산자연휴양림 야영장

천년 고찰의 흔적 남은 자리에 붉게 맺힌 꽃봉오리

‘화무십일홍’이라 하지 않던가. 아름다운 꽃과 함께 피어나는 봄날은 찰나처럼 스쳐 지나간다. 새봄의 아름다움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이번에는 도선국사의 숨결이 서린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을 찾아가 보자. 광양의 진산 백운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옥룡사는 통일신라 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당시 심었다고 알려진 동백나무 1만여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겨우내 조금씩 피고 지기를 반복하다가 3~4월에 만개하는 동백은 떨어지는 꽃송이가 마치 붉은 주단을 깔아놓은 듯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천년 고찰은 흔적만 남긴 채 시간속으로 사라졌지만 동백나무 숲은 남아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현재 천연기념물 제489호로 지정되어 있는 옥룡사지 동백나무 숲 사이로 절터까지 이어지는 탐방로를 완상하며 붉은 동백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자.
옥룡사지 인근에는 청정 숲의 백미를 맛볼 수 있는 백운산자연휴양림이 기다리고 있다. 삼나무, 편백나무, 소나무 등 아름드리 수목이 어우러져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일부러 조성한 인공림과 천연림이 조화를 이뤄 더욱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산막, 숙박동, 야영장 등 숙박시설은 물론 삼림욕장 선베드, 황톳길, 잔디 광장도 갖추고 있어 여행자를 위한 숙소이자 자연학습장, 그리고 명상과 치유의 공간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차로 단숨에 오를 수 있는 남해안 최고 전망대

광양은 한려수도의 수려한 풍경을 거느리고 있는 여수시, 남해군 등지와 인접한 바닷가 고장이다. 광양만 앞바다의 장엄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구봉산전망대에서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어떨까. 호남정맥의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백운산에서 뻗어 나온 능선의 하나인 구봉산은 과거 봉수대가 있던 자리에 조성한 전망대로 전 세계 유일의 디지털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광양시를 상징하는 빛, 철, 꽃(매화)을 형상화해 제작한 봉수대의 형태는 피어나는 매화의 생명력을 의미하며, 꽃잎은 12개 읍면동을 의미한다. 봉수대의 높이는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 광양으로 개칭된 역사성을 고려해 940cm 높이로 건립했다. 디지털 봉수대 상단부에는 LED 조명등과 투광등을 설치해 야간 경관성을 살리면서 광양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봉산은 해발 471m 높이로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바닷가에 위치한다는 특성때문에 순천 검단산성과 왜성, 광양제철, 마로산성 그리고 광양 읍내까지 동서남북 거칠 것 없이 조망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전망대 인근까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어 힘들여 등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
구봉산전망대 구봉산전망대 망덕포구와 배알도를 잇는 별 헤는 다리 망덕포구와 배알도를 잇는 별 헤는 다리
마지막으로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자리한 망덕포구에서 매화꽃 나들이의 대미를 장식해 보자. 구봉산전망대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망덕포구는 섬진강 물길이 끝나는 지점이자 소설가 김훈이 극찬한 섬진강 자전거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먼 옛날 모래강, 다사강, 두치강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 섬진강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감지한 두꺼비 떼가 힘차게 울어 남도를 수호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두꺼비 나루강’이라는 뜻을 지닌 섬진강(蟾津江)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배알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두 다리 중 하나는 ‘별 헤는 다리’로 명명되었는데, 이는 망덕포구인근에 시인 윤동주의 유고를 보관하던 장소가 있었던 데서 착안한 이름이라고 한다. 케이 로고 이미지
광양으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광양의 산과 강, 바다가 내어놓은 먹거리

  • 조선시대 천하 일미 광양식 불고기

    광양식 불고기는 그 역사가 제법 오래된 토속 음식이다. 조선시대 광양읍성 바깥에 정착해 살던 김해 김씨 부부가 귀양 온 선비들에게 아들의 글공부를 맡겼는데, 부부는 그 보답으로 송아지나 암소를 잡아 양념한 뒤 구리로 만든 석쇠에 올려 숯불구이를 해 대접했다. 바로 이 음식이 광양식 불고기의 원형이다. 광양식 불고기는 지방이 적고 부드러운 부위를 얇게 썰어 양념하는 만큼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다. 여기에 백운산 참나무로 만든 참숯으로 불을 피워 화로에서 구워야 제대로 된 광양식 불고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광양 읍내에 있는 매실한우(061-762-9178), 삼대광양불고기집(061-763-9250) 등에서 광양식 불고기를 맛볼 수 있다.
  • 섬진강이 낳은 영양 만점 먹거리 재첩국

    남도의 젖줄 섬진강이 낳은 유명한 먹거리로 은어와 참게, 재첩 등이 손꼽힌다. 그중에서도 재첩은 숙취 해소는 물론 황달, 간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건강식 재료. 2~4월이 제철인 재첩은 민물조개의 일종으로 섬진강 하류에서 주로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다. 보통 국이나 회무침으로 먹는 재첩은 칼슘과 인이 풍부해 간을 보호하고 빈혈 예방에도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식으로도 적합하다. 재첩을 넣고 끓여낸 뽀얀 국물에 부추를 넣어 먹는 재첩국은 자극적인 음식에 길든 현대인에게 섬진강이 주는 선물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모은정(061-763-0664), 섬진강뚝배기재첩식당(0507-1355-2633) 등의 전문점에서 제철 영양식 재첩을 맛보자.
  • 「자산어보」에 기록된 바다 먹거리 붕장어

    평소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장어구이는 대부분 민물장어로 만든다. 민물장어는 바다에서 나지만 강물을 거슬러 올라와 5~6년쯤 살다가 성체가 되면 다시 바다로 나가 알을 낳는다. 반면 아나고, 붕장어로 불리는 바닷장어는 바다에서 나 바다에서 생을 마감하는 바다생물이다. 붕장어라는 이름은 이미 조선 시대부터 사용되었는데, 실학자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에는 해대려(海大鱺)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속명을 붕장어(弸張魚)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광양에는 자연산 붕장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식당이 수십 곳에 달할 정도로 장어구이의 인기가 높다. 광양시청이 위치하는 광양시 중동과 광양시청 제2청사가 있는 광양 읍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붕장어 숯불구이 전문점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