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민아 | 사진 오재철
오재철·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이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등을 출간했으며, 부부 모두 여행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글 정민아 | 사진 오재철
오재철·정민아 부부는 결혼 자금으로 414일간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이후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함께, 다시, 유럽」 등을 출간했으며, 부부 모두 여행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융프라우나 체어마트와 달리 스위스 자국민과 주변국 현지인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는 알프슈타인 산악지대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스위스 북동부에 위치한 이곳에는 해발 약 1,640m의 명산 에벤알프가 있다. 가장 잊지 못할 캠핑 장소 중 한 곳으로 추억하는 장소가 바로 이 명산의 절벽에 지어진 에셔(Aescher) 산장이다.
우리는 에셔 산장으로 가기 위해 바서라우엔 기차역으로 향했다. 바서라우엔은 스위스의 장크트갈렌과 아펜첼을 잇는 철도의 최종 역으로 대부분 여행객은 기차를 이용하지만 우리는 캠핑카 바퀴를 굴렸다. 기차든 자동차든 역으로 가는 내내 마주하는 청량한 알프스의 풍경이 눈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깝게 만든다. 바서라우엔역 옆엔 산장으로 향하는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고, 케이블카를 타고 단 6분이면 산장 근처까지 오를 수 있다. 이후 케이블카에서 내려 20분만 걸으면 에셔 산장에 도착. 즉 죽기 전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된 여행지치고는 가는 여정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는 말!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쉽게 몇 달간 예약이 꽉 차 있어 이용이 불가했고, 대신 아찔한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과 함께 잠시 신선놀음을 즐길 수밖에….
성인 기준 3시간이면 걸어서도 산장에 오를 수 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즐긴 후 산장에서 부터 바서라우엔으로 내려오는 트레킹 코스도 추천한다. 알프스의 대자연을 고스란히 만끽하면서 힘들지 않게 하산 트레킹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같은 걸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행복을 알게 된 소중한 날이었다.
이 여행에서 주목해야 할 건 아이를 ‘데리고’ 간 여행도, 부모님을 ‘모시고’ 간 여행도 아니라는 점이다. 운전, 식사, 정리, 여행 준비 등 한사람도 빼놓지 않고 함께 움직이며 여행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선 랜드마크보다 중요한 여행 코스가 있다. 바로 놀이터! 아무리 작은 마을이나 캠핑장이라 해도 유럽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 시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 ‘1일 1놀이터’ 방문이 어렵지 않았다. 그중 온 가족이 홀딱 반한 리프노 지역의 트리톱 워크와 포레스트 킹덤을 소개한다. 프라하에서 남쪽으로 2시간여 떨어진 곳에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체스키크룸로프라는 소도시가 있고, 그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40여 분을 달리면 리프노 나트 블타보우에 도착한다.
리프노 지역의 이색 체험으로 트리톱 워크와 포레스트 킹덤을 들 수 있는데, 우린 먼저 트리톱 워크로 향했다. 달팽이 껍데기 같은 나선형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지상 40m 높이의 전망대 정상에 다다른다. 데크 곳곳에 아이와 함께하기 좋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아이는 힘든 줄 모르고 오르고 또 올랐다.
트리톱 워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체코식 자연 친화 놀이터 ‘포레스트 킹덤’도 빼놓을 수 없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트램펄린에 아이는 홀린 듯 뛰어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숲속 미로, 밧줄로 엮은 모험 코스, 나무로 만든 작은 마을 등 숲과 놀이 기구가 자연스럽게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이런 곳에서 매일 뛰노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는 찰나,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여기서 살자!” 아이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우리는 체코의 어느 숲속 놀이터에서 종일 행복했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빽빽한 일정에 모두 힘들어 반도 지키지 못했고, 두 번째 여행에서는 너무 여유 있게 준비한 탓에 ‘별로 한 게 없다’는 부모님의 평가를 들었다. 비로소 세 번째가 되어서야 우리의 속도가 맞춰졌다.
이탈리아 북부, 아름다운 돌로미티 지역에 위치한 4성급 캠핑장 ‘자이저 알름(Seiser ALm)’. 포털사이트에서 ‘캠핑 자이저 알름’을 검색하면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가 같이 검색되는데, 독일어로는 ‘자이저 알름’이라 부르고, 같은 캠핑장인데 이탈리아어로는 ‘알페 디 시우시’라 부르기 때문이다. 해발 950m 높이에 위치해 캠핑장을 거점으로 다양한 트레킹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지만 우리처럼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경우 캠핑장에서 바라보는 낮과 밤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숨 막히게 감동스럽다. 캠핑장에서 바라보던 아름다운 무지개와 그날의 석양이 여전히 생생히 떠오른다.
가족이 함께하는 캠핑카 여행의 묘미란 이처럼 캠핑카 바퀴 구르는 대로 어디든 움직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아닐까. 다섯 식구 다리 뻗고 누울 아늑한 캠핑카 한 대면 이 세상 어디든 못 갈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