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본격화된 주요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은 이제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이후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상도 앞으로 최대 한두 번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미국이 금리인상을 멈추더라도 조기 금리인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플레이션이 잡히고는 있지만 아직 각 중앙은행의 전통적 물가 안정 목표인 2%보다는 물가상승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높은 수준의 금리가 유지되기만 해도 경제의 취약한 부문에서 위기가 생길 수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 전반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내년까지는 신용위험 발생 여부를 잘 모니터링해야 한다.
글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부동산 PF란?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는 한국 경제의 취약성이 노출될 수 있는 대표적 영역이다. PF라는 단어가 생소한 이가 많을 것이다. 부동산 PF는 아파트나 물류 창고 등을 건설해 분양하는 부동산(project)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financing)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부동산 사업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소요되는 자금의 규모도 크기 때문에 다른 일반적인 대출과는 구별된다.
아파트 분양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최초에 사업을 기획한 시행사가 건설에 필요한 토지를 매입한 후 관청에 인허가를 받는다. 이후 시공사를 선정해 건축을 하고, 완공 후 소비자가 입주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아파트 프로젝트의 최종 수입은 아파트 구매자에게 매입 대금을 받는 분양 규모에 따라 결정된다. 분양은 시공사를 선정한 직후, 즉 아파트 건설이 본격적으로 착수되기 전에 입주민을 모집하는 선분양이 있고, 건물이 완공되거나 건설이 상당 수준 진행된 이후 신청을 받는 후분양이 있다. 시행사는 아파트 구매자들에게 받은 분양 대금으로 토지 구입비와 건축비를 지불하고 자신들은 마진을 챙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는 데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그래서 부동산 PF가 등장한다. 그리고 시행사에서 매입한 토지를 근거로 관공서에서 인허가를 받았을 때 비로소 부동산 PF 즉, 본PF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토지의 사용 목적이 물류 창고용, 아파트 건설용 등으로 명기되기 때문이다. 부동산 PF는 이때부터 시작되고 은행과 보험, 증권사 등이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판단해 자금을 지원한다.
고금리 브릿지론의 등장
시행사 입장에서는 부동산 PF가 시작되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토지 매입 자금을 마련하는 일이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토지 매입 행위는 프로젝트가 성립하기 전, 즉 부동산 PF가 개시되기 전의 일이다. 시행사가 토지 매입 자금을 모두 가지고 사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서도 차입이 필요한데, 이를 브릿지론(Bridge Loan)이라고 부른다. 인허가 이후의 자금 조달을 본PF라 부르기도 하는데, 브릿지론은 본PF 이전 토지 매입을 위해 시행사가 활용하는 단기 차입이다. 통상 6개월에서 1년 정도 만기로 저축은행, 캐피털, 새마을금고, 증권사 등이 브릿지론 형태로 자금을 제공하고, 본PF보다 높은 이자를 받는다. 시행사는 본PF로 자금을 조달하면 브릿지론을 상환하게 된다.
다만 고금리로 인해 본PF로 전환되지 않으면 시행사가 돈을 갚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체 부동산 PF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적어
브릿지론과 본PF 모두 부동산 개발·분양 사업의 성공 여부에 영향을 받지만, 위험도는 브릿지론이 훨씬 높다. 금리상승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는 본PF로 자금을 모으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브릿지론은 통산 1년 미만의 단기 대출인데, 본PF로의 넘어가지 못하면 시행사는 물론 브릿지론을 빌려준 금융사도 부담을 떠안게 된다.
브릿지론을 포함한 부동산 PF와 관련된 금융기관의 손실은 향후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공격적 금리인상과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비롯된 자금시장 경색으로 작년 4분기 이후 부동산 PF의 만기 연장이 이뤄져 왔다. 사실상 채권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기능이 마비돼 투자자들의 공포가 극에 달했던 상황에서 금융감독기관이 만기 연장을 유도한 것은 합리적 정책이었다고 본다. 다만 앞으로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금융회사들의 자발적 출구 전략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 3월 말 기준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1조 원에 달하고 있는데 미분양 누적, 건축비 상승, 고금리 영향 등으로 PF 사업장 자체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업의 조기 청산이 그나마 손실을 최소화할 방법인데, 일부 손실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선택을 하는 금융회사가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규모가 큰 은행의 문제가 아닌 일부 제2금융권 회사들이 겪을 어려움이기 때문에 부동산 PF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적다.
재무안전성 고려한 투자대상, 금융회사 선택 필요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여러 문제점은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지는 급성질환이라기보다는 장기간 해결하기 힘든 만성질환의 성격이 강하다. 당장 금융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투자 대상 기업과 거래하는 금융회사의 재무안정성에 대한 고려를 최우선 조건으로 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안정성이 확보되는 예·적금을 유지하면서 분산 투자를 엿보는 현명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