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트에서 채소나 육류를 구매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랩 포장과 플라스틱 용기다.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해도 꼭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주니 장을
보면 물건보다 포장재가 더 수북해지는 일도 있다.
채소는 어차피 씻어 먹는데 하나하나 개별 포장할 필요가 있나 가끔 의문도 든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친환경 밀랍 랩을 한번 써보면 어떨까.
벌꿀이 만든 밀랍은 예전부터 천연 왁스로 다양한
곳에 활용해 왔는데 최근 들어 얇은 종이 형태로 가공해
다회용 랩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양봉 농가와
함께 친환경 밀랍 랩과 백을 생산하고 있는 손끋비를 찾아 밀랍과 일회용 쓰레기, 벌을 지키는 방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집에서 직접 밀랍 랩을 만드는 방법도 배워보았다.
글 편집실 | 사진 성민하
기분 좋은 불편함, 밀랍 랩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비닐과 일회용품이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것은 그 편리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대체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환경부·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폐기물 총량은 1,193만 2,000톤에
달한다. 이 안에는 주방에서 흔히 사용하는 각종 비닐과 플라스틱
포장 용기가 모두 포함된다.
손끋비의 송정화 대표도 이런 소비를 해오던 주부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한 번 쓰고 버리는 랩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친환경 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렇게 밀랍을 만났다. 그 후 직접 써보기도 하고, 개발 과정을 거쳐 2019년 자신의 브랜드 ‘기분 좋은 불편함.
손끋비’와 ‘밀랍 랩’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손끋비의 이름은
손끝의 옛말인 ‘손끋’과 벌을 뜻하는 ‘비(Bee)’가 합쳐진 것으로,
벌(밀랍)과 관련된 것은 손으로 다 만든다는 뜻을 담았다.
밀랍은 꿀벌이 집을 짓기 위해 만드는 물질로, 꿀을 채취한
뒤 버려지는 벌집의 원재료다. 밀랍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향초, 껌, 접착제 등으로 사용되어 온 인증받은 천연 원료지만,
현대사회에서는 플라스틱 등 각종 석유화학 제품이 이자리를 대신했다.
밀랍은 벌이 생산한 물질이기에 일부 꿀과 유사한 성질을
띠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연 밀랍초는 비타민 B와 프로폴리스가
함유되어 면역력에도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으며,
부가적으로 비염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버려지던 밀랍에 가치를 담다
처음부터 밀랍을 주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1년간 직접 써본
끝에 이런 제품이라면 기존 랩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들었다. 그 길로 경남 인근 양봉장을 찾아 꿀을
채취하고 난 벌집을 얻고자 발품을 팔았다.
“처음 이 얘기를 들은 양봉장 사장님은 ‘이걸 가져다 뭐 하려고
합니까?’라며 의아하게 보셨어요. 그렇지만 조합원들과
의논해 보겠다고 하시더니 이내 저희에게 밀랍을 납품하기로
하셨죠. 이제는 내다 버리던 밀랍으로 수입이 생겼다면서
좋아하세요.”
이왕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만큼 원료부터 국내산으로, 국내
양봉 농가에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도전한 끝에 얻어낸
성과다. 현재는 작업장에서 밀랍을 녹여 필요한 용도에
맞게 제조하고,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밀랍 제품
손끋비가 가장 주력해 판매하는 제품은 밀랍 랩과 밀랍 백이다. 일회용 봉투와 랩을 대체할 수 있는 상품으로 천연 원단에
밀랍을 흡수시켜 만들었다. 두 제품은 약간 도톰하면서도
표면이 약간 끈적하고, 형태가 잘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끈적이는 것은 밀랍 특유의 성질이니 사용하는 데 문제는
없다.
랩은 손수건 정도의 크기로 감자나 사과 한 알을 쌀 수 있고,
전자레인지 사용 시 그릇이나 용기를 덮는 용도로도 적합하다.
밀랍 백은 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아이템으로 다양한
채소를 넣어 다닐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주머니다. 밀랍을
바른 천이 단단해 채소를 보관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특히 이 밀랍 백이 최근 고객 사이에 인기가 높다. 두 제품
모두 사용한 다음 설거지하듯 표면을 닦은 뒤 말리면 본래대로
돌아가고, 6개월쯤 사용하다 밀랍 코팅이 벗겨진 경우
밀랍 블록 등으로 덧칠하면 처음처럼 사용할 수 있어서 반영구적이다.
다만, 밀랍 랩과 밀랍 백은 친환경 포장재일 뿐
채소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해 주는 기능성 제품은 아니기에
보관 효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밀랍 랩으로 한 번 싼 뒤 밀랍 백 안에 제품을 보관하면 보통
냉장 보관할 때보다 신선도가 조금이나마 유지되지만, 친환경
제품이어서 신선도 유지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으니
포장 도구로 활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친환경 활동을 독려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송정화 대표는 최근 서울을 자주 오가며 많은 이에게 밀랍 제품의
장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버츠비, 제주 삼다수
등 유명 브랜드에서도 ESG 경영의 일환으로, 손끋비와 함께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처음 회사를 설립하고 3년간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친환경과 지구온난화가 사회문제로
본격 대두되면서 손끋비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졌다.
덕분에 SNS 등에서 밀랍 백을 사용하는 후기도 늘고, 전시회에
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이건 밀랍으로
만들었고, 친환경 제품이고, 씻어서 사용하고’라며 설명해야
했는데, 이제는 먼저 알아봐 주셔서 고마워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10년만 버텨보자. 그러면 뭔가 달라지겠지’ 생각했는데
5년 차에 요즘 같은 상황을 맞아 매우 반갑습니다.”
손끋비는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기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부산 지역 환경단체와 협력해 사람들에게
친환경 활동을 독려하는 사회적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런 활동의 일환 중 하나가 올해로 4회를 맞은 전시 ‘쓰임새’다.
올해 전시는 음식물 쓰레기를 흙에서 발효한 뒤 그 안에
벌이 좋아하는 ‘밀원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씨앗을 담은
‘시드 볼’ 제작 과정을 담았다. 방문객은 이곳에서 무료로 시드
볼 제작 과정을 체험하고, 음식물 쓰레기의 재활용 과정과
꿀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 꿀벌은 과일, 채소
등의 번식을 돕고, 각종 의약품을 개발하는 데에도 중요한
성분을 생산한다. 그러나 기후 위기와 농약 사용의 보편화로
벌의 개체수 감소는 이제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손끋비는
모두가 이런 위기를 인식하고 생활 속 작은 행동에서
부터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5년, 이들이
목표한 10년에 이를 때까지, ‘1 가정 1 밀랍 랩’을 위해
최선을 다할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