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Magazine
Monthly Magazine
May 2022 Vol.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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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더하기

인생 이모작


“쓸 수 있는 몸을 쓰지 않는 것은 낭비입니다. 도움받을 나이가 되기 전에 하루라도 더 도우며 살아야지요.” 일흔 중반, 김영근 회원은 자신의 나이를 “아직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나이”라고 말한다. 힘들면 활동에 쉼표를 찍을지언정 마침표를 찍기엔 이르다는 것이다. 인생 2막, 학생·선생님·자원봉사자·시인 등 그의 배역은 쉴 틈 없는 일인다(多)역이다.

이성미 / 사진 이용기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주인공 사진

제자들을 위해 배우고 또 익힌다

“눈 뜨면 좋은 생각 / 눈 감아도 좋은 생각 / 좋은 생각이 좋은 생각을 낳는다.”
김영근 회원이 쓴 시 ‘금자탑 쌓기’의 한 구절이다. 교사로서의 삶이 녹아든 글이기도 하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는 늘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을 하며, 좋은 결과를 낳아왔다.
김영근 회원은 경북 영덕에서 1969년 9월 교직 생활을 시작해 구미 형남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2012년 2월 정년퇴직을 했다. 퇴직이라 하지만, 실상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쉼표 한 번을 찍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인생에 몇 번 찍어보지 못한 귀한 쉼표다.
어릴 적 김영근 회원의 집안은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못 꿀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공부보다 농사가 우선이었다. 그나마 맏형이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사회에 나갈 수 있다”라고 해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려던 그는 우연히 고등학교 은사를 만나 대구교육대학교 초등교원양성소 교육생 자리를 추천받았다. 이 일화는 김영근 회원이 쓴 수필 「황 형(兄)」에도 소개되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황하던 날에 교원 양성 모집이 있다고 안내해 주셨지요. 그걸 계기로 교원이 되는 길을 걸었어요. 가르치는 교사가 되자고 굳게 다짐하며 42년 넘도록 교사로서 봉직하며 멋진 스승의 모습을 보이려고 열심히 근무하였지요. 황 형의 가르침을 거울삼아 대인관계도 넓히고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친절하며, 내가 맡은 학생들을 정성껏 가르치는 일을 누구보다 잘하려고 노력했어요.” -수필 「황 형」의 일부-
교사가 된 후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내가 많이 알아야 한다”라는 믿음은 그를 배움의 길로 인도했다. 교육 서적을 끊임없이 탐독하고, 새로운 교육법이 있다고 하면 편견 없이 받아들였다.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도전공했다. 그런 그를 보며 학생들도 배움을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까?’ 교사로 살면서 스스로 계속했던 질문입니다. 하지만 매번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더군요. 또 한 명의 어른으로서 성실히 근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교사로서 신념을 지키며 살아왔어요.”

성실한 습관이 만들어준 건강한 노후

성실함과 학구열은 퇴직 후에도 김영근 회원에게 지문처럼 남아 있다. 그는 퇴직 후 매일 생활 계획표를 짜며 생활했다. 요일별 강좌 일정에 맞춰 정보화센터, 도서관, 학원, 배움터 등을 찾아다녔고, 매일 아침 8시에 나와 밤 10시가 넘어 귀가했다. 10년이 넘도록 그가 배운 글쓰기, 색소폰, 사진, 스포츠 댄스 등의 취미와 자원봉사 기초교육, 인생3모작학교 등 강좌만 도합 100여 개에 이른다. 독서심리상담사, 학교안전지도사 등 30여 개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퇴직 전 이미 취득한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웃음치료사 등 10여 개 자격증도 있다. 꼭 자격증 취득이 아니더라도 청소년 자살 예방 상담, 인터넷 중독 예방, 성인 문해 교육 등 10여 개의 교육과정도 이수했다.
배운 것이 쌓일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리도 보였다. 그는 퇴직 후 3개월간 체육전담 기간제 교사를 한 것을 시작으로 대구금빛봉사단원, 찾아가는 한국어 교육 강사, 학생 안전체험 교육 강사, 공공기관 시민참여활동가, 대구시정모니터단, 대구광역시 주민참여예산 운영위원회 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그렇게 봉사활동에 1,400여 시간을 쏟았다. 그중 김영근 회원의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일은 2017년부터 4년 동안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한국어에 대해 가르친 것이다.
“한번은 베트남 어머니를 둔 아이를 가르쳤어요. 한국어 수업을 하고 나서 ‘학생이 오늘 이 부분을 어려워하더라’라고 이야기해주면, 부모님이 가정에서 지도해 잘 익혀오곤 했죠. 그 모습을 보며 ‘학부모가 교사의 이야기를 믿고 한 방향을 바라본다면, 학생은 더욱더 잘 성장하는구나’를 다시 한 번 더 깨달았습니다.”

나이를 잊고 좋은 생각만 촘촘히 박는다

김영근 회원의 삶을 가만히 보면, 퇴직 후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방법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바로 살던 대로 사는 것이다. 교사로 살던 것처럼 성실하게 또 열정적으로 살면 된다.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고생했으니까 퇴직 후에는 좀 쉬엄쉬엄 살아야지’ 해요. 하지만 습관은 들이긴 힘들어도 무너지긴 쉽습니다. 그러니 교직 생활 중 들인 습관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취미생활도 마찬가지고요.”
김영근 회원도 일찍 자고 일어나는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취미로 삼았던 시 창작도 계속하고 있다. 그는 2008년 월간 『문학세계』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한 프로 시인이다. 시집 「바위틈에 자란 소나무」(2012), 「고흐의 달에 묻다」(2017)는 꾸준한 창작의 결과물이다. 현재 김영근 회원의 시는 대구광역시 내 월곡역사공원 야외 전시장, 달서어린이도서관, 시내버스 승차장 등에 전시되어 있다. 2016년에는 『수필과 비평』 수필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수필가로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지금도 도서관에 시, 수필 강좌가 열리면 신청해 듣곤 합니다. 그날 강의에서 많은 것을 배워오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좋은 시 한 줄 마음에 새겼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과시하기 위해서 배우고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무엇 하나라도 더 남길 수 있다면,그것으로 좋은 것이죠.”
배움에 대한 순수한 마음은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2016년 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에서 특선을 받은 그의 대표작 ‘나이테’는 욕심부리지 말고 살자는 그의 철학을 잘 엿볼 수 있다.
나무는 욕심내어 1년에 나이테를 두 개 긋는 법이 없다.
나이 먹은 걸 드러내지 않고, 늘 제 속에만 세월의 흔적을 남긴다. 겸손하게, 겸허하게, 자신의 속을 단단하게 한다.
김영근 회원이 되고자 하는 모습도 그러하다. 배우고 나누고 쓰는 모든 것이 자신과 세상에 귀한 양분이 되길 바라며, 그는 오늘도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케이 로고 이미지
인생 이모작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재능을 기부하며 역동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의미 있는 인생 이모작을 실현하고 있는 회원님을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The-K 매거진」 지면에 담아 많은 회원님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전해드리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 보내실 곳 : 「The-K 매거진」 편집실 (thekmagazine@ktcu.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