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Magazine
Monthly Magazine
May 2022 Vol.57
행복 곱하기 아이콘 이미지

행복 곱하기

방방곡곡 숨은 명소

영남루
부산, 대구, 울산 등 대도시에 둘러싸인 밀양은 여행자들에게 ‘거쳐 가는’, ‘한나절 들르는’ 곳으로 인식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은 도시가 바로 밀양이다. 조선 시대 4대 누각 중 하나였던 영남루, MZ세대의 SNS 명소로 떠오른 위양지와 근대의 기억을 간직한 심랑진을 비롯해 매력적인 곳이 많다. 밀양에 가시거든, 더 천천히 거닐고 많이 멈추어 보시기를···. 천천히 꼼꼼히 볼수록 더 아름다운 밀양이니까.

글/사진 고재열 여행 감독(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 총괄 감독) / 사진제공 밀양시청

고재열 작가는 20년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0년 9월 ‘재미로재미연구소’의 대표 여행자 겸 여행 감독이 되었다. 현재 여행자 플랫폼 ‘트래블러스랩’를 운영하며 다양한 여행과 소모임, 강의를 기획·진행하고 있다
여행감독의 중요한 답사 원칙 중 하나는 ‘좋다고 소문난 곳은 빼고 가본다’라는 것이다. 남들이 다 좋다는 곳을 굳이 내 눈으로 확인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설명만 듣고는 확신이 안 가는 곳이나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 그리고 이곳은 직접 봐야겠다 싶은 곳 위주로 답사한다. 이번 밀양 답사도 그랬다. 짧은 여정 중에 핵심적인 곳을 답사해야 할 때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밀양 답사에는 ‘볕 양(陽)자’ ‘물의 고장’ ‘노거수의 도시’ ‘근대의 기억’ 4가지 맥락을 가지고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리고 ‘밀양아리랑’은 빼기로 했다. 밀양아리랑이 자칫 선입견을 갖고 밀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영화 「밀양」도 내려놓고 갔다. 영화의 주제 때문이었겠지만 밀양이 다소 어둡게 표현됐기 때문이다.
밀양은 의에 죽고 참에 사는 고장이다. 의와 절개를 상징하는 인물이 많이 나왔다. ‘밀양사람 김원봉’을 비롯해 절개의 상징 ‘아랑’ 그리고 불자의 신분으로 거병해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 등이 모두 밀양 출신이다. 밀양이 어떤 고장이기에 이런 일관성을 가진 인물들이 꾸준히 나오는지 궁금했다. 의와 정절의 고장 밀양을 들여다보기 위해 4가지 맥락을 가설로 가지고 밀양에 가보았다.
월연정 월연정

의롭고 높고 황홀한 밀양의 선비문화

하나, 볕 양(陽)자를 쓰는 고을 밀양은 담양·언양·광양처럼 볕 양자를 쓰는 볕의 도시다. 다들 읍성 권역으로 조선 시대 행정의 중심지였고 풍요의 고장이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육식 문화의 전통이 두텁게 남아있다. 그래서 언양불고기, 광양불고기, 담양떡갈비, 밀양돼지국밥 등의 공통점은 값싼 내장이 아니라 살코기를 쓰는 음식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풍요로운 고장이었던 만큼 선비들이 유유자적 머물던 아름다운 누각과 정자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남루는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으로 꼽힌다. 다른 누각과 비교했을 때 영남루의 특징은 남성적이고 웅장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영남루는 여수의 진남관이나 통영의 통제영에 빗댈 만하다.
밀양 답사를 준비할 때 영남루만큼 궁금했던 곳은 금시당과 월연정과 같은 정자였다. 직접 가서 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정자 한 채가 외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채가 정자군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 밀양의 두터운 선비문화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금시당을 중심으로 용두산 능선과 강변 산책로를 순환하는 금시당길, 월연정을 중심으로 추화산을 오르는 추화산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단연 월연정이다.
밀양 여행을 기획한다면 가장 긴 시간을 배정하라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난간길이 회랑처럼 펼쳐진 월연정은 정자의 위치와 정자에서 보는 풍경 모두 좋았다. 백송을 보러 밀양강에 내려가면 드넓은 대지를 만날 수 있다. 밀양의 양반 서사를 대표하는 퇴로리 고가 마을은 조선 시대에 건립된 여주 이씨 종택을 비롯해 여러 채의 고택이 있어 문화재적 가치와 더불어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전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밀양의 수변 풍경에 담긴 물의 역사

둘, ‘선비의 도시’와 함께 밀양에 적합한 수식어 중 하나는 ‘물의 고장’이다. 낙동강과 밀양강이 휘감아 도는 밀양은 영월이나 단양, 양평 못지않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일상에서 강과 호수처럼 아름다운 수변 풍경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밀양댐을 비롯해 가산저수지 위양지 등 물과 관련된 명승지가 많다. 얼음골, 구만폭포, 호박소도 밀양에서 만날 수 있는 명소이다. 살고 싶은 고장이자, 휴식을 취하고 싶은 힐링 여행지이기도 하다.
물의 고향 밀양을 만끽하기 위해 아리나 둘레길, 영남루 주변 수변 산책로, 금시당길을 두루 걸어보기로 했다.
밀양강 둔치의 용두교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경사 쪽으로 걸어보았는데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되었다. 잔잔한 강물에 강을 둘러싼 봉우리들의 반영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이 정도 풍경의 수변 산책로가 그냥 ‘동네길’로 불리는 밀양이 부러웠다. 삼문동은 여의도처럼 강 한가운데 있는 섬인데 밀양에는 이런 곳이 두어 곳 더 있다.
이런 곳의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김제 벽골제와 제천 의림지와 함께 삼국시대 3대 저수지로 꼽히는 수산제가 있는 밀양은 물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전국에서 손꼽는 수변구역을 가진 밀양 시민들은 밀양강 천변이나 가산저수지 등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며 충만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그중에서도 밀양에 가면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은 위양지다. 시간이 빚어낸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가서 호젓함을 맛보길 권한다.
위양지 위양지
영남루 수변공원길 영남루 수변공원길

철 따라 꽃따라 가보는 밀양 수목 기행

셋, 노거수((老巨樹_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도시 밀양. 담양이나 광양 그리고 언양처럼 밀양 역시 노거수가 두루 포진한 수목의 도시다. 위양지 외에도 고목이 주는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고 의연하게 서 있는 고목과 천년의 세월을 품은 물이 빚어내는 풍경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밀양의 명승지는 가야 할 계절이 정해져 있다. 특정 수목과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꽃이 필 때가 그곳을 방문할 최적기이다. 목련길이 유명한 삼랑진양수발전소는 봄에, 안인리의 장미꽃 길은 늦봄에, 이팝나무꽃이 아름다운 위양지는 초여름에, 기회 송림의 해바라기길은 여름에, 명래리 강변 메밀꽃밭과 삼문 송림의 구절초밭은 가을에, 너른 억새밭이 매력적인 추화산과 사자평은 늦가을에 가야 제격이다.
밀양에도 벚꽃길 명소가 많지만, 밀양만의 매력을 주는 이런 꽃길을 더 추천하고 싶다. ‘밀양 꽃 달력’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다채로웠다. 밀양시는 8곳의 ‘힐링 꽃길’을 선정하고 이를 알리고 있다.
상남면 종남산 진달래 상남면 종남산 진달래
철도 관사 마을 철도 관사 마을

근대의 풍요를 기억하게 하는 삼랑진의 노을

넷, 밀양의 역사적인 발자취를 느껴 보기 위해 찾아간 곳은 삼랑진이다. 삼랑진을 중심으로 ‘근대의 기억’을 한 번 더듬어 보려고 했다. 조선 시대 수운의 중심지였던 삼랑진은 낙동강과 밀양강이 교차하는 물류의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대표적인 수탈창고 지역이기도 했던 이곳에 어떤 흔적이 남았는지 궁금했다. 화려한 기억을 가진 소도시가 주는 애잔한 매력을 기대하며 지역을 둘러보았다. 기대가 좀 컸던 탓일까. 군산이나 목포와 같은 적산가옥 밀집 지역은 없었다. 군데군데 적산가옥이 보이기도 하고 삼랑진역 급수탑처럼 뚜렷한 유적도 있긴 했지만 마음먹고 찾지 않고서는 ‘근대의 기억’을 더듬기 쉽지 않아 아쉬웠다. 다행히 17채의 관사가 있는 ‘철도 관사 마을’에서 화려했던 그 시절의 일부 조각을 얻을 수 있었다.
예상 밖의 성과도 있었다. 삼랑진의 석양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한 것이다. 정서 방향에 낙동강을 두고 밀려 들어오는 밀양강 물을 언덕 위에서 볼 수 있는 전망좋은 식당을 발견했다. 제철 웅어회를 먹으며 바라보는 노을이 매력적이었다. 이곳에서 거족 마을로 이어지는 강가길은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손꼽히는 곳이다.
삼랑진 패러글라이딩 활공장도 석양 명소로 추천할 만하다.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서쪽으로 아련하게 뻗어있는 낙동강과힘차게 북쪽으로 치고 올라가는 밀양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밀양 여행의 마지막 장소로 추천할 만하다.
밀양에서 더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은 수려한 산과 깊은 골짜기, 그리고 그 산자락에 자리 잡은 얼음골이다. 영남 알프스의 동쪽에 위치한 언양이 트레킹 명소로 꼽힌다면 밀양은 독특한 기후 특성으로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과 함께 만어사 너덜바위처럼 신비로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도 많다. 아름다운 수변에서 꽃과 나무를 벗 삼아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는 여행이 기다리는, 천천히 꼼꼼히 볼수록 더 아름다운 곳, 밀양이다.
삼랑진 낙동강의 일몰 삼랑진 낙동강의 일몰
밀양으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밀양의 추천 맛집

  • 밀양을 대표하는 음식, 돼지국밥

    밀양과 부산은 지금 돼지국밥 전쟁 중이다. 밀양과 부산 중 어디가 원조냐는 것이다. 여행 감독의 관점에서 보면 밀양 손을 들어주겠다. 지명에 볕 양(陽)자를 쓰고 조선 시대 읍성이 있던 지역에는 모두 육식 문화의 전통이 있다. 언양불고기, 광양불고기, 담양떡갈비처럼 밀양의 돼지국밥은 밀양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밀양돼지국밥'을 알리고자 만든 캐릭터 ‘굿바비’ 를 9급 공무원으로 임명한 밀양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밀양 돼지국밥집으로는 단골집, 설봉, 제일식당 등이 맛집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단골집은 밀양식 돼지국밥의 전형으로 인정받는 식당이다.
  • SNS 맛집으로 떠오른 개성 있는 만두 요리

    영남루 근처의 도시재생 시설인 미리미동국 옆에 있는 만둣집 굴림당은 개성 있는 만두 요리와 탁월한 맛으로 SNS 명소로 꼽히고 있는 곳이다. 인기 메뉴인 꼬마 찐빵, 매운굴림, 찹쌀피새우를 주문해 보았다. 그중에서도 찹쌀피새우는 시각적·미각적인 완성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메뉴로 얇은 만두피에 가득한 새우소에서는 육즙이 터져 나왔다. 작은 크기의 앙증맞은 꼬마 찐빵은 먹는 재미가 있었고 매운굴림은 매콤하면서도 당기는 맛이 좋았다. 이 집의 인기 메뉴 중 하나인 분홍 탁주는 만두와 식 궁합이 꽤나 좋아 곁들여 먹을 것을 추천한다.
  • 낙동강, 밀양강, 바닷물이 만나는 삼랑진의 민물회

    삼랑진은 낙동강과 밀양강이 만나고, 바닷물도 역류하여 3개의 물결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곳에는 향어, 잉어, 붕어 등 민물고기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모여있다. 마침 웅어가 잘 잡히는 철이라 웅어회를 뼈회로 먹었다. ‘가을 전어, 봄 웅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웅어는 맛이 좋기로 소문난 생선으로 조선 시대에는 임금님께 진상되기도 했다. 비빔장과 함께 비벼서 먹어보니 청어나 전갱이회처럼 감칠맛이 있었다. 수월지횟집은 낙동강의 석양 맛집이다. 해 질 무렵 회 한 점, 해 한 점 번갈아 가며 밀양의 맛을 풍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