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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 투자 아닌 생애주기 살피는 '금융 교육'이 필요합니다
홍익대학교 경영학부
홍기훈 교수
최근 몇 해 사이, 시중에 유동성이 급증하면서 투자에 관심을 두는 이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러나 끝없이 오를 것 같던 자산 가격은 어느 순간 주춤하고, 뒤늦게 투자에 뛰어들었다 금전적 손해를 본 이도 적잖이 생겼다.
투자금융 최전선에서 실무를 경험한 전문가이자 경제학자인 홍기훈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지켜보며 진정한 의미의 ‘금융 교육’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글
정라희 /
사진
김수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투자 권하는 사회, 시장을 보는 바른 눈
한동안 미디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급했다. 일찌감치 부동산이나 주식, 코인 등을 사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며 빚을 내서라도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다’라는 ‘영끌’을 자처하는 이도 많아졌다. 그러나 시장 상황이 반전하면서 ‘부자가 되겠다’ 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섣불리 투자에 나섰던 이들의 곡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곳곳에서 ‘집값이 너무 올랐다’, ‘당신의 소득만 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살기 어려우니, 투자해야 한다’ 같은 논리로 투자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죠. 자본시장에서 자본을 활용하는 일은 당연한데, 최근 투자 행태를 보면 그 ‘목적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자본시장은 현재의 소비에 사용하지 않은 돈을 미래의 소비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요즘은 ‘1억을 번다’ 같은 목표에 집착하는 방식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큽니다.”
홍기훈 교수의 지적이 남다르게 들리는 까닭이 있다. 홍익대학교 경영학부에서 재무학을 가르치는 그는 학계에 들어서기 전 자산운용사,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서 근무했다.
투자의 실상과 작동 원리를 잘 아는 만큼 더욱더 객관적으로 금융시장을 바라보고자 노력해 왔다. 계량경제학을 전공해 통계학적 관점에서 금융시장을 분석해온 그에게 금융계나 미디어에서 디지털 자산을 비롯해 블록체인, 메타버스, 예술 금융 등에 관한 자문을 자주 구하기도 한다. 한창 디지털 자산 광풍이 일던 시기에도 시장을 신중하게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흔들리지 않았다.
“일시적인 트렌드에 올라타 돈을 버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내 능력으로 돈을 벌었다’는 오만이나 착각이 시장을 왜곡해 바라보게 합니다. 저 역시 2000년대 초중반 금융시장 호황기에 불나방처럼 투자에 뛰어든 적이 있습니다. 제 실력으로 투자에 성공한 줄 알았지만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겪으면서 큰 손실을 보았어요. 그때 거시적 시장 상황에 따라 제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저처럼 어떤 분이 투자에 성공했다고 해도 실력이 아니라 운이 크게 작용한 것일 수 있습니다.”
당시 경험 이후 홍기훈 교수는 “자본시장의 본질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라고 말한다. 투자의 성공 여부가 개개인의 지성과 크게 상관없다는 것은 만유인력을 발견한 천재 과학자 뉴턴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영국 남해회사 버블 당시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큰 재산을 잃은 뉴턴은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근시안적 접근보다 생애주기 고려한 금융 계획 세우기
일각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금융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경제관념을 익히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홍기훈 교수는 금융 공부를 투자 공부로 좁혀 인식하는 일부 접근 방식을 우려한다.
2022 메타버스 ESG 토론 모습 [출처: IT Chosun]
“요즘 꽤 많은 사람이 금융 공부를 투자 공부로 착각합니다. 유튜브 등지에서 ‘금융 문맹을 없애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인지도를 높인 분도 금융의 기초 지식이 아닌 투자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요.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금융 공부란 자본에 대한 기본 개념과 각자의 인생관을 바탕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데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때 각자에게 맞는 금융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까닭이다.
“‘내가 왜 사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 그 어떤 사람도 ‘40대에 100억을 모아 조기 은퇴하겠다’라는 허황한 목표를 세우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런 목표는 현실적으로도 이룰 수 없어요. 거시경제 평균 성장률과 자본시장의 평균 수익률은 같아야 하는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4%라고 하면 자본시장 평균 수익률도 4% 안팎에서 결정되는 것이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투자로 100%, 150% 수익률을 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는 개개인이 자본시장에 올바르게 접근하려면 “생애주기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이 젊은 시절 일을 해 자본을 모으고, 노후에는 축적한 자본을 소비하면서 살아간다. 각자 실제 삶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언제 취직해 어느 시점에 가정을 이루고 집을 장만할지 생각하는 데서부터 자연스럽게 금융 공부가 된다는 것 이다. 생애주기에 따라 금융 계획을 세우면 근로소득과 예· 적금의 중요성도 깨닫게 된다.
진정한 의미의
금융 공부란
자본에 대한 기본 개념과
각자의 인생관을
바탕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데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하루를 우리에게 투자한다면’ 출연 모습 [출처: 하우투 유튜브]
한탕 심리에 흔들리지 말고 금융을 제대로 이해해야
금융 교육의 본질을 흔드는 정보는 곳곳에서 쏟아진다.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를 비롯해 블록체인, 메타버스, NFT 등 여느 사람에게는 낯선 용어를 접할 때면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경제 동력에 빠르게 올라타야 할 것 같은 조급함도 든다. 최근에는 많은 사람이 NFT에 관해 말하고, 숱한 회사가 NFT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2013년부터 이미 블록체인을 연구해 온 그는 NFT 광풍 역시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블록체인이 가상화폐의 거래 명세를 기록하는 장부라면 NFT는 디지털 경제 생태계에서 소유권을 증명하는 일종의 등기입니다. 최근 급격하게 관심이 올라간 NFT를 이해할 때도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술과 관련한 어려운 용어로 현혹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NFT에 새로운 비즈니스와 투자 기회가 있을 것처럼 여기지만, 나름대로 이 분야에 오래 몸담아온 제가 볼 때는 ‘NFT가 돈이 된다’라는 프레임을 씌운 경향이 큽니다."
지난 3월, 홍기훈 교수는 「NFT 미래수업」을 출간했다. 디지털 기술의 맥락을 살피며 NFT 시장을 분석한 이 책을 통해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기본’이다. NFT를 투자 수단으로만 호도하는 일부 미디어나 책과 달리 NFT의정의와 등장 배경, 사회적 맥락 등을 전하며 NFT에 관한 대중의 이해를 돕는다.
새로운 기술에 투자해야 도태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시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그를 두고 누군가는 ‘회의주의자’라고 평하기도 한다.
대학에서 투자론을 강의할 때도 가상화폐 이야기가 나오면 학생들의 눈이 일순간 반짝이는 것을 자주 느꼈다. “수업이 지루해질 즈음에 잠을 깨우는 용도로 가상화폐 이야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사실상 내재가치가 없는 코인은 순수하게 단타 시장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코인에 투자하는 이유는 그저 오늘 사면 내일 오를 거라는 기대심리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금융 공부가 ‘돈벌이’로 왜곡되지 않기를 더더욱 바란다. 투자 광풍에서 비롯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장기적으로 청소년을 위한 금융 교육에도 관심을 쏟고자 한다.
단순히 많은 돈을 버는 데 집착하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과 ‘자기 삶의 결정권’을 통해 진정한 인생을 그려갈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