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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22 Vol.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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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학교

드라마 속 판타지가 '이상'하지 않은 세상
사회적 이해와 공감으로 함께하는 '장애' 이야기

나사렛대학교 유아특수교육학과
김병건 교수
지난여름, 많은 사람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열광했다. 뛰어난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함께 지닌 주인공 ‘우영우’가 특별한 능력과 남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며 울고 웃었다. 동시에 드라마를 둘러싼 다양한 평도 쏟아졌다. ‘현실에 우영우는 없다’는 지적에도 드라마가 남긴 긍정적 영향력은 크다. 발달장애와 특수교육공학 연구자인 김병건 교수가 드라마 자문을 맡은 이유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우영우 신드롬, 자폐인을 향한 이해의 출발

첫 회 시청률은 0.9%, 최종회 시청률은 17.5%(조사기관 AGB 닐슨, 전국 기준)였다. 지난 6월 29일부터 8월 18일까지 16회에 걸쳐 방영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시청률 기록이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인물이 특별한 능력과 남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드라마의 인기는 회를 거듭할수록 높아졌다. 드라마가 화제에 오르면서 다양한 논의도 생겨났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폐인을 향한 편견과 차별을 짚어준다는 평과 함께, 실제 자폐인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럼에도 김병건 교수는 드라마가 불러온 긍정적 영향에 초점을 맞췄다.
“저도 드라마가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고, 자폐인에 대한 시선이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중에게 미디어를 통해 장애를 소개하는 일도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양한 논의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처음 드라마 자문 제의를 받고 거절했다. 그도 한때 장애 아동의 부모였기에, 자폐인 가족들의 반응이 어떨지 마음이 쓰였던 까닭이다. 혹시라도 드라마 속 이야기가 자폐인 가족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아들이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뇌사가 진행되어 중증장애가 남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인 부모로 6년을 보냈어요. 지금은 다행히 괜찮아져 일반 학교에 잘 다니고 있지만, 혹시라도 자문을 맡은 드라마의 내용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면 장애인 가족들이 받을 상처가 얼마나 클지 너무 잘 알았기에 겁이 났어요. 아들이 제가 드라마에 출연하는 줄 착각해 ‘이건 해야 한다’고 조르기도 했는데, 이후에 제작진과 함께 시놉시스와 대본을 보면서 기존 미디어에서 소비해 온 자폐나 장애와 다른 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기획 의도에 공감해 자문을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기

김병건 교수의 자문은 우영우 캐릭터의 행동 특성에 반영되었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자폐의 특성은 무척 다양하다. 그렇기에 그 역시 특정한 기준을 정하기보다 제작진과 상의하며 자폐의 어떤 모습을 반영할지 고민했다.
“온라인에서 오가는 반응 중 ‘우영우가 자폐인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말이 있었어요. 저 역시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자폐인을 대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존재죠. 하지만 절대 볼 수 없는 존재도 아닙니다.”
네티즌 사이에서 우영우의 모델로 지목된 미국 플로리다의 헤일리 모스 변호사 역시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 김병건 교수가 드라마 자문 당시 참고한 책 중 하나인 「나의 뇌는 특별하다」의 저자인 콜로라도주립대학교 템플 그랜딘 교수 역시 자폐인이다.
“템플 그랜딘 교수는 요즘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아인슈타인은 자폐였다’라고 말합니다. 일론 머스크도 스스로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다고 밝혔고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불편함이 클 거라는 생각은 편견입니다.” 드라마가 희소한 인물을 다루기에 얼핏 판타지 같은 측면이 있지만, 이야기 자체보다 드라마에 나오는 장애에만 초점을 맞추는 반응은 아쉽다. 드라마를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늘어났으나, 여전히 장애인을 향한 사회적 시선에는 한계가 있다. 김병건 교수는 우영우라는 인물을 통해 자폐인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 비장애인들이 어떻게 그들과 어울려야 하는지 생각해 주길 바란다. 김병건 교수는 드라마에서도 우영우가 홀로서기를 하기보다 정명석 변호사를 비롯한 동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주목한다.
“장애인들과 물리적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사렛대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니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장애인 학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장애인 학생 비율이 높은 편이고요. 하지만 비장애인 학생들이 장애인 학생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렇게 물리적 공유와 함께 점차 사회적 공유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비장애인도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취약한 점을 다 갖고 있지 않느냐”라고 되묻는다. 대중교통에 임산부나 노약자를 배려한 좌석을 만드는 것도 사회 구성원을 배려했을 때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기 때문이라는 것. 장애인을 향한 배려도 그와 비슷한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
나사렛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모습 [출처: 나사렛대학교]

‘다른 것’은 우열이 아닌 이해와 존중의 영역

한때 한국은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는 데 익숙했다. 과거의 특수교육이 난관을 겪은 부분도 정상과 비정상을 인위적으로 구분한 데서 오는 오해가 미치는 영향이 컸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다문화가 익숙해졌듯이, 장애도 병리적 관점이 아닌 다양성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의료 영역에서는 병리적 관점에서 치료하려고 하겠지만, 교육 영역에서는 자폐를 병으로 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자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어요. 가장 큰 변화는 병리적 관점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다른 입장에서 자폐인을 바라보면 환자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중립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자폐가 일상에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지만, 우영우처럼 이례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능이 발달하기도 합니다.”
자폐인은 비장애인과 다르게 사고할 뿐이다. 우영우 역시 드라마에서 비장애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답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다르다’는 것은 우열의 영역이 아닌 이해와 존중의 영역이다. 특수교육은 보통교육 범위 안에서 다루기 어려운 특수아동을 대상으로 하는데, 여기에는 장애인은 물론 영재도 포함된다. 의아하게도 한국에서는 영재 교육을 별개로 보지만, 자폐인의 경우 장애와 영재성 양극단을 아우르는 특성이 있다. 김병건 교수는 연구자로서 이 점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유아특수교육은 특수교육 안에서도 아주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중재하는 입장에서 볼 때 장애를 좀 더 빨리 찾아내고 그에 따라 적절히 중재해 주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영·유아기에는 중재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더 빠르기도 하고요.”

‘통합’의 첫 걸음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일상에서 장애인을 자주 볼 수 없는 이유가 이들이 이동하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부족해서라는 지적도 많다. 이에 대해 김병건 교수는 “한국의 장애인 지원 제도는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지만, 일원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장애인 지원 제도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이원화되어 있어 당사자들의 제도 접근성이 떨어지고 개개인이 발품을 팔아 일일이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 또 각 가정에 책임을 지우기보다 사회 시스템이 장애인의 삶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역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자문하면서 배우고 깨달은 바가 있다. 장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고려해야 할 단계가 하나 더 있다는 점이다.
“통합교육과 관련해 학계에서 20년 이상 수행해 온 연구는 장애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증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장애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야 통합교육이 효과가 있다는 거였죠. 저 역시 그 점에 동의합니다. 다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좋아하게 되면, 자발적으로 장애에 관심을 두고 관련 내용을 찾아보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특수교육 측면에서 최종 목표는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통합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풍부한 지원이나 다양한 제도가 갖춰지더라도, 결국 장애인들의 다양성을 사회가 받아들일 때 비로소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느리더라도 언젠가 올 그날을 향해, 그 역시 자신의 손을 힘껏 보탤 것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