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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3 Vol.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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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곱하기

방방곡곡 숨은 명소

깊어져 가는 겨울을 만끽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따뜻한 실내에서 벗어나 얼어붙은 순백의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닐까? 겨울 한복판, 보석처럼 반짝이는 얼음 왕국 청양으로 떠나는 여정은 어쩌면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해 줄지 모를 일이다. 청양 알프스마을로 마법에 빠진 동화 속 주인공을 만나러 떠난다.

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청양군청

우인재 작가는 10여 년간 출판사에서 여행 콘텐츠 기획 및 취재를 담당했다. 아시아나항공 기내 가이드북 로스앤젤레스 편을 비롯해 대한생명, 교보생명, 외환은행 등 보험·금융사 고객용 여행 가이드북을 기획 및 제작했다. 또 월간 「DOVE」, 「모터트렌드」 등의 매체를 비롯해 인천공항공사, 롯데백화점, 조달청, 롯데제이티비, LS전선 등 기업체 사보에 여행, 드라이브 원고를 기고했다. 현재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청양군 천장호

충남의 알프스에서 맞이하는 겨울

오대산에서 뻗어 나온 차령산맥이 기호지방을 가로질러 서쪽 바다로 나서기 전 빚어놓은 칠갑산(七甲山)은 고대 백제인들이 진산으로 여겨 제천의식을 행하던 장소였다. 만물을 생성하는 7대 근원을 뜻하는 ‘칠(七)’과 싹이 난다는 의미를 담은 ‘갑(甲)’을 묶어 ‘생명이 시작되는 원천’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이러한 연유 때문. 다른 한편으로는 일곱 장수가 나올 장소라고 해 칠갑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칠갑산은 해발 561m로 고봉준령의 범주에는 들지 않지만 대덕봉, 명덕봉, 전혜산 등을 거느리고 있으며 대치천, 장곡천, 잉화달천 등 골골이 맑은 물이 넘쳐흐르는 수려한 풍경도 보여준다. 칠갑산은 아름다운 만큼 험해서 ‘충남의 알프스’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덕분에 1973년 일찌감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한가운데 솟아오른 이 영험한 산자락에는 청양고추의 고장 청양군이 자리 잡고 있다. 매운 고추의 대명사인 청양고추가 청양군의 대표 농산물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러나 최근 청양군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칠갑산 기슭에 있는 소읍 천장리가 눈과 얼음을 테마로 하는 ‘알프스마을’로 탈바꿈하면서부터다.
알프스마을 얼음분수 알프스마을 얼음분수
알프스마을 눈조각 알프스마을 눈조각

얼어붙은 순백의 왕국에서 동화 속 주인공을 만나다

꽁꽁 얼어붙어 보석처럼 빛나는 얼음 분수와 새하얀 눈으로 깎아 빚은 조각상은 겨울 동안 이 작은 마을을 얼음 왕국으로 변모시킨다. 썰매와 봅슬레이를 체험하는 아이들의 두 뺨은 찬 바람에 빨갛게 되어버렸지만,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동심은 거침없이 얼음판을 가르며 겨울을 이겨낸다. 신나게 놀다가 허기질 때 쯤이면 군밤과 군고구마, 군옥수수와 빙어튀김 등 시골 정취 가득한 군것질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밤이 찾아오면 알프스마을은 오색 조명의 마법으로 더욱 화려해진다. 얼음 벽돌과 눈으로 만든 커다란 조각상들이 빨주노초파남보의 화려한 무지갯빛 조명을 받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축제 행사장 곳곳을 거닐다 보면 마치 어디선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와 안나, 올라프가 노래를 부르며 튀어나올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청양에서도 산골로 꼽히는 천장리는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자리해 ‘하늘 천(天)’ 자를 넣어 지어진 이름이다. 청양군의 다른 지역처럼 농사로 먹고사는 평범한 시골 마을이던 천장리는 지난 2005년 도농교류센터가 만들어지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8년 제1회 칠갑산얼음분수축제가 개최된 이후 천장리는 청양군에서 가장 많은 외지인이 찾아오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는 싹을 틔우게 된다. 물론 코로나19로 2020년에는 관광객 수가 급감한 적도 있지만 1년 뒤인 2021년에는 얼음분수축제 기간에만 7만 명이 넘게 방문하면서 또 한 번 알프스마을의 인기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천장리 알프스마을은 충청남도 130여 곳의 체험 마을 중 유일한 ‘으뜸촌’으로 지정받았다.

아찔한 출렁다리에서 감상하는 천장호 비경

칠갑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하는 천장리에는 청양군이 보유한 또 하나의 명물인 천장호 출렁다리가 있다. 2017년 개장한 천장호 출렁다리는 당시 국내 최장 길이(207m) 출렁 다리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최근 지자체마다 출렁다리, 스카이워크 등 경관시설을 조성하면서 현재는 다른 출렁다리에 기록을 넘겨주었지만, 청양의 상징인 고추(청양고추)와 구기자 모양의 주탑, 아름다운 천장호 풍경으로 개통 3개월 만에 25만 명이나 방문했다. 몇 해 전에는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출연자들이 천장호 출렁다리를 방문해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출렁다리를 건너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천장호 풍경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선사하는데, 꽁꽁 얼어붙은 호수가 새하얀 눈으로 덮이는 겨울철에는 환상적인 설경을 선보인다. 또 금요일과 주말 밤에는 야간 조명으로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으므로 알프스마을 얼음 분수 축제를 마음껏 즐기고 나서 오후 늦은 시간에 방문하는 것도 좋겠다.
천장호 출렁다리에는 방문객들이 꼭 한 번 들러 인증사진을 남기는 황룡과 호랑이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은 몸이 아픈 아이를 위해 승천을 포기하고 자기 몸으로 다리를 놓아 아이가 의원에게 갈 수 있게 해주었던 용과 그에 감명받아 이 지역의 영물이 되어 주민들을 보살폈다는 칠갑산 호랑이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천장호 출렁다리 야경 천장호 출렁다리 야경

칠갑산에 밤이 오면 떠나는 반짝반짝 별자리 여행

물 맑고 공기 좋은 청양은 별을 관측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지닌 곳이다. 특히 칠갑산 천문대 스타파크에서라면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오리온자리, 큰개자리 그리고 2023년 새해를 상징하는 동물인 토끼자리 등 겨울철 별자리들을 더욱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칠갑산 중턱에 자리 잡은 칠갑산천문대 스타파크는 국내 유일의 도립공원에 자리한 천문대로 독일산 304mm 대형 굴절망원경을 비롯해 다양한 소형 천체망원경을 통해 별자리와 행성, 성운 등 우주의 다채로운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또한 플라네타륨(Planetarium)이라 불리는 고화질 천체투영기를 통해 돔 형태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입체적인 우주 영상을 볼 수 있어 흐린 날에도 방문하기 좋다. 3D 안경을 쓰고 감상하는 입체 영상도 마련되어 있으며, 시즌별로 일어나는 천문 현상에 맞춰 진행하는 이벤트와 다채로운 천문 우주 관련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사방이 탁 트인 천문대의 위치 덕분에 칠갑산과 어우러진 충남 알프스의 수려한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칠갑산천문대 칠갑산천문대

누구라도 산책하고 싶은 조붓한 천년 고찰

청양으로 떠난 여정의 끝은 칠갑산 서쪽 통일신라 시대 지어진 고찰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어떨까. 칠갑산 서쪽 자락의 아늑한 골짜기에 들어앉은 장곡사는 신라 문성왕 때인 850년, 보조선사 체징(體澄)이 창건한 천년 고찰로 유구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며 현재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다. 장곡사는 전각이 모두 10여 채에 불과한 아담한 절이지만 국보와 보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두 곳의 대웅전이 있는 보기 드문 사찰이다. 보물 제162호 상대웅전, 보물 제181호 하대웅전을 비롯해 국보 제58호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국보 제300호 미륵불괘불탱, 보물 제174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보물 제337호 금동약사여래좌상 등 보유 문화재를 일일이 열거하기 버거울 정도다. 두 대웅전은 건립 시기는 물론 바라보고 있는 방향도 다르다. 고려시대 건축기법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상대웅전은 동남쪽, 조선시대 중기에 지어 올린 하대웅전은 서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사학자들은 이 사찰이 과거 두 사찰로 분리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겨울의 고요에 잠겨 있는 조붓한 산사의 분위기가 아닐까. 눈이라도 쏟아지는 날에는 사그락사그락 새하얀 눈송이가 쌓이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려올 것 같다. 외지인의 발길이 뜸해지는 겨울은 이토록 아담한 절집의 뜨락을 거닐기에도 무척이나 좋은 계절이다. 졸음에 겨운 동자승의 눈꺼풀이 감기듯 칠갑산 자락의 겨울이 깊어만 간다. 케이 로고 이미지
장곡사 범종루 장곡사 범종루
장곡사 겨울 전경 장곡사 겨울 전경
청양으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청정한 자연 속 로컬푸드 천국

  • 구기자의 에너지를 가득 담은 한우탕

    고추와 함께 청양군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꼽히는 구기자는 약재로 쓰일 만큼 몸에 이로운 식물이다. 그 옛날 진시황제가 애타게 찾던 불로초가 사실은 구기자라는 구전이 있을 정도.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집필한 「동의보감」에 따르면 구기자는 맛이 달콤하고 독이 없어 허약한 몸을 다스리고 뼈와 근육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구기자한우탕은 청양군의 청정한 자연에서 자란 한우 사골에 구기자를 넣어 우려낸 밑 국물로 만든 갈비탕의 일종으로, 깊은 국물 맛과 넉넉한 양이 특징이다. 청양군 비봉면사무소 인근 칠갑산청정한우타운(041-942-9259)에서 구기자한우탕을 비롯해 버섯불고기전골, 육회비빔밥 등을 맛볼 수 있다. 칠갑산청정한우타운은 지역 농협에서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라 믿을 만하다.
  • 맑은 바람과 햇살로 차린 농부밥상

    농부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생산한 깨끗하고 안전한 식재료를 이용해 웰빙 먹거리를 제공하는 로컬푸드 식당이 주목받는 시대다. 청양군 대치면의 칠갑저수지 바로 옆에 있는 농부밥상(041-944-0900)은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과 청양 한우 등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농가 레스토랑으로 청양에서는 이미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청양농부한상, 구기자떡갈비한상 등 주요 메뉴의 이름도 친근한 느낌. 정성껏 준비한 음식도 맛깔나지만, 칠갑산도립공원 관문에 해당하는 칠갑저수지 주변에 자리 잡고 있어 주변 경관도 아름답다. 식당 1층에는 지역 농산물과 간식거리를 판매하는 로컬푸드 직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청양의 식재료를 구입해 귀가한다면 무엇보다 뜻깊은 기념이 될 것이다.
  • 산사 나들이에 제격 산나물비빔밥

    사찰을 둘러보고 나와 맛보는 산나물비빔밥은 항상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고사리, 취나물, 도라지, 머위 등 칠갑산 일원에서 채취한 신선한 산나물을 주재료로 만드는 산나물비빔밥의 아삭한 식감은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주기에도 제격이다. 청양 장곡사 가는 길목에는 칠갑산맛집(041-943-5912), 칠갑산골(041-943-7211) 등 산나물비빔밥 전문 식당이 옹기종기 모여 식당가를 형성하고 있다. 식당마다 메뉴가 조금씩 다르지만 산나물비빔밥은 어느 집을 찾아도 맛볼 수 있으며, 여기에 손두부와 도토리묵을 애피타이저로 곁들이면 점심 식사로 나무랄 데 없는 한 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