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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3 Vol.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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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곱하기

키워드로 읽는 시사


어린 시절의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늙지 않는 어른이들의 세상
네버랜드 신드롬

아이의 놀이터에 어른의 접근 금지 명령은 사라졌다. 어른과 아이가 뒤섞이고, 어른들은 때로 아이보다 더 들뜬 마음으로 놀이에 집중한다. 어른들의 ‘피터팬 모험기’가 시작되었다.
영원히 아이의 모습으로 사는 피터팬의 후손, 또는 복제 인간 클론들이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하나의 신드롬을 형성하고 있다. ‘어른답게’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한순간에 머물러 그 시절 자신의 기억을 오래 붙들던 대상에 집착하며 지금의 고단하고 복잡한 현실과 동떨어지려는 경향이 그것. 이른바 ‘네버랜드 신드롬’이다.

김고금평 머니투데이 기자

자유롭게 모험을 즐기고 희망을 놓지 않는 네버랜드 신드롬

지난해 초 대부분 편의점에는 포켓몬 빵을 사려는 어른으로 가득했다. 1990년대 어린이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제품을 그 시절 감성 그대로 담아 재출시했는데, 출시 43일만에 1,000만 개가 팔리며 연일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성인들은 레트로(과거 문화 회귀)로, 청소년들에겐 뉴트로(새로운 문화)로 각각 인식하며 누구나 사랑하는 최애템으로 떠오른 것이다. 무엇보다 ‘띠부띠부씰(포켓몬 스티커)’ 뽑는 재미를 그대로 살려 어른과 아이의 동심을 동시에 자극했다.
피터팬 신드롬(콤플렉스)이 몸은 어른인데 심리적으로는 아이 상태에 머무르려는 퇴행적 심리 상태를 일컫는 부정적 정의라면, 네버랜드 신드롬은 피터팬처럼 늙지 않는 아이들이 모여 자유롭게 모험을 즐기며 사는 긍정과 희망의 찬사다. 특히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만큼 한국 사회에서 더 큰 미덕이 없다보니 더욱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저택 이름을 네버랜드 목장이라고 짓고 그곳을 테마파크처럼 판타지 넘치는 공간으로 꾸며 영원히 늙지 않는 아이처럼 살겠다고 공언했다.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그 ‘희귀한 삶’이 이제 우리 시대 ‘보편적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포켓몬 빵이 ‘정신의 유년화’를 추구한다면, 다음 사례에서 ‘육체의 유년화’를 통해 네버랜드 신드롬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경향을 읽을 수 있다.

나이를 거스르는 더 젊고 건강한 몸에 대한 열망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 ‘탑건’은 1986년 개봉했다. 그러고 나서 이 영화는 잊힐 법했는데, 지난해 후속작 ‘탑건: 매버릭’이 무려 36년 만에 개봉해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이미 톰 크루즈의 나이가 우리 나이로 환갑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열광했다. 명작의 후속편에 대한 기대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환갑의 나이에 여전히 젊은 시절과 똑같은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늙지 않은’ 청춘에 감탄을 잊지 않은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화제작은 단연 ‘피지컬:100’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이다. 근육질 남녀 100명이 출연해 대결을 펼친다. ‘몸짱’들의 대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이 서바이벌예능에는 과거와 조금 다른 ‘무엇’이 있다.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의 승자가 누구일지에도 관심이 높지만, 이보다 “저런 몸이 어떻게 가능하지” 같은 부러움과 찬사를 보내며 관심을 쏟는 것이다. 50세로 ‘피지컬:100’에 출연한 추성훈을 보며 같은 나이의 직장 상사를 떠올릴 시청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네버랜드’를 꿈꾸기 전, 우리는 승진, 임금 인상, 사회적 인정 같은 능력을 인생의 최우선 목표로 살아왔다. 하지만 네버랜드에 다가갈수록 희생보다 만족을 위해 사는 삶에 중심추를 옮기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더 어리고, 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키덜트 마켓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올해 부각하는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네버랜드 신드롬을 꼽으며 ‘우리 사회의 유년화는 단지 일부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사고방식, 나아가 생활양식이 되고 있다’고 정의했다. 여전히 어려지고 싶고, 어린시절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은 생활 곳곳에서 나타난다. 우선 용어부터 다르다. 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인 ‘키덜트(kidult)’, 어른과 아이의 조어인 ‘어른이’는 이제 보편어로 수렴됐고, 모임을 통해 젊은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팬덤을 자처하고 무지개색 양말을 맞춰 신고 여행을 떠나는 풍경이 그렇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1990년대 만화 ‘슬램덩크’를 즐기던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 원 수준에서 2021년 기준 1조6,000억 원으로 늘었으며 앞으로 최대 11조 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키덜트 시장 증가는 세계적 추세다. 미국의 장난감 회사 해즈브로는 2019년 47억 2,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64억 2,000만 달러로 순수입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바비 인형 제조 회사 마텔의 순매출도 45억 달러에서 54억 6,000만 달러로 늘었다.

늘어난 기대수명, 우리만의 공감과 소통의 가치를 찾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 만 65세 이상 인구가 처음으로 900만 명을 넘어섰다. 2025년엔 만 65세 인구가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이 경우, 우리 사회는 네버랜드의 가속화에 따라 더 젊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더 유치해지는 것일까. 네버랜드가 우리 사회에 안착하는 배경을 몇 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우선 늘어난 기대수명이다. 늘어난 수명에 맞춰 생애주기도 달라진다는 것. 어른이라는 구간을 이제 어떻게 정해야 할지 막막하다. 2015년 UN이 내놓은 연령 기준 제안을 보면 청년이 18~65세이고, 중년이 66~79세다. 이제는 청년-중년-노년의 단계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애1-생애2-생애3’으로 독립적 삶의 단계를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다른 하나는 미래 불안감이다. 역사상 가장 호황인 시대에서 자란 세대가 앞으로 닥칠 불안을 보상받는 방식 중 하나로 과거 화려하고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거나 머무르는 것이다.
그러나 네버랜드는 ‘전 국민의 철부지화’라는 극단적 개인화에 매몰될 위험도 적지 않다. 지나치게 자기주장만 내세우거나 생명이 없는 캐릭터에 집착하거나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림으로써 공감과 소통의 가치를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인데도 부모에게서 아직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족이 늘어나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만 만 19~49세 성인 자녀 중 미혼인 경우 64.1%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과거를 추억하고 늘 젊은 감성을 마음에 담고 산다는 것은 100세 시대에 행복을 찾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타인과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계획이 함께할 때, 나만의 네버랜드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점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