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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심어주신 이한중 교장선생님께
작성자 김*옥 2024-05-04
방멸록 샘플
꿈을 심어주신 이한중 교장선생님께

해마다 6월, 누렇게 보리 익는 계절이 돌아오면 교장선생님이 그리워집니다. 농번기에는 전교생이 보리베기 봉사활동을 나서곤 하였지요.
보리를 베러 가는 도중에 교장선생님께서 제 이름을 부르시곤 “너는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 라고 물으셨지요. 부끄러워서 저는 조그만 소리로 ‘선생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장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친절한 선생님이 되어 함께 공부하고 놀면 참으로 행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교장선생님 덕분에 저는 현재 교사가 되어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저는 교사가 좋습니다. 다음에 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셔도 저는 여전히 교사라고 말할 것입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어른이라는 권위보다는 학생들에게 다정한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체육 시간 포크댄스를 배우고 있노라면, 함께 동참하여 저희랑 포크댄스를 추셨지요. 그때 교장선생님의 손길이 얼마나 부드럽고 따뜻했는지 지금도 제 손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늘 친근하게 저를 ‘아버지’라고 놀리셨지요. 어버이날에 했던 연극 <고구마>에서 제가 ‘아버지’ 역할을 맡았는데, 그날 이후로 교장선생님께서는 저를 기억하시고 늘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셨습니다.
한번은 어버이날 행사 연습으로 밤늦게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하필 그날 오후 비가 내려서 다른 동네 아이들은 선생님께 우산을 빌렸습니다. 순둥이 우리 동네 아이들만 미적거리느라 우산도 못 빌리고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때 담임이신 조순아 선생님이 하룻밤 재워준다고 하시어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막 젖은 교복을 벗고 선생님의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뜨거운 라면을 먹고 있을 때 교장선생님과 몇 분의 선생님께서 저희를 찾아오셨습니다.
“너희가 이곳에서 자고 간다는 것을 부모님께서는 알고 계시냐?”
그때는 전화기가 없던 때라 우리 동네 아이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겠다. 일어나라. 데려다 주마.”
할 수 없이 다시 젖은 교복을 입고 따라나섰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 선생님들께서는 저희 3명에게 한 명씩 우산을 씌워주셨습니다. 30분 넘게 걸어가니 비가 그쳤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우리 마을 길은 한밤중 그 시간이 만조인지 밀물이 들어와 바다인지 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물이 많이 들어온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바닷물에 바지를 적시면서도 끝까지 저희들 한 명 한 명을 집에다 데려다 주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되돌아볼수록 저희가 참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사랑으로 저는 중학교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한중 교장선생님, 제가 교사가 되어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1990년도 교사 1정 연수 때 공립과 사립학교 차별하여 연수비를 지급한 것을 보고 공분한 교사들이 연수를 거부하고 저희끼리 연수를 진행하는 한편, 도교육청으로 항의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 교육청 정문 앞 시멘트 길에 앉아 항의 구호를 외치고 있을 때 장학사님이 되신 교장선생님을 뵈었습니다. 그때 잠시 갈등하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때 제 처지가 참으로 난감하였습니다. 둘째 아이를 임신으로 배가 부른 채 도교육청 앞에서 항의하고 있는 상황이라 선뜻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나서지 못한 것을 나중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그 뒤로는 영영 교장선생님을 뵙지 못하였습니다. 이리저리 알아봐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실 테니 아직도 살아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학창 시절 중 가장 그립고 존경하는 이한중 교장선생님,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자상한 관심과 사랑을 저 또한 학생들에게 베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인격적인 존재로 대우해주셨습니다. 몸만 작지, 아이들 마음은 어른과 똑같이 큰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중학교 시절 제 마음에 꿈의 씨앗, 감사와 그리움의 씨앗을 심어주신 교장선생님께 편지로나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4. 5. 3.

김현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