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은경 대표 고문(연합심리상담교육센터)
글 서은경 대표 고문(연합심리상담교육센터)
ADHD인 줄 모르고 살다가 상담실을 찾은 30대 중반 기혼
남성 A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통해 성인 ADHD 증상과 관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A씨는 첫 번째 상담이 시작되자마자 다급하게 “권고사직 위기에 처해 있어요.
제 불찰로 계약서를 잘못 작성해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끼쳤거든요.
회사를 나오면 이혼까지 당할 것 같은데 너무 불안해서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요”라며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첫 상담에서 나는 A씨가 아동기 때부터 ADHD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후 상담에서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기 위한
추가 탐색을 했다. 안타깝게도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많은 ADHD 증상의 단서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아동기 때부터 ‘부주의’와 ‘과잉행동·충동성’에 대한 경험적
단서는 많았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준비물·과제·책가방 등을
챙기지 못해 자주 혼났고, 수업 시간에 엉뚱한 질문을 많이
했으며, 가만히 있지 못했다. 중·고등학생 때도 숙제는 거의
못 해 갔고, 각 과목에 대한 호불호가 너무 심해 좋아하는
수학 공부외에 나머지는 포기해서 성적은 하위권이었으며,
PC방과 만화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집안 일이나 일상 관리 대부분을 아내에게 넘기고, 업무 스트레스는
게임과 만화로 푸느라 수면 시간이 불규칙하고 충분하지
않은 상태다.
이후 병원에서 더 세부적인 뇌신경학적 검사와 심리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성인 ADHD 진단을 받았다. A씨도 그간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으른, 무능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의 병증임을 이해하는 순간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미리 알지 못해 많은 시행착오와 쓰라린
좌절을 예방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과 속상함도 컸지만, 이제
절망 대신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기뻐했다.
성인 ADHD도 신경 발달 장애에 해당한다. 따라서 저하된
전전두엽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한 약물 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 상담 현장에서 만난, ADHD 진단을 받은 성인 내담자들이
약물 치료로 일상생활 및 업무 기능이 상당히 호전되는
경우를 많이 접했다.
두 번째 증상 관리 방법은 심리 상담을 통한 자기 조절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계획, 실행, 욕구 통제, 감정 조절과 관련한
전전두엽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의식적인 ‘4단계 생각하기’인지
회로를 구축해야 한다. 1단계는 과업을 수행할 때
“과업이 무엇이지? 뭘 해야 하지?”, 2단계는 “어떻게 해야하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지? 일의 순서가 어떻게 되지?”,
3단계는 “계획한 대로 진행되고 있나?”, 그리고 4단계의
“계획한 대로 일이 잘 끝났나?”를 순차적으로 자문자답
하는 훈련을 통해 과업 조직화, 효율적 시간 관리 및 계획 실행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주의력 편식이 심한, 즉 주의력 전환이 어려운 ADHD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다르게 표현하면, 자신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일에는 엄청나게 과잉 집중(Hyperfocus)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역이용한다면, 성인 ADHD의
경우 반복되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지만 해내야 하는 상황일
때, 자신이 과잉 집중하는 대상과 활동을 강화물로 사용하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 A씨의 경우 게임을 좋아하는 특성을 활용해
‘업무 처리 게임’을 만들었다.
A씨의 적극성, 몰입도와 창의성은 기대 이상이었다.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려 하는 편식쟁이 특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순간이었다. 스스로 업무 우선순위를 파악해 구체적인 수행
일정표를 작성하고 정한 시간 내 마무리하는 게임을 제안했다. 게임의 레벨 업과 아이템 획득 개념을 차용해 시간
내에 일정을 다 마무리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행동(10분 휴식하며
커피 한 잔 마시기, 업무하는 책상에서 벗어나 걷기
등) 선택권을 허용하고, 만약 계획했던 시간보다 30% 이상
단축하면 좀 더 큰 선물(읽고 싶은 만화 시리즈 구입하기, 퇴근
후 PC방에서 2시간 게임하기 등)을 하는 식이었다.
물론 이렇게 자기 조절을 해나가는 A씨의 꾸준한 노력은 여러
차례 도전을 받았다. 그렇지만 무너진 상황을 변명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직면하는 용기를 냈고, 자신을 ‘안되는
사람’으로 낙인찍지 않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을 자신에게 적용할 줄 알게 되면서 A씨의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내적 상태는 일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정돈된 상태로 옮겨갔다. 혹시 자신이 성인
ADHD가 아닐지 걱정인 분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정확한
진단과 조절을 위한 전문적 도움을 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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