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김수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김수
소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아이들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한다. 부모라면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언제쯤 첫걸음을 떼고, 말문이 트이고, 글자를 읽을지 살핀다.
자기 아이가 남들보다 뛰어나길 바라서는 아니다. 아이의 상태를 제때 살피지 못해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염려스러운 까닭이다. 하지만 자녀를 향한 부모들의 관심은 지나치게 신체
발달과 지능 발달에 쏠린 경향이 없지 않다. 생김새나 기질만큼이나 아이들의 발달 시기와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 김붕년 교수는 “부모의 불안이 아이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걷고, 말하고, 글을 읽고 성장해 나갑니다. 아이의 발달을 파악하고
잘 성장하게 하려면 부모가 뇌 발달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아이마다 개인차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부모의 지나친 걱정이나 과도한 욕심에서 오는 좌절감을 겪지 않을
수 있어요.”
김붕년 교수가 소아·청소년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둔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때다.
소아청소년기에 발생한 정신건강 문제로 성인기까지 어려움을 겪는 환자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ADHD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 다양한 발달장애도 적기에 치료하면 예후가 좋다는
연구 보고와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병행하면 우울증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접했다. 이런 연구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소아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김붕년 교수는 이 분야 연구에 더욱 매진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소아·청소년의 정신건강 연구 사례는 지극히 적었기에 임상은 물론 연구 측면에서도 할 일이 많았다. 그렇게 김붕년 교수는 인간의 뇌 발달과 심리 발달을 통합하는 정신건강 연구를
수행하며, 생애주기에서 뇌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 유·소아기와 10대 연구에 몰두했다.
인간의 뇌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며, 성인기는 물론 노년기에 이르러서도 조금씩 발달한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기에는 신체 성장과 호르몬의 변화를 비롯해 뇌 발달까지 모든 면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는다. 그래서 그는 진료실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만나는 이 아이는
아직 성장하고 있는 아이’라고 말이다. 부모를 교육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를 강조한다. 아이들의 상태는
절대로 고정적이지 않다. 설령 그 아이가 ADHD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해도 아이들은
발달 과정에서 더 성장할 여지가 많다. 이는 그 자신이 실제 환자를 만나고 연구하며 얻은 통찰이다.
“발달 시기마다 아이에게 필요한 ‘기본’이 있어요. 아이가 태어나서 1,000일까지는 애착 관계를 맺는 데
집중하고, 4~7세에는 자기 조절력을 키워 나갑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할 때예요. 애착과 자기 조절은 바로 이 공감 능력을 발달시키는 바탕이 되고요.”
물론 이러한 발달 시기는 참고 사항이며, 아이마다 각자 발달 시간표는 다르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의 마음 읽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가 많아졌다. 하지만 미디어에 소개된 특정
정보에만 집착하는 부작용도 일부 생겨났다. 이에 대해 김붕년 교수는 “아이를 잘 관찰하고, 아이를 잘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아이의 욕구와 능력에 맞게 도움을 주어라”라고 권유한다. 부모가 발달 시기별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과업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면 아이의 기질과 특성에 맞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부모들은 양육 과정에서 아이의 기질과 특성을 알아가기 마련입니다. 다만 부모의 욕심이 커지면
아이의 발달 과정에 유연하게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옆집 아이가 하니까 우리 아이도
준비해야 한다는 방식은 이전까지 잘 쌓아온 부모와 아이의 소중한 애착 관계도 무너지게 만듭니다.
아이의 불안도 커지고요.”
유명한 학원이나 유행하는 도구도 그가 볼 때는 일시적 자극에 지나지 않는다. 양육자가 직접 책을
읽어주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할놀이를 하는 등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쌓일 때 오히려 ‘일상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그는 말한다.
성장 과정에서 뇌 발달이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또 한 번의 시기는 일명 ‘사춘기’라고 하는 10대 때다.
흔히 말하는 ‘중2병’ 역시 아이의 뇌가 발달하고 있다는 증거다. 신체 활동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뿐더러
자기주장과 욕구 표현도 강렬해진다.
“청소년기는 변화와 곡절이 많은 때입니다. 어떤 계기나 기회가 있으면 확 바뀔 수 있죠. 그래서 이 시기
청소년의 모습을 ‘자아 정체성의 확립’ 같은 용어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뇌의 변화’가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청소년기 뇌의 변화는 정신건강의 위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김붕년 교수는 “뇌 발달은 0~3세경 1차
지각변동을 겪은 뒤 10대에 2차 지각변동을 겪는다”라고 전한다. 특히 10대 초·중기에는 사회성과 고위
인지, 정서 조절과 관련한 전두엽 등의 뇌 부위가 재구조화된다. 이러한 변화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폭증하기도 한다. 더구나 한국 청소년들은 과도한 학업 부담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편이다.
스트레스는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정신건강상 악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정서적으로 취약한
아이들을 위해 김붕년 교수가 제안하는 활동은 문화, 예술, 체육 경험이다.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해방구 역할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병원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협력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청소년기 아이를 대상으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팀은 연극을, 어떤 팀은 합창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활동을 했죠. 일주일에 단 2시간만 할애했을 뿐인데도
프로그램을 마친 후 아이들의 스트레스 수준이 눈에 띄게 낮아졌습니다.”
김붕년 교수가 책임자로 개발한 사이트 ‘청소년 스트레스’(www.teenstress.co.kr)에도 이제까지의 연구
내용을 반영했다. 이곳에서는 스트레스에 대한 자가 진단을 비롯해 운동요법과 식이요법 등 도움이
되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뇌의 변화에 따라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발달과정에 맞게 약간의 도움을 주면 아이들은
자신의 잠재력과 의지로 더욱 멋지게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