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성미 l 사진 이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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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충남대학교병원 3층. 빛조차 숨죽이고, 공기조차 발소리를 낮춘 듯 고요함이 맴돈다.
다만 의료진만큼은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심박수, 체온 등
데이터 변화를 따라 시선이 바삐 좇고, 아이의 울음소리에 잰걸음을 한다. 365일
24시간 변함없는 신생아 중환자실 풍경이다.
신생아 중환자실 옆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이병국 실장의 연구실이 있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연구실을 아예 신생아 중환자실 옆에
두었다. 책상 위에는 의학 서적과 관련 자료가 빽빽이 쌓여 있고, 한편에는 환자로 만난
아이들이 보낸 감사 편지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이병국 실장은 18세 미만인 소아·청소년 중에서도 생후 4주 미만의 신생아를 진료한다.
이때 신생아 중환자실에서의 ‘생후’ 개념은 일반과 조금 다르다. 예정대로라면 엄마
배 속에 40주간 있어야 하지만, 이곳에 입원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생후’를
맞이한다. 산모의 임신중독증이나 지병, 불의의 사고 등으로 출산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났기 때문이다. 선천성기형을 안고 태어난 경우도 있다. 이 아이들은 단순히 몸집만
작은 것이 아니라 신체 여러 장기도 아직 고루 발달하지 않아 전문 치료가 필요하다.
신생아 중환자실은 이처럼 생존 한계에 있는 초극소 저체중(출생체중 1kg 미만)
출생아를 비롯해 고위험 신생아의 집중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그중 신생아 중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에게는 어떤 덕목이 필요할까?
이병국 실장은 ‘체력’을 꼽는다. 말 못 하는 아이의 작은 몸짓에서 불편을 읽어내는 노련함과 순발력,
전문성 등 많은 능력이 요구되지만, 그보다 우선은 모든 상황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병국 실장의 일과는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시작해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끝난다. 아니,
사실은 끝나지 않는다. 오전 회진과 처치를 마친 뒤 관련 업무를 보고 나면 점심시간이 금방이다.
오후가 되면 다시 회진, 회진이 끝나면 당직이다. 밤사이 고위험 산모가 급히 내원해 출산할 수도,
중환자실에 있는 아이의 상태가 급변할 수도 있어 24시간 대기 상태다.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 치료는 원스톱으로 이루어집니다. 고위험 산모의 출산과 동시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환자가 생기는 것이죠. 다행히 잘 태어나고 자라 무사히 부모 품에 안기는 아이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습니다. 성장 기간을 잘 넘기지 못하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 있고,
심하면 사망하기도 하죠. 또 미숙아는 조금만 상태가 변해도 전신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항상 곁을 지키며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래서 응급실과 분만실에 24시간 의사가 필요하듯 신생아 중환자실에도 항상
의사가 필요합니다.”
24시간 눈을 뗄 수 없는 반면, 의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국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 문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소아 중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 공백은 더욱 심각하다.
결국 이병국 실장을 비롯한 의료진이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 매일 쏟아지는 업무를 두 팔로 안고
버텨내야 한다. 이병국 실장이 일주일에 두세 번도 집에 가지 못할 정도다. 그가 무너지면 지역
신생아 중환자 치료 시스템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가 곧 울타리다. 따라서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체력, 그다음 필요한 것은 정신력이다.
“출생률 감소, 높은 업무 강도, 낮은 진료 수가 등의 이유로 전국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인력난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신생아 치료 인력난은 더 심각합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특히 신생아
중환자를 돌보는 의사로 살아가는 동안 마음 꺾일 일이 참 많습니다.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경제적 지원도 부족하죠. 작은 아이니까 돌보는 데 많은 인력과 노고가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도 있고요. 따라서 신생아를 돌보는 의사는 사회적 편견과 열악한 처우 속에서도
꺾이지 않을 강한 사명감을 지녀야 합니다.”
이병국 실장은 2020년부터 이곳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아이가 쥐고 태어난 작은 희망을 크게
키우는 일을 하고 있다. 2006년부터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일했으니 20년 가까이 아이들 곁을
지킨 셈이다. 이병국 실장은 유년 시절 어린 동생의 죽음, 늦둥이 동생의 탄생 등을 지켜보며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 바람이
이병국 실장을 신생아 중환자실로 이끌었다. 또 그중에서도 의료 인력이 꼭 필요한 지방에서
주로 근무를 해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아이들을 보며 희망과 에너지를 얻었다.
현재 세종충남대학교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는 가장 작은 아이의 몸무게는 600g이다.
팔다리는 어른 손가락 마디 굵기만큼 가늘고, 스스로 호흡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400g으로
태어나 지금껏 잘 자라주고 있으니 누구보다 강한 아이다. 이 작은 아이가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병국 실장은 더욱더 자리를 떠날 수 없다.
“21주 미만 출생아의 경우 세계적으로 한두 명 살 수 있을 정도로 생존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하지만 태어났다면 희망은 있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최대한 오래 부모의 체온을 느끼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신생아 생존 가능성을 점점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말을 마친 이병국 실장은 “내일 퇴원할 아이”라며 한 아이 앞에 멈춰 섰다.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몇 달 동안 지극정성으로 돌본 덕분에 일반적인 생후 1개월 아이 몸무게인 5kg을 넘어섰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을 지켜보며 이병국 실장이 아이처럼 웃는다. 일상의 행복과 맞바꿔
살려낸 귀한 아이들. 바라건대 이 아이들이 병원 밖으로 나가서도 행복하게 자라면 좋겠다.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나 마주한 세상이 밝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교사,
소아청소년과 의사 등 아이를 대하는 직업을 둔 모든 사람이 오롯이 아이를 바라보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처우도 개선되길 바란다.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그가 지켜보고 있는 것은 단순히 한
아이의 데이터가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희망이다. 기나긴 밤 희망의 불씨를 온전히 지켜내며,
오늘도 이병국 실장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글귀를 읊조린다.
신생아실 인력난은 심각합니다. 사회적 관심과 지지도 약하고, 경제적 지원도 부족하죠. 작은 아이니까 돌보는 데 많은 노고가 필요하지 않다는 선입견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생아실 의사는 사회적 편견과 열악한 처우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