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조은영(여행작가, (주)어라운더월드 대표)
글·사진 조은영(여행작가, (주)어라운더월드 대표)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의 지배자’라는 뜻을 가진 러시아 극동 최남단에 자리한 도시다. 언덕이
많아 ‘러시아의 샌프란시스코’라는 별칭이 있으며, 여름철 즐겨 찾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6월부터
10월까지는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의 최적기다. 선선하고 쾌적한 온도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산과 바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푸른 섬과 만이 있는 곳,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도시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과 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대단히 가까운 도시이며 역사적으로도
인연이 깊다. 조선시대에 한인이 대거 이주해 ‘고려인 개척리(開拓里)’*를 만들었고, 외곽엔
신한촌(新韓村)이 들어섰다. 연해주(프리모르스키주)는 과거 발해 영토의 일부였다. 러시아가
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고자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넘겨받았는데, 연해주 남쪽에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가 있다. 아관파천** 당시, 민영환·김득련·윤치호로 구성된 조선 사절단이
국운을 걸고 일본·중국·캐나다·미국·네덜란드·독일을 거쳐 러시아에 도달했고, 이후 시베리아를
횡단해 장장 7개월 간의 장정을 마친 곳이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다.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앞서, 1914년 이동휘 등이 세운 대한광복군정부가 조직되고 광복군이
주둔했던 항일 해방운동의 성지이기도 하다.
*개척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초기 한인 마을
** 아관파천: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
스베틀란스카야 거리, 블라디보스토크역과 항구, 중앙혁명광장, 개선문,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 해양공원과
아르바트 거리, 신한촌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방문할 만한 명소가 많지만 그중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곳으로
가장 먼저 ‘독수리전망대’를 꼽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오를리노예 그네즈도(Orlinoye Gnezdo)에 위치한 독수리전망대에 가려면
368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물론 푸니쿨라(케이블카)나 택시를 타도 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현지인이 된
기분으로 저렴한 가격의 케이블카 교통 시스템을 이용해 봐도 좋겠다. 정상까지 오르면 해 질 녘부터 펼쳐지는
아름다운 노을과 야경을 맞이할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본 골든 혼 베이와 러시안 섬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
전경은 꽤 감동적이다.
골든 혼 베이와 골든 혼 베이 브리지를 배경으로 서서히 켜지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을 지켜보는 것은
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첫날 저녁 일정으로 괜찮은 선택이다.
골든 혼 베이 브리지는 2.1km 길이의 케이블 사장교로 2012년 준공된 블라디보스토크의 중요한 랜드마크다.
골든 혼 베이와 어우러진 도시의 야경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대표하는 사진 명소다.
동시베리아를 통치한 니콜라이 무라비요프 아무루스키의 이름을 딴 루스키섬은 군사지역이었다. 루스키섬은
2012년 이후 민간에 개방되어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경관이 그대로 남아 있어 여름엔 바다 휴양지로, 겨울엔
트레킹 성지로 인기가 있고, 현지인들도 웨딩 촬영을 위해 자주 찾는다.
루스키 대교를 통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차량 이동이 가능하므로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낸다면 트레킹과 더불어
극동연방대학교 캠퍼스, 프리모르스키 아쿠아리움 관광까지 알차게 즐길 수 있다. 특히 탁 트인 바다를 옆에 두고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는 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힐링 그 자체다.
해안 절벽 토비지나곶(Cape Tobizina)과 바틀리나곶(Cape Vyatlina)에 이르면 그 비경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토비지나곶은 북한 지도 모양을 하고 있어 일명 ‘북한섬’이라 불리며, 한국인 관광객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는다.
2016년 개장한 프리모르스키 아쿠아리움은 조개 모양의 거대한 푸른색 지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객에게 추천하는 방문지다.
러시아어로 ‘등대’는 ‘마약’과 발음이 같다. 그래서 토카레브스키 등대를 ‘마약 등대’라고도 부른다. 이 등대는
도시 남쪽 끝에 위치하는데, 평소에는 진입로가 바닷속에 잠겨 있다가 썰물이 되어야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역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으로 러시아혁명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기차역이라고 하기엔 이례적으로 건축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외관으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
실제 운행된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끝나는 구간을 표시한 9,288km 기념비도
있으니 이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것도 추천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메인 스트리트 스베틀란스카야 거리는 아름답고 고전적인 유럽풍 건물이 즐비하다. 이 중
건축이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굼 백화점도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S-56잠수함박물관은 많은 이가 인상적인 방문지로 기억하는 곳이다. 이곳은 훈련용으로 사용하다 현재는
박물관에 공개되어 있는데, 평소 보기 힘든 실제 군용 잠수함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롭다. 선실,
기관실, 조타실, 어뢰실 등 잠수함 내부를 칸칸이 돌아볼 수 있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여행 중 미술관 관람의 여유를 가져보면 좋다. 혁명광장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현대미술관과 연해주국립미술관을 추천한다. 입장료가 없는 현대미술관은 가볍게 둘러보기 좋으며, 극동 지방
최대 규모인 연해주국립미술관은 화려한 러시아 미술 작품뿐 아니라 서유럽 미술도 관람이 가능해 미리 전시
내용을 숙지하고 간다면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지난 여행에서 가지고 온 마트료시카를 서랍 속에서 꺼내 본다. 곧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