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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인사이드

일상을 바꾸는
컬러의 힘


KAIST 산업디자인학과 석현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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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세계를 인식하는 통로다. 색을 통해 주변 사물을 인지하거나 개인의 선호를 드러내기도 하고, 신호등이나 차선의 색을 통해 사회에서 합의한 질서를 쉽게 이해하고 따르기도 한다. 이처럼 색은 우리 삶에서 매우 다양하게 접목되며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KAIST 산업디자인학과 석현정 교수가 디자인 연구와 함께 색채 연구를 지속하는 이유다.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이철민

색채 연구로 감성과 공학을 연결하다

KAIST 산업디자인학과는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공과대학에 개설된 디자인 전공 학과다. 덕분에 과학고를 졸업하고 KAIST에 입학한 석현정 교수는 미술 실기를 하지 않고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었다. 수학과 과학에도 재능이 있었지만, 창작에 대한 열의를 놓을 수 없었던 그에게는 최적의 진로였다. 공학도였던 부친 역시 “앞으로는 엔지니어링 역량이 있는 디자이너가 미래 산업을 이끌 것”이라 조언했고, 그 역시 이공계 배경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되리라 믿었다.
예상은 어긋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디자인 영역에서 기술적 접근이 중요해지고 있는 까닭이다. 석현정 교수가 주력하는 색채 연구도 마찬가지다. 색채 연구는 예술적 영역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심리학과 미술은 물론 광학과 컴퓨터공학, 화학 등 다양한 과학 영역과 어우러져 더 큰 시너지를 내는 측면이 많다. 이 때문에 감성색채공학자인 그의 역할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색채 과학 분야에서는 디스플레이에 색을 더욱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연구합니다. 심리학이나 디자인분야에서는 일상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색채를 연구하고요. 감성색채공학은 그 두 분야를 연결하는 연구입니다. 소비자가 선호하는 색이 무엇인지 탐색하면서 공학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나가죠.”
그래서 석현정 교수가 운영하는 KAIST 색채연구실에서는 자동차 실내조명과 디스플레이 색채, 가전제품 조명, 색조 화장품 등 일상을 둘러싼 다양한 색채 연구를 수행한다. 이러한 연구는 감각적 접근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인간의 시지각적 경험에 대한 관찰과 분석은 물론, 수집한 데이터에 대한 정량적 분석과 정성적 해석까지도 접목한다.
이를 통해 석현정 교수는 다양한 기업과 연구 과제를 추진하면서 실생활과 밀착된 색채 연구를 수행해 왔다. 정치인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얻은 영감으로 1년 치 뉴스를 무작위로 뽑아 실험을 진행하며 배경 색채의 영향력을 분석하고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으며, 59가지 식품의 색을 분류한 ‘색-맛 스케일(Color-Flavor Scale)’을 개발해 색 조합이 식품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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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색의 세계

석현정 교수는 “색채는 측정할 수 있으며, 디자인과 계산을 함께 할 수 있으면서도 의사소통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매체”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색채 연구는 디자인 감각만으로 할 수 없고, 다양한 융합 연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사람의 눈을 통해 이루어지는 색의 지각 과정은 물론 빛의 속성을 다루는 물리학적 특성, 그리고 색을 적용하는 매체 연구도 아우른다.
빨강, 파랑, 노랑 같은 색의 이름은 색을 구분하는 예시일 뿐이며, 실제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색의 경험은 무척 다채롭다. 잘 익은 과일의 색을 보고 식욕을 느끼기도 하고, 붉게 달아오른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감정의 변화를 알아차리기도 한다. 이처럼 색은 우리 몸뿐 아니라 감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이 색을 볼 때는 두뇌의 80%를 활용한다고 해요. 그만큼 색채 자극이 시지각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죠.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색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색채에 대한 학습이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했거든요. 과거 인류는 식품의 색을 보고 신선한 식재료인지 아닌지를 구별했고, 다른 사람의 안색이 붉어지거나 창백해지는 등의 변화를 통해 감정이나 건강 상태를 파악했습니다. 각자 알고 있는 색과 기대 하는 색의 일치와 불일치를 통해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진화해 온 겁니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색의 존재감은 크다.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색은 정치나 종교 혹은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적 역할을 했다.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한 오늘날에도 색은 브랜드 이미지나 트렌드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같은 색을 두고서도 문화권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장례식에서 상주들이 흰옷을 입지만 유럽에서는 검은 옷을 입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색에 대한 인식이 문화권의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죠. 어떤 색채를 보느냐에 따라 우리 몸이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감성적으로도 큰 변화를 느끼고요. 그래서 오랜 역사를 지닌 글로벌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각인된 브랜딩 컬러를 쉽게 바꾸지 못합니다. 이를 인식한다면 어떤 분야에 접목할 색상을 선정할 때 매우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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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인사이드03 “인간이 색을 볼 때는 두뇌의 80%를 활용해요. 그만큼 색채 자극이 시지각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죠.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인류는 색을 통해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진화해 온 겁니다.”
기술이 이끄는 색채 경험의 확장,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일상 공간을 밝히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조명도 석현정 교수에게는 중요한 색채 연구의 대상이다. 조명의 밝기와 색온도 등을 조절할 수 있는 LED는 사람들에게 한층 확장된 색의 경험을 제공한다.
“점등과 소등만 할 수 있었던 형광등에서 LED로 조명 환경이 전환되며 조명의 역할도 달라졌어요. 사용자의 필요와 기호에 따라 밝기와 색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빛의 효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RGB LED가 상용화되면서 색온도를 조절하는 단계를 넘어 다채로운 색채 표현까지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필요에 따라 색의 광원을 역동적으로 연출할 수 있게 된 거죠.”
4월에는 과학의 달을 맞아 KAIST에서 개최한 ‘2024 대한민국 과학축제 & 제5회 과학기술대전’에서 인공지능 기반 퍼스널컬러 진단 서비스인 ‘나의 퍼스널컬러 찾기(The Authentic Color Play)’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현장의 방문객들은 자동 측정 기술을 통해 각자 피부에 최적화된 색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술은 색을 통해 창의적 경험을 선사했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색채 정보 기록이 편리해진 것은 물론 색채 정보의 활용 가치도 높아졌습니다. 인공지능 기반 퍼스널컬러 진단 서비스는 디지털로 전환한 색채 정보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기존에 소수만 경험할 수 있었던 색채 관련 서비스를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디지털 전환을 통한 색채 경험의 확장은 취향과 개성의 표현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완성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석현정 교수는 더욱 다양한 측면에서 색채 연구를 이어가며 컬러의 영향력을 탐구할 것이다.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