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끝날 때면 분리수거장에 버려지는 게 있다. 바로 다양한 책이다. 그중 코팅 종이로 만든 그림책은 재활용할 수 없어 대부분 의미 없이 폐기된다. 이렇게 버려진 그림책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이 있다. 사회적기업 팝업놀이터 대표 안선화 정크아티스트다. 버려진 그림책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안선화 작가를 만나 업사이클링 팝업북에 대해 들었다.
글 박지연 l 사진 성민하
학기가 끝날 때면 분리수거장에 버려지는 게 있다. 바로 다양한 책이다. 그중 코팅 종이로 만든 그림책은 재활용할 수 없어 대부분 의미 없이 폐기된다. 이렇게 버려진 그림책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이 있다. 사회적기업 팝업놀이터 대표 안선화 정크아티스트다. 버려진 그림책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안선화 작가를 만나 업사이클링 팝업북에 대해 들었다.
글 박지연 l 사진 성민하
팝업북은 책장을 펼쳤을 때 그림이 팝콘처럼 튀어나오도록 만든 책이다.
팝업놀이터 안선화 작가는 버려진 그림책으로 팝업북을 만든다. 미술을
전공한 후 그림책 작가를 꿈꾸던 안선화 작가가 버려진 그림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게 된 것은 우연한 일에서 시작됐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하는 나무』를 정말 좋아하는데, 어느날 그 책이
버려져 있는 걸 발견하고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어요. 그러고는
버려진 책을 집으로 가져왔죠.”
책을 열자 아름다운 그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그림 한 조각을 오리기 시작했다. 그림 조각들이 하나둘 모이자 마음
가는 대로 이리저리 붙이고 엮었다. 그렇게 한 권의 팝업북이 뚝딱
만들어졌다.
“동화 『피노키오』를 가장 사랑하는데요, 제페토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인간 소년이 되는 피노키오처럼
버려진 것에도 진심을 담는다면 무엇으로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모든 그림책에는 보물
같은 그림들이 있습니다. 그림 조각들을 찾아내 오리고 붙이다 보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꾸밀 수 있어요.”
버려진 쓰레기로 보물을 만들기 때문일까. 안선화 작가는 자신을 ‘정크아티스트’라고 소개한다.
안선화 작가가 그림책과 함께 환경에 대해 더 깊은 통찰을 하게 된 것도 우연한 일이었다. 동네에 버려진
그림책을 주우러 다니는 안선화 작가의 모습을 본 폐지 줍는 할머니 한 분이 재활용도 안 되는 책을 왜 줍냐고
말한 것이다.
“한 해에 버려지는 책만 수천·수만 권이라고 합니다. 일부 책은 표지만 버려지고 내지는 재활용되지만, 그림책은
표지와 내지가 모두 코팅되어 있어 재활용되지 못하고 파쇄 후 소각된다는 걸 할머니를 통해 알았어요. 버려진
그림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더 큰 의미를 갖게 된 순간이었 습니다.”
팝업놀이터 대표 안선화 작가는 국내 업사이클링 팝업북 분야에서 손꼽힌다. 블로그나 SNS에 소소하게 팝업북
작품을 올리던 그는 2015년에 열린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을 통해 본격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당시 행사장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아 이후 국내 도서관뿐 아니라 각종 국제 도서전에서 팝업북 작품을
전시하고, 강의를 진행해 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세계 책의 날’ 축제가 열렸다. 축제에선
전 세계 작품 중 엄선한 70여 점을 선보였는데 그중 안선화 작가의 작품도 포함되었다.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글을 잘 쓰지 못해 오랫동안 헤맸어요. 그러다 버려진 그림책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되었지요. 업사이클링 팝업북 세계를 알리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팝업북 하면 특별한 기술이나 기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안선화 작가는 오리고 붙일 줄만 알면
유아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도 가위질은 잘할 수 있잖아요. 가위만 있으면 누구나 수업 시간에 졸지 않고
집중합니다.” 그림책 팝업북은 ‘만들기’가 아닌 ‘자유로움’이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책을 찢는 등의
훼손하는 행위를 금기시하거나 어색해한다. 실제로 안선화 작가가 그림책을 찢는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책을 찢어 만드는 작업이지만 버려진 책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고 또 다른 사랑을 받게
된다고 말하곤 해요. 그러면 책에 대해 좀 더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해지죠.”
더 잘 만들기 위해 궁리하고 애쓰는 것도 되도록 추천하지 않는다. 화려한 팝업북을 만들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나 기술을 가르쳐달라는 요구도 많지만 그때마다 만드는 방법이나 기술에 집중하기보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겁게 오리고 붙여보라고 권유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몰랐던 자기만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팝업북은 ‘만들기 활동’이라기보다는 ‘스토리텔링 활동’에 가까워요. 예를 들면, 『피노키오』 책을 고래
이야기로 바꿀 수도 있고, 책 내용을 한 장면으로 표현할 수도 있어요. 혹은 ‘이 책의 뒷이야기는 이렇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 팝업북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어요. 뭐든 자유로워요.”
안선화 작가는 그림 하나를 오리고 붙이더라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면 멋진 작품이 된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한 팝업북은 독후 활동에도 도움이 된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팝업북으로 자기만의 작품을 완성한 후 책 내용을
궁금해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도서관에서 스스로 책을 찾아 읽더군요. 어떤 아이는 책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을 상상해 팝업북을 만들며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합니다. 또 팝업북을 만든 후
서로의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요.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작품뿐 아니라
친구들의 작품에도 흥미와 관심을 가집니다.”
함께 팝업북을 만들었던 한 역사 선생님과의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한 역사 선생님이 팝업북 만들기를
배운 다음 도산 안창호 위인전을 팝업북으로 재구성해 수업에 활용했는데 학생들의 집중도가 무척
높았다고 하더라고요. 과학, 환경, 성교육 등 주제별 수업을 팝업북으로 했더니 수업 참여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팝업북을 만드는 기법은 제가 알려주지만 내용을 더 잘 아시는
선생님들이 팝업북을 더 잘 꾸미는 것 같아요.”
뭐든 오리고 붙이는 활동이라면 그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는 게 팝업북의 매력이기도 하다.
사회적기업 팝업놀이터의 흰 벽면은 그림 조각들로 가득하다. 팝업놀이터를 찾아온 사람들은
한껏 꾸며진 벽 앞에서 사진을 남기기도 한다.
“벽지가 상할까 봐 걱정된다면 매직테이프를 사용하면 돼요. 벽지가 상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떼었다 붙일 수도 있거든요. 집에 버리려고 치워둔 그림책이 있다면 아이들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활동이죠.”
대표적인 코팅 종이인 팸플릿이나 리플릿, 버려지는 종이컵, 종이 홀더 등 그림 조각을 붙일 수
있는 재료라면 누구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곰인형의 행복』에는 버려지는 곰 인형을 돌보는 할아버지가 나온다. 할아버지는 아픈 곰 인형을
자기에게 버려달라고 한다. 그렇게 모은 곰 인형 하나하나에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주며 함께
즐거워한다. 곰 인형들도 행복해 보인다.
“저는 할아버지가 저와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처럼 버리는 그림책을 제게 보내달라고
세상에 얘기하곤 합니다. 그러자 출판사나 도서관에서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그림책을 보내주기도
하고, 폐교된 초등학교에서 1만 2,000권의 도서를 기증해 주기도 했어요. 한쪽에 모아둔 그림책이
있다면 다시 한번 펼쳐봐 주세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으니까요. 그래도 버리고자 한다면
저희 팝업놀이터로 보내주세요.”
손쉽게 만드는 나만의 팝업북
손쉽게 만드는 나만의 팝업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