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명조체와 고딕체는 우리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만 그 기원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평생을 바쳐 한글 글자체를 개발하며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1세대 글꼴 디자이너 최정호 선생입니다. 그의 헌신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글꼴로
한글을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 황인희 역사 칼럼니스트
대학교 졸업 후 줄곧 출판계에서 일하다가 월간 「샘터」 편집장을 끝으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다수의 책을 저술했고, 현재 역사 칼럼니스트, 인문여행 작가로서 집필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사진 및 자료 제공처: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 국립한글박물관
*사진 및 자료 제공처: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 국립한글박물관
한글 글자체의 숨은 공로자, 최정호 선생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에 대해 감사는커녕 존재조차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공기의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기처럼 평소에는 존재를 인식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문명 생활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자원입니다. 책과 같은 인쇄물뿐 아니라 컴퓨터 등 다양한 매체에서도 글자는 핵심 역할을 합니다.
인터넷에서 텍스트가 아닌 동영상만 본다고 해도 그 동영상 속 내용을 요약하는 제목에는 글자가 사용되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글자가 없다면 문명사회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글자는 글자체 없이 홀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글자의 모양인 글꼴을 통해서 우리는 글자를 보다 편리하게 기록하고 전달하며 다양한
인쇄 매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문득 공기의 중요성을 인식하듯, 글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면 우리는 최정호 선생을 특별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한글 글자체를 만든 선구자이자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다양한 글꼴 개발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 최정호 선생
▲최정호활자서체연구소(서울시 종로구 내수동)
▲최정호 선생
▲최정호활자서체연구소(서울시 종로구 내수동)
글자꼴에 눈뜨다
191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최정호 선생은 상경해 교동공립보통학교(現 서울교동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글씨를 잘 썼습니다. 보통학교 2학년 때는 글씨체 때문에 방학
숙제를 부모님이 대신해 주었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였는데, 당시 최정호 선생은 담임교사와
친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직접 글씨를 써 오해를 풀기도 했습니다.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現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최정호 선생은 미술 공부를 위해 1934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는 낮에는 인쇄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요도바시 미술 학원에서 공부하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여러 인쇄소를 경험하며 그는 처음으로 ‘글자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부업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위한 ‘선전 글씨’를 쓴 경험은 후일 한글 활자 원도(原圖)를 그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39년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대구에서 ‘삼협미술사’라는 인쇄소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쇄소는 번창을
거듭해 서울로 확장 이전을 했으나 6·25전쟁과 전력난으로 부득이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정호
선생은 생계를 위해 글자체 도안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활자 연구가로 변모하게 됩니다.
▲ 최정호 선생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이름 붙인 최정호체 원도
▲ 최정호 선생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이름 붙인 최정호체 원도
원도 개발의 시작과 한글 글꼴의 발전
1955년, 동아출판사 김상문 사장과의 만남은 최정호 선생이 글꼴 개발자로서 변모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동아출판사는 민간 최초로 납활자 조각기를 도입했지만 글꼴 원도가 없어 기계를
사용하기 어려웠습니다. 김상문 사장은 최정호 선생에게 원도 제작을 의뢰했으나, 그는 처음에는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원도 작업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상문 사장의 끈질긴
설득 끝에 최정호 선생은 작업을 시작했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1957년 우리나라
최초의 글꼴 원도를 완성했습니다. 동아출판사는 이 글꼴을 이용해 『새백과사전』, 『세계문학전집』
등을 펴냈으며, 최정호 선생의 원도는 이후 여러 출판사에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린 글꼴 원도는 오늘날 명조체, 고딕체 같은 한글 글꼴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컴퓨터 윈도
환경에서 사용하는 바탕체도 최정호 선생의 사진식자체*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최정호 선생은
끊임없이 새로운 원도를 개발했고, 그의 굵은 부리 계열 제목용 글꼴은 1981년 창간된 잡지 『마당』의
제호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 사진식자체: 글자에 빛을 비춰 감광지에 인화시키는 방식으로 문자를 인쇄하는 기술
▲ 최정호 선생의 벼루
▲1950년대 사용된 바탕체 원자판과 자모,활자
▲최정호 선생의 벼루
▲1950년대 사용된 바탕체 원자판과 자모,활자
한글 글꼴 디자인의 선구자이자 스승
1982년 홍익대학교에 타이포그래피 강의가 처음 개설되었을 때, 최정호 선생은 학생들이 한글 글꼴의
기본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전공 학생들이 글꼴의 기본을 익힐 수 있는 글자 10개를 그려주었는데,
이는 1986년 타이포그래피 강의 교재 『글자 디자인』에 실렸습니다. 글꼴 연구의 선구자 최정호 선생이
초성, 중성, 종성의 조합에 따라 같은 ‘ㄱ’도 그 형태가 달라지는 한글 글꼴 제작의 어려움을 성실함과
열정으로 극복한 모습은 후대 디자이너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업적은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안상수·노은유 공저)에도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최정호의 한글 글꼴은 오늘날 본문용 디지털 폰트에 큰 영향을 미쳤고, 특히 명조체와 고딕체는 그의
노력 덕에 발전했습니다. 책을 읽고, 컴퓨터를 사용하며, 거리의 간판을 보는 모든 사람은 그의 덕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한글 연구가인 독일 디자이너 요아힘 뮐러-랑세는 “최정호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글꼴을 제공하고자 했던 것 같다”라고 평했습니다.**
최정호 선생의 업적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존재조차 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최정호 선생이 동아출판사체를 개발한 1957년, 같은 해에 탄생한 헬베티카 서체가
스위스의 국가유산으로 추앙되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 출처: 조선일보(2024. 4.)
▲ 최정호 선생의 확대경
▲일본의 샤켄사에서 제작한 사진식자용 유리
▲최정호 선생의 확대경
▲일본의 샤켄사에서 제작한 사진식자용 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