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이한솔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이한솔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한국인은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화병과 스트레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진료해 온 김종우 교수는 몸과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걷기 명상’을 추천한다.
“한의학에서는 몸과 마음을 전인적, 통합적으로 살핍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해와 정리가 바탕이 될 때 질병을
고칠 수 있는 추진력이 생기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한의학에서는 기공(氣功)*에 관한 공부를 합니다.
초창기에는 기공과 관련한 내용을 진료에 응용했습니다.
명상의 경우 한방신경정신과에서 주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여러 명상법 가운데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 ‘걷기’와 ‘먹기’였고,
최근 들어 맨발 걷기를 비롯한 걷기 관련 연구가 확대되면서 이를 임상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김종우 교수는 ‘명상’을 “자신의 고유 리듬을 찾아 몸과 마음을 최적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규칙적인 리듬은 신체적 안정뿐 아니라 정신적 안정까지도 이룰 수 있게 한다.
또 걷기를 통해 사람은 주변 환경을 오감으로 느끼며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다. 특히 걸음을 통해 원하는 곳으로
향하는 ‘걷기’는 그 자체로 명상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운동이나 명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꾸준함’입니다.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려면 재미가 있어야겠지요.
걷기가 명상을 만나면 일상에서 수행할 수 있는 명상법이 생겨납니다.
그런 점에서 걷기 명상은 매력적이에요. 명상에 입문한 사람은 물론 명상을 일상적으로 가까이하고자 하는 사람, 명상을
꾸준히 실천하며 명상적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명상법이죠.”
*기공: 기혈을 고르게 함으로써 치료하는 방법(『표준한의학 용어집』 대한한의학회)
김종우 교수의 말에 따르면, 한의학에서 걷기 명상은 침이나
한약 같은 치료법과 달리 환자 스스로 실행하는 자기조절 프로그램에 속한다.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에게 ‘요즘 어떤 운동을 하는지’ 물을 때 농담 삼아 ‘숨쉬기 운동’이나 ‘걷기 운동’이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하지만,
생존을 위해 당연하게 하는 호흡과 걷기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면 일상에서도 손쉽게 명상을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첫걸음을 떼었을 때처럼 한 걸음을 3~4초 시간을
가지고 내디뎌 봅니다. 시간을 더 들여 걸으면 자신의 걸음을
더 잘 관찰할 수 있고, 명상적 측면에서도 마음 챙김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관찰을 계속 이어가 보세요. 단지 다리 감각만이 아닌 발바닥이 지면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긴장감과 전율 그리고 안도감을 느껴보는 겁니다.”
걷기 명상을 하려면 일단 걸어야 한다. 꾸준히 걸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걷기를 시도하면서 빈도와 강도를 조절해 나가면
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걷는 습관이 몸에 밴다.
걷기 습관을 들인 후에는 각자 건강 상태에 맞게 걷기를 실천하면 된다.
“어릴 때 자전거를 배워두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전거를 어렵지 않게 탈 수 있는 것처럼 걷기 명상 역시 젊을 때부터 몸에 익혀두면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습관을 붙일 수 있습니다.”
걷기 명상을 할 때는 천천히 걸으면서 우리 몸의 변화를 ‘알아차림’ 해야 한다.
발바닥과 발가락에서 시작된 변화가 발목에서 종아리로, 무릎을 지나 허벅지 감각으로 전해지는 느낌을 섬세하게 살피면서 그 위로 허리와 배, 등과 가슴, 어깨와
손으로 이어지는 감각을 관찰한다.
이어 목이 받치고 있는 머리를 천천히 돌리면서 자신의 신체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관찰을 이어 나간다.
김종우 교수는 최근 주목받는 맨발 걷기를, ‘지구와 우리 몸을 연결한다’는 의미의 ‘어싱(earthing)’ 효과를 높이는 한 가지 방법으로
꼽는다.
걷기는 시간이나 장소, 장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걷기만 해도
명상을 할 수 있는 까닭이다. ‘걸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걷기보다는 쉽고 재미있게 걸을 수 있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에 1만 보 걷기’ 같은 제약을 두기보다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걸어보거나, 서울 한강 변이나 제주도 올레길 등지의 걷기 코스를 통해 온종일 걷는 데 집중해 보기도 한다.
한국의 산사 순례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언젠가 걷고 싶은 길을 버킷리스트에 올려도 좋지만, 굳이 특별한 장소로 떠나
걸을 필요는 없다. 걷기가 본질이지 장소가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면서 몸과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이루는 ‘걷기’를 할 수 있다면, 어디서나 걷기 명상을 할 수 있는 까닭이다.
“걷기 명상은 산림치유센터나 산림욕장은 물론 집 주변 공원 등 걸을 수 있다면 어디에서든 할 수 있습니다.
요양병원 같은 곳에서도 정원에서 가볍게 산책하며 치료 효과를 높이기도 하고요.
학교에서도 운동을 할 때 스포츠 같은 신체 활동에 그치지 않고 맨발 걷기 등을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맨발 걷기는 자신이 느끼는 감각을 수용하고 주위 환경과 결합해 자연을 받아들이고 교류하는 활동으로 명상 교육도 접목할 수 있습니다.”
걷기 명상은 일상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김종우 교수는 “억울함과 분함은 3초 안에 밀려들고, 15초면 그 감정이 극대화되어 폭발한다”면서
“이런 감정이 들 때 단지 밖으로 나가 걷기만 해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라고 조언한다.
“화병과 스트레스를 연구하다 보니 진료실에서 억울함과 분함을 호소하는 환자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선생님들도 교육
현장에서 이런 감정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잠깐 걷는 것을 넘어 조금 더 시간 여유가 있다면 호흡과 감각에만
집중하는 걷기 명상을 하면서 자연이 주는 풍성한 에너지를
온전하게 받아들여 보세요. 그런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화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이다. 낙엽 진 길 위에서 온전히 자신의 걸음에만 집중해 보자.
걷기 명상의 효과를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종우 교수 역시 걷기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