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황연희
‘디토앤디토’ 취재기자 및 총괄이사이며,
신구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겸임교수다.
‘맥주 축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일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다.
10월 6일 막을 내린 옥토버페스트에서는 약 700만 잔의 맥주가 판매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특이한 점은 총판매량 중 무알코올 맥주가 전체의 4~5%를 차지하며 그 비율이 예년에 비해 증가했다는 것이다.
또한 물, 사과 주스 등 무알코올 음료의 수요도 증가했다. 축제는 즐기되 알코올은 덜 마시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해석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독일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술 마시기’를 거부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다.
‘소버 큐리어스’란 ‘술에 취하지 않은’이라는 뜻의 소버(sober)와 ‘호기심이 강한’이라는 뜻의 큐리어스(curious)가 합쳐진 신조어로,
술을 마시지 않고 깨어 있는 상태에 대한 호기심을 뜻한다. 특히 Z세대 사이에 두드러진 현상으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트렌드다.
2013년 영국에서 시작된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는
새해가 시작되는 1월 한 달 동안 술을 마시지 않도록 권장하던 운동으로, 현재는 금주를 권장하는 캠페인으로 확대되었다.
이 캠페인은 금주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를 위한 모금 이벤트도 진행한다.
또 영국의 OYNB(One Year No Beer)는 술을 끊거나 줄이려는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 프로그램으로, 이들은
긍정 심리학적 접근 방식을 통해 음주 습관을 재평가하고,
더 건강하고 생산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와 비슷한 일본의 ‘드라이(Dry) 이니셔티브’ 역시 아시아 지역에서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아사히 브루어리는 시부야에 소버 큐리어스를 위한 스마도리 바(bar)를 오픈하고 알코올 함량이 0~3%인 주류와 함께 콜라, 레모네이드 등 100여 가지 음료를 판매한다.
파르코 쇼핑몰도
2022년부터 드라이 재뉴어리와 유사한 금주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드라이 재뉴어리 캠페인이 젊은 층에 크게 어필되면서, 세계적으로 주류 판매 감소와 논알코올 주류 판매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맥주뿐 아니라 와인, 막걸리, 소주까지도 논알코올 라벨이 등장했으며, 일본에서는 비만 예방과 피로 해소 등 다양한 기능성 논알코올 음료가 인기다.
국내 역시 이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1인당 평균 주류 소비량은 2015년 9.1L에서 코로나19를 거치면서 2022년 7.5L까지 감소했다.
실제로 편의점 CU의 저알코올, 논알코올 매출 신장률도 2022년에 71.2%, 2023년에는
10.6%를 기록했으며, 올해 4월까지도 16.8%의 신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 중 2030세대 매출 비중이 지난해 기준 70%를 넘어서며 연령대별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5월에는 국내에서 가장 낮은 도수인 1.5% 맥주가 출시되었다.*
*출처: 한국건강증진개발원 ‘2024년 알코올 통계자료집’(2024. 6.), CU 보도자료(2024. 5. 7.)
전문가들은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의 원인으로 웰빙 트렌드
확산, 알코올 소비에 대한 새로운 태도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술 문화의 변화를 꼽는다.
기본적으로 알코올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인지하고, 더 건강한 삶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직장 회식 문화가 달라지고, 개인의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술을 마시지 않는 생활 방식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술을 멀리하기 시작한 Z세대는 술 모임 대신 알코올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술자리도 논알코올 음료로 대체하거나 과일 주스, 에너지드링크를 마시는 카페 문화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는 단순히 ‘금주’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는 이유와 마시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일상과 사회활동 방식을 탐구하며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데 중심을 둔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기업 BCG는 “젊은 세대는 기분을 조절하는 다양한 대안을 찾고 있다.
기업들도 과도한 음주에서 벗어나 책임감 있는 음주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건강하고 의식적인 삶을 추구하는 ‘헬시 플레저’는 이제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닌 ‘금주 권하는 사회’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