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매거진(더케이매거진)

생각의 뿌리 > 멘토 인사이드 

멘토 인사이드

수학과 세상을 연결하는
수학자의 글쓰기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김민형 석좌교수
멘토인사이드01
수학자가 쓴 글은 어렵고 재미없을까? 김민형 교수의 글은 수학에 대한 편견을 깨듯 쉽고 재미있다. 그는 수학의 본질을 탐구하는 글은 물론 역사와 음악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글쓰기를 해왔다. 수학과 세상을 연결하는 수학자의 글쓰기가 궁금해 김민형 교수를 만났다.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이한솔

수학의 세계를 세상과 연결한 수학자의 글쓰기

김민형 교수는 세계적인 수학자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서 비롯한 산술 대수 기하학의 고전적인 난제를 위상수학*의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이름을 알린 그는 한국인 최초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수학과 정교수로 임용되었다. 지금은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석좌교수로서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 연구소 소장을 맡아 수학자의 본업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그는 『수학이 필요한 순간』, 『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 등 10권에 달하는 교양서를 쓴 작가다. 그의 책은 교과서에서 보던 수식을 도구로 활용한 수학적 사고 방법을 제시하며 독자들을 ‘수학의 세계’로 안내했다. 덕분에 많은 독자가 수업 시간에 배우던 기본적인 수학 원리를 외워야 할 공식이 아닌 세상을 이해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였고, 오랜 역사 속에서 다듬어지고 발전해 온 수학이 인류 문명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깨달았다.
수학적 사고는 수학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수학 원리에 통달해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는 2018년 출간한 『수학이 필요한 순간』에서 수업 시간에 배운 수학 원리를 넘어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을 비롯해 정보와 우주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수학을 통해 ‘더 깊이 사고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책은 수학을 주제로 한 교양서로는 이례적으로 10만 부 넘게 판매되며 대중에게 수학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알게 했다.
*위상수학: 도형의 위상(位相)적 성질을 연구하는 기하학

멘토인사이드02
멘토인사이드02_1
멘토인사이드02_2
수학적 사고와 일상의 만남

실제로 수학적 사고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사고방식 중 하나다. 요즘 사람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많은 개념은 과거에는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날씨를 검색해 ‘37%의 비 올 확률’을 쉽게 이해한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수포자(수학 포기자)’라고 한탄하지만, 알고 보면 일상의 많은 영역에서 수학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셈이다.
“수학적 사고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나름대로 답을 해왔지만, 정확히 이야기하기는 어려워요. 문학이나 철학도 전통과 경험 그리고 사례를 통해 파악해 가고 있잖아요. 다만 수학의 경우에는 보편적인 과학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그런 점에서 수학적인 사고란 ‘일상적인 지식을 더욱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만드는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 핵심 개념을 추출하고 이를 보편적인 사고를 통해 정밀하게 다듬는 것입니다.”
생각과 글을 명료하게 만드는 과정에서도 수학적 사고는 필요하다. 수학자의 글쓰기는 하나의 주제를 한 편의 글로 써 내려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어떤 주제로 글을 한 번 썼다고 해서 그와 관련한 글쓰기가 완전히 마무리되는 것도 아니다.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질문이 이어지기도 한다.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 한번 찾아가다 보면 또다시 글을 쓰게 된다.
“제가 글을 쓰는 원동력은 바로 재미에서 나와요. 책을 쓰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회인들을 만날 기회도 생기는데, 덕분에 수학에 대한 대중의 생각은 물론 수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사도 더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그런 과정들도 글쓰기의 재미와 연결되어 있어요. 어떤 면에서 글쓰기는 제 생각을 세상에 던지는 거잖아요. 그러고 나면 다시 사람들의 생각이 저에게 돌아와요. 글을 통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책으로 가득했던 가정환경도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부친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김우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다.
“부모님 모두 영문학과 교수였던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제 주위엔 책이 많았어요. 어떤 면에서는 집 안 전체를 책이 장악해 버렸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점에서 책이 제겐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책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성장하다 보니 글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버지께서 과학책도 많이 보셨기 때문에 막연하게 언젠가는 대중적인 과학책을 쓸 거라는 생각도 했고요. 수학에 관한 글과 인문학적인 글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요즘은 두 가지 글쓰기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멘토인사이드03
멘토인사이드03
“제가 글을 쓰는 원동력은 바로 재미에서 나와요. 책을 쓰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회인들을 만날 기회도 생기는데, 덕분에 수학에 대한 대중의 생각은 물론 수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사도 더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그런 과정들도 글쓰기의 재미와 연결되어 있어요. 어떤 면에서 글쓰기는 제 생각을 세상에 던지는 거잖아요. 그러고 나면 다시 사람들의 생각이 저에게 돌아와요. 글을 통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기술 변화 속에서도 이어지는 글쓰기의 힘

수학자라고 해서 수학에 관한 책만 쓰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쓴 여행기도, 음악에 관한 생각을 음악가와 함께 나눈 대화집도 있다. 인문학적 관점이 더해진 글이라고 해도, 그의 글쓰기 근본에는 수학이 있다.
“수학자로서 수학에 관한 어떤 글을 쓰든지 수학적 통찰을 더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니까요. 한 번 글을 쓰고 나면 그 내용을 스스로 바로잡는 과정에서 다시 글을 쓰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글을 여러 번 쓰게 되기도 합니다.”
더구나 미디어는 물론 온라인을 통해서도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요즘, 다채로운 영역으로 관심사를 확장하는 일은 그만이 아닌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전공 외에 다른 분야를 파악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세상사에 관심을 둘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각자 호기심에 따라 질문하면서 관심사를 수집하다 보면 매우 다채로운 지식과 마주하게 됩니다. 글쓰기는 그 관심사를 세상에 펼쳐놓는 실행의 한 부분이죠.”
이처럼 그에게 읽고 쓰고 사유하는 일은 대단한 노력이 아닌 당연한 일상이다. 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줄고 생성형 AI가 보편화되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글을 쓰려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김민형 교수는 기술의 변화가 글쓰기의 종말을 예고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계산기가 등장했을 때도 학습에 부정적 영향을 줄 거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은 교육과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습니다. 알고 보면 손이 아닌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편집이나 교정이 편해지는 등 글 쓰는 방법이 달라진 점도 있거든요. 생성형 AI 역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글쓰기에 활용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학이라는 본업에서 확장된 폭넓은 지식과 관심사를 글로 엮어내는 비결은 결국 ‘질문’과 ‘관심’이다. 그 역시 글을 쓰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 대신 이메일에 간단히 메모를 남기는 방식을 활용한다. 이러한 작은 습관은 그의 글쓰기를 편리하면서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더욱 정확하게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수학자의 글쓰기는 계속된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