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이한솔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이한솔
모든 아이는 저마다 강점과 개성이 있다. 19년째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하유정
교사는 이러한 아이들의 고유성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각도에서 학습법을 고민한다.
유튜브 채널 ‘어디든 학교’를 개설하고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하는 것도, 『하유정쌤의
초등 바른 글씨 트레이닝 북』, 『초등 공부 습관 바이블』, 『두근두근 초등 1학년 입학 준비』 등을
비롯한 10여 권의 책을 집필한 것도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교육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학교 안에서
아이들을 만나던 그가 유튜브와 책을 통해 학교 안팎의 아이들과 접점을 만든 계기는 코로나19였다.
팬데믹으로 아이들의 입학과 개학이 계속 연기되었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교실도 텅 비었다.
“당시 저는 1학년 부장 교사였는데,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할 제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무력감이 들더라고요. 무엇보다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걱정됐죠. 그래서
서툴지만 영상을 제작해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학교 대신 가정에 머물면서 발생하는 학습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소명 의식으로
도전한 일이었다. 자신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학부모의 고민과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교사의
전문성을 살려 공부 방법과 생활 습관 등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만들었다. ‘바른 글씨 쓰기’에 대한 콘텐츠도 그중 하나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글씨체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진다면 자기 생각과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할 수 있다. 하유정 교사가 글씨
쓰기의 중요성에 관심을 둔 것도 그래서다. 글씨는 자신을 더 명확하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인 까닭이다.
“글씨 쓰기가 서툰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웠어요. 글씨체가 좋지 않다고 해서 아이들의 생각이나
재능이 덜 빛나는 건 아니잖아요. 글씨 교정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표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써야 할 글의 양이 늘고 네모 공책에서 줄 공책으로 넘어가는 초등학교 3학년은 글씨체가 무너지기 쉬운
시기다. 1, 2학년 때는 정성스럽게 글씨를 쓰던 아이들도 이때부터는 빨리 써야 한다는 생각에 글씨체가
흐트러진다. 글씨를 대충 흘려 써서 자신조차 읽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뇌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익히기에 최적화된 상태이기도 하다. 이미 습관이 형성된 어른과 달리 잘못된 습관을
교정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도 낮다. 글씨 연습이 필수 활동으로 포함된 데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초등학교라는 환경 역시 글씨 교정에 유리하다.
“또래와 부모, 교사의 상호작용이 활발한 초등학생 때 글씨체가 깔끔하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커요. 바른 글씨는 아이들의 자신감을 높이고 사회적 관계도 좋아지게 합니다. 글씨는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라 내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잖아요. 바르게 글씨를 쓴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잘 쓰는 기술을 넘어 명확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갖는 거예요. 그래서 바른 글씨는 상대방에게 내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고, 신뢰를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유정 교사는 “손 글씨와 학업 성취도와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도 있다”라고 전한다. 해당 연구에서는 글씨를
쓰는 동안 뇌가 시각적, 운동적, 언어적 처리 과정을 통합해서 정보를 저장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연구를 통해
손 글씨가 인지과정과 기억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습을 한다고 해서 몇 년 동안 손에 익은 글씨체를 교정할 수 있을까. 하유정 교사는 “바르고 예쁜 글씨를
손에 익히려면 조금씩 꾸준히 연습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더불어 글씨를 교정할 때는 손과 종이
사이에 적당한 저항감을 주는 B, 2B, 4B 연필을 추천한다. 아이들이 연필을 사용할 때 고무 그립을 끼워주면
한결 안정적으로 글씨 쓰기를 연습할 수 있고, 못한 부분에 대한 지적 대신 나아진 부분을 격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전히 삐뚤삐뚤한 글씨라도 관심을 두고 관찰하면 발전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을 가르칠 때, 한 아이가 자신의 노트를 손으로 가리는 거예요. 글씨체가 부끄러워서 감추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나만의 서체 만들기’ 행사를 열고 아이들에게 각자 좋아하는 글씨체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글씨체를 부끄러워하던 아이도 자신 있게 직접 만든 서체를 발표했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글씨를 좋아하게 됐다는 소감도 덧붙였고요. 바른 글씨 연습이 가져다준 큰 변화였습니다.”
간편하고 효율적으로 기록할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하유정 교사는 여전히 손 글씨만이 지닌 힘이
있다고 믿는다. 타이핑한 글자가 깔끔해도 정성을 들여 쓴 손 글씨가 주는 감동은 지금도 특별하다.
“디지털 시대에 손 글씨는 속도를 늦추고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줍니다. 디지털이 편리함을 준다면, 손
글씨는 느림 속에서 관계와 내면을 깊게 만들어 주는 도구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