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채진서 l 사진 성민하
글 채진서 l 사진 성민하
춘천 퇴계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최문혁 교사에게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품어온 꿈이었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며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긍정적 감정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꿈이 싹텄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입시를 앞두고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마침내 내린 결론은
역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교대에 진학했지만, 고민은 오히려 입학 이후
시작되었다.
“1학년 때는 한 학기 내내 친구에게 이 길이 나와 맞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2학년 때 처음 교생실습을 나가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을 만났는데, 그때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아이들이 정말 예뻐 보였고, 이렇게 예쁜 아이들과 선생님으로서 한 해를 함께
보내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지 실감했죠. 그때부터는 교사가 된다는 것에 대해 전혀
고민이나 의심 없이 빨리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어요.”
최문혁 교사는 2014년 처음 초등학교에 부임한 이후, 학생들이 어려워하지 않고 편안함을
느끼는 동반자 같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10여 년간 아이들과 가까이 생활하다
보니,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까지도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순수한 마음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겉으로는 떼를 쓰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도 알고 보면 아이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반복되는 일상은 어느 순간 슬럼프와 위기를 만들어낸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부딪히는 수많은 일을 겪다 보면 심신이 지치는
순간이 찾아오고, 교사로서 하루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현실을 절감(切感)하기도 한다.
최문혁 교사에게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2019년, 아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수업이나 생활지도조차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쳐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너무 힘들어 학교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다 결국 결정을 내렸죠. 한 번은
아침부터 교장실 앞을 서성이며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려고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그날 교장 선생님께서 출장을 가시는
바람에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마침 3주간의 연수가 예정되어 있었고, 학교와 거리를 두며 저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연수가 제게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어요.”
연수가 위기를 극복할 계기가 되었다면, 글쓰기는 또 다른 해결책이자 마음을 치유할 방법이 되어주었다. 최문혁 교사는 한 후배의
제안으로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마침 제가 힘들어하던 시기에 후배가 하루에 A4 한 장 정도의 글을 70일 동안 써보는 프로젝트가 있다며 함께 하자고 제안했어요.
주제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었고, 과연 가능할까 싶었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죠. 처음에는 책을 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그는 하루에 한 장씩 글을 쓰기로 약속했지만 막상 시작하자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적절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그 순간 눈에 보이는 칠판, 지우개, 커피, 우유 같은 평범한 것을 글감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20여 일이 지나자 쓰고 싶은
주제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고, 글을 쓰는 속도도 붙으면서 점점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어요. 그런데 3주 정도 지나니 글감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글을 쓰는 데도 어려움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렇게 하루를 돌아보며 글을 쓰다 보니 그날의 행동이나 상황을 되짚어보고 아쉬운 점을 반성하기도 했어요. 글을 쓰면서 생각만
할 때보다 훨씬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고,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성찰하고 힘든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70여 일 동안 교실 안에서 벌어진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냈고, 결국 책으로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책이 출간된 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힘든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는 걱정 어린 위로를 많이 들었다.
“그때 주위 분들이 해주신 말씀을 떠올리며 이제는 고민이 생기면 다른 선생님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글쓰기 덕분에 소통이 훨씬 원활해졌어요.”
글쓰기를 통해 하나의 산을 넘은 최문혁 교사는 이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한다. 그는 독서 경험이 적고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무작정 글쓰기를 강요하기보다는 글을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며 글쓰기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학생들이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학기 초부터 1일 글쓰기 활동을 진행합니다. 제가 처음
글을 쓸 때 막막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글감을 찾느라 고민하지 않도록 토론 형식으로 두 가지 선택지를 주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공부를 언제 하는 게 좋냐?’ 대신 ‘공부를 오전과 오후 중 언제 하는 게 더 좋냐?’처럼요. 아이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
이유와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의 문제점을 쓰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짧게나마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점차 더 풍성한 글쓰기가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최문혁 교사가 펴낸 책 「교사가 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만」에는 교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등교사의 일상과 고민 그리고 행복을 담담하게 풀어낸 그는 이 책이 예비 교사나 교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대를 다닐 때, 교사가 된 선배들이 찾아와 교육과정이나 수업 내용이 아닌 ‘급식 우유가 하나 없어졌다’거나 ‘교실에서 과자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심각하게 하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교사가 되고 보니 그런 소소한 일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알게 됐죠.”
글쓰기를 통해 성찰의 힘을 키운 최문혁 교사는 특히 짧은 동영상 콘텐츠만 선호하던 아이들도 글쓰기 연습으로 긴 텍스트에 부담
없이 접근하면서 문해력이 높아지고 쓰기와 읽기의 긍정적 선순환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2014년에 처음
가르친 6학년 학생들이 어느새 스물세 살이 되어 이제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는 최문혁 교사.
그는 또다시 새로운 학생들과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 나가길 기대하며 다가오는 새 학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