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사진 황연희
‘디토앤디토’ 취재기자 및 총괄이사이며,
신구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겸임교수다.
2025년, 푸른 뱀의 해를 맞아 대한민국의 새로운 행복 담론으로 ‘아보하(Aboha, Nothing Out of
the Ordinary: Very Ordinary Day)’가 등장했다. 아보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로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 무난하고 무탈하며 안온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를
말한다.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를 분석해 전망하는 『트렌드 코리아』의 저자 김난도 교수는 아보하가
중요한 트렌드로 부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보하, 즉 ‘아주 보통의 하루’는 2025년 정세와 가장 어울리는 트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균형이 자주 무너지는 현대사회에서 잘 버틴, 아주 보통의 하루를 감사히 여기는 아보하가
2025년 현재를 잘 표현해 주는 트렌드가 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2024년 10월 글로벌 패션 포럼에
연사로 참여한 김난도 교수의 말이다.
김난도 교수의 예측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보하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2025년 새해가
시작됐다. 지난 12월에 발생한 정치적 혼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환율 급등 등 연이어 발생한 위기
속에서 평안한 하루를 간절히 원하는 아보하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아보하는 정체된 사회와 끊임없는 사건·사고, 격화된 갈등 속에서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중시하며,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언뜻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소확행은 불확실한
미래의 성공보다 현재의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때로는 과시적 소비를 낳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아보하는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무탈하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자
하는 욕구를 대변한다.
아보하 트렌드는 단순히 물질적 욕구를 넘어 정신적 웰빙과 삶의 질 향상을 중시하는 경향을
반영하면서 점차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아보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과시하는 일상보다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하루를 여유롭게 시작하는 아침, 가족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는 순간 등 평범한 시간
속에서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아보하를 잘 대변하는 것은 취미 활동의 변화다. 사람들은 고가의 레저 스포츠나 해외여행보다는 특별한
계획 없이 일상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는 소소한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Z세대의 새로운 휴식법으로 ‘베드 로팅(Bed Rotting)’이 화제를 모았다. 베드
로팅은 침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하며, 지난해 틱톡에서 #Bed Rotting
해시태그는 1,5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베드 로팅과 관련한 다양한 연관어인 베드 로팅 푸드(침대에서 즐기는
간편식), 베드 로팅 호텔(최적의 룸서비스 숙소), 베드 로팅 애니메(침대 시청용 애니메이션) 등의 등장으로
침대 생활을 즐기는 다채로운 방식이 화제가 되었다.
아보하와 함께 영상보다 텍스트를 선호하는 ‘텍스트 힙(Text Hip)’ 트렌드가 부상하면서, 필사와 감사 일기 등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 글쓰기도 아보하를 즐기는 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이 블로그, 스레드, 엑스 등 텍스트 기반의 소셜미디어로 전환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네이버는
지난해 ‘온라인 일기장’으로 불리며 약 214만 개의 블로그가 생성되었고, 게시글 수가 전년 대비 10%가량 증가했으며, 그중 1030세대 사용자가 45% 늘었다고 밝혔다.*
일기 쓰기 SNS 앱 ‘세줄일기’는 다양한 연령층을 흡수하며 가입자 수가 150만 명을 넘어섰고, 그 외 데이그램,
모멘토, 저니, 핑크다이어리, 데이 원 등 다양한 일기 쓰기 앱도 사용자 수가 늘고 있다.
비슷한 흐름으로, 1020세대 사이에는 독서를 즐기는 방법의 하나로 ‘필사’가 유행이다. 눈으로 읽는 독서가
아니라 손으로 책을 읽는 필사 모임이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고전문학 필사, 문학 필사,
필사즉생, 인팩트, 손문기, 기쁨필사방 등 모임의 성격도 다양하다.
단편 필사 모임의 한 회원은 “정독 중의
정독 방법이 필사로 읽는 것”이라며, “놓친 문장을 거둬 올리고 어휘를 채집하며, 언어로서의 사유가 독자를
이끈다”라고 필사 모임에 참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난도 교수는 사건·사고로 가득한 사회에서 내일의 행복은 사치가 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잘 버틴
아주 보통의 오늘 하루’가 중요한 이유를 강조한다. 바로 오늘, ‘아보하’가 중요한 이유다.
*출처: 2024 네이버 블로그 리포트(2024.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