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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
‘퀀텀 혁명’에 주목하는 과학자의 도전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 조장희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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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유엔이 지정한 ‘국제 양자과학 기술의 해’다. 세계 각국에서는 이미 양자컴퓨터를 비롯한 양자과학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퀀텀 혁명’을 앞둔 지금, 우리나라의 과학 연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 길을 묻기 위해 조장희 석좌교수를 만났다.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이한솔

세계 최초로 PET를 개발한 과학계의 혁신가

조장희 교수가 한국인 최초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매번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MRI와 CT, PET 등 병원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인체 영상기기 분야에서 혁신적 연구 성과를 낸 그는 방사선물리학 및 뇌과학계의 국제적 권위자다.
1975년에 원형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Ring PE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그는 컴퓨터단층촬영(CT, Computed Tomography)의 수학적 기법을 규명한 인물이다.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원자력 국가장학생으로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습니다. 10년 동안 그곳의 핵물리 연구소에서 연구하던 중, 친구의 제안으로 미국행을 결심했어요. 1970년대 초반 미국에서 반핵운동이 일어나면서, 핵물리학의 평화적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UCLA에서 핵물리를 의학 연구에 적용하는 그룹을 설립했고, CT와 관련한 세미나도 개최했습니다. 1972년 9월에 연구 그룹에 합류하면서 저 역시 CT 연구를 시작했고, 핵물리를 파고들었습니다. 이후 그 연구를 응용한 결과로 PET를 개발하게 되었지요.”
197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한국형 MRI 개발의 초석을 다졌다. 그 결과 1981년에 KAIST에서 0.1T(테슬라*) 자기공명영상(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을 한국 최초로 개발했다.
1985년에는 2.0T MRI를 개발하며 우리나라의 MRI 독자 개발을 주도했다. 2009년에 개발한 7.0T MRI를 바탕으로, 2013년 세계 최초의 초정밀 뇌신경지도를 제작하는 쾌거도 이루었다.
엑스레이를 발견한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이 1901년 노벨 물리학상을, CT를 개발한 앨런 코맥과 고드프리 하운스필드가 197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기에, PET의 원천 기술 개발자인 조장희 교수에게 노벨상 수상의 기대가 모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테슬라: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수치가 높을수록 강한 자기장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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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I 기반 양자컴퓨터 연구의 길을 열다

80대의 원로 과학자이지만, 조장희 교수의 연구 열정은 지금도 여전하다. KAIST와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에 몸담고 있는 그는 유수의 연구자들과 함께 14.0T MRI를 개발하며 MRI 기술을 접목한 양자컴퓨터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양자컴퓨터 분야에 헌신해 온 과학자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양자컴퓨터 전문가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40년 동안 연구해 온 MRI 개념을 접목해 양자컴퓨터 연구의 또 다른 갈래를 개척하는 중입니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양자컴퓨터를 연구하면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양자컴퓨터와 연관된 다양한 과학기술이 파생되고, 또 발전할 수 있습니다.”
비트(bit) 단위로 정보를 저장하는 디지털컴퓨터와 달리, 큐비트(qubit) 단위로 정보를 저장하는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의 ‘중첩’과 ‘얽힘’ 현상을 활용한다. 중첩은 하나의 큐비트가 동시에 여러 상태를 가질 수 있는 성질이고, 얽힘은 여러 큐비트가 서로 연결되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는 특성을 일컫는다. 이를 통해 양자컴퓨터는 기존 디지털컴퓨터가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현재 다수의 제조사가 초전도(超傳導)** 양자컴퓨터를 기준으로 연구 개발을 하고 있다. 기존 디지털컴퓨터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지만, 초전도 상태를 유지하려면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반면, MRI의 원리를 응용해 순수한 물인 탈이온수(Deionized Water)의 수소 양성자를 큐비트로 사용하는 조장희 교수 연구팀의 접근 방식은 초전도 전자석 대신 영구자석을 활용해 실온에서도 작동 가능하다.
“MRI 개발도 상당히 복잡한 연구 분야였지만, 양자컴퓨터는 그보다 더 어렵습니다. 컴퓨터과학은 물론 물리학, 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융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합니다. 산업적으로 유효한 연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에서의 연구는 도전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양자컴퓨터 연구와는 다른 접근이기에 MRI 기술을 접목한 양자컴퓨터 개발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하지만 조장희 교수는 MRI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팀과 함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연구팀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2023년 영구 자석과 물을 이용한 큐비트 생성 장치를 개발하고,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로부터 시험 성적서를 받았다.
2024년에는 물을 이용한 단일 큐비트로 대표적인 양자 게이트 및 하다마드(Hadamard) 게이트를 실험적으로 구현하고, 측정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또한, 단일 큐비트로 거시적 양자 중첩 상태를 1.2초 동안 유지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실험적으로 구현하고, TTA의 시험 평가를 통해 검증했다. 현재는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하드웨어 개발을 진행 중이며, 여러 큐비트 사이의 양자 얽힘 상태를 구현한 이후에는 MRI 기반 양자컴퓨터 상용화 제품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초전도: 매우 낮은 온도에서 전기 저항이 사라져 전류가 장애없이 흐르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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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I 개발도 상당히 복잡한 연구 분야였지만, 양자컴퓨터는 그보다 더 어렵습니다. 컴퓨터과학은 물론 물리학, 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융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합니다. 산업적으로 유효한 연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에서의 연구는 도전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도전이 이끄는 과학의 확장

조장희 교수는 20세기 핵물리학을 통해 혁신적 성과를 냈지만, 그는 “21세기는 양자물리학의 시대”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3명이 AI 관련 연구자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기존 디지털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을 양자컴퓨터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제가 1960년대에 유럽에 갔을 때 IBM 컴퓨터를 사용했습니다. 당시에는 혁신의 산물이었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단순하죠. 초창기 컴퓨터는 속도가 느려 아이디어가 있어도 현실화하기가 어려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계산이 빨라지니 자율주행 같은 고도의 기술도 컴퓨터가 빠르게 계산합니다. 양자컴퓨터는 그보다 차원이 한 단계 더 높습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양자컴퓨터 연구 개발이 진척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양자컴퓨터 연구는 갈 길이 멀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려면 수십 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단지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전 세계가 퀀텀 혁명에 주목하며 혁신을 거듭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조장희 교수의 양자컴퓨터 연구에 대한 도전은 우리나라 과학계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다.
“일본에서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25명이나 배출되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지만, 과학 분야 수상자는 아직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분야는 뒤처져 있다고 봐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많은 과학자가 정년 없이 연구를 이어갑니다. 과학기술도 문화의 중요한 영역으로 생각하고, 연구 인프라 강화에 힘을 실어야 합니다. 저 역시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연구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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