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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와 가치를 회복하는
‘인생정원’ 속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성종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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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인간은 자연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생존의 지혜를 얻어왔다. 자연은 단순한 생존의 공간을 넘어 문화와 역사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도시화가 가속화된 오늘날에도 인간과 자연은 여전히 깊이 연결되어 있다. 조경학자 성종상 교수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누구에게나 ‘인생 정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l 영상 이한솔

정원에 담긴 자연의 정서를 탐구하다

성종상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경학자 중 한 명이다. ‘인사동길’,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한국정원 희원’, ‘선유도공원’, ‘천리포수목원’ 등 널리 알려진 공간의 조경 설계에도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지속가능성이 화두가 된 오늘날 조경의 가치에 주목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회색빛 도시가 아닌,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삶의 터전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조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학문 체계로서 조경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3년 서울대학교에 조경학과가 개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조경 교육이 시작됐어요. 하지만 우리 전통 정원에서는 오래전부터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습니다. 실제로 전통 정원의 미학을 연구해 보면 생태 친화적인 철학이 깃들어 있어요. 나아가 문화예술로 이어지는 삶의 지혜와 경험도 자연과 어우러진 환경에서 비롯됐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조경 역사와 설계를 가르치는 성종상 교수는 역사 속 명사들의 정원 생활을 탐구해 왔다.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고속 성장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후유증을 해소할 실마리를 ‘정원’에서 찾은 것이다.
“우리 전통 정원은 생활 속에서 거리낌 없이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자 삶의 무대였습니다. 환경 위기에 직면한 이 시대에 우리가 되살려야 할 조경의 본질적인 가치가 바로 우리 전통 정원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정원의 미학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철학은 성종상 교수가 2023년 출간한 저서 『인생정원』 서문에 인용한 다산 정약용의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산은 집 자체보다 집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의 글을 통해 선조들이 이상적인 주거지로 여겨온 공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산이 그린 이상적인 주거는 크고 화려한 집이 아니었습니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환경에서 정원과 텃밭을 가꾸며 뜻이 맞는 사람들과 시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어요.”
이는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지진과 해일이 빈번했던 일본의 전통 정원은 철저한 관리와 절제된 미학을 강조한다. 반면, 우리나라 전통 정원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 품고 어우러지는 형태를 띤다.
“정자만 봐도 자연 속에서 아주 작은 공간만 차지하고 있죠. 풍경 속에 점 하나를 찍어두고, 그 주변이 살아나도록 하는 기법이 우리 정원의 특징입니다. 자연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 최소한만 개입해 조성하고, 그 공간을 있는 그대로 누리는 것이죠.”
조선 후기 문예부흥을 이끈 정조 역시 정원을 중요한 상징적 공간으로 활용했다. 즉위 첫해, 그는 후원 입구 언덕에 누각을 세우고 2층에는 ‘주합루’, 1층에는 ‘규장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새로운 군주의 등장을 알리는 공간적 장치였다. 더불어 규장각 뒤 언덕에는 소나무를 심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정조는 군사용 성벽인 화성을 축조하면서도 환경친화적인 경관을 고려했습니다. ‘아름다운 성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는 정조의 말에서 그의 앞선 비전과 철학을 엿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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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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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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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숨결을 사람 사이로 불어넣는 정원의 가치

성종상 교수는 우리 정원의 자연 미학이 더욱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 미학은 단순한 형식미가 아니다. 인간과 자연이 소통하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그는 정원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주거 형태는 아파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전국에서 좋은 나무를 가져와 단지 안에 심지만, 정작 주민들은 그곳을 정원으로 인식하지 않고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공동주택 단지 안에 잘 가꾼 정원이 있다면, 이웃 간 관계를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성종상 교수는 자신이 조경 설계를 맡았던 한 아파트의 공동 텃밭을 연구한 논문도 발표했다. 예상대로, 텃밭 관리에 꾸준히 참여한 가구의 이웃 관계는 그렇지 않은 가구보다 확연히 좋았다. 오가며 이웃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며, 취미나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 형성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요즘 공동주택에서는 층간소음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심할 경우 소음으로 인해 큰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그런데 윗집에 사는 아이가 누구인지 알고, 귀여운 모습을 자주 봐온 사이라면, 신경이 쓰이더라도 쉽게 화를 내지는 않을 겁니다. 오가며 마주쳤을 때 자연스럽게 이유를 묻고, 사과하며 이해하는 과정도 가능해지지요. 단지 안에 조성된 공동 텃밭은 이웃 간 소통의 기반을 마련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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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나라의 주거 형태는 아파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전국에서 좋은 나무를 가져와 단지 안에 심지만, 정작 주민들은 그곳을 정원으로 인식하지 않고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공동주택 단지 안에 잘 가꾼 정원이 있다면, 이웃 간 관계를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가족과 이웃, 사회를 연결하며

성종상 교수가 강조하는 텃밭의 핵심 목적은 ‘사회적 관계의 장’이다. 텃밭에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수확에 불과하다. 그는 텃밭을 비롯한 정원이 관계 회복의 통로가 되는 사례를 주변에서 자주 확인한다.
“제자 한 명이 가족과 함께 교외로 이사하면서 집에 정원이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한국의 여느 부자 관계처럼 대화가 적고 서먹했는데, 정원을 가꾸면서 아버지와 함께할 일이 많아진 거예요.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 관계도 애틋해졌다고 하더군요.”
학교에서도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활동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경험은 정서적·신체적 치유 효과를 넘어 공동체에 대한 애착으로 확장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자연과 접할 기회가 많아야 합니다. 매일 반복적으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이 늘어나야 해요. 공공 차원에서 ‘가드닝 스쿨’ 같은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성종상 교수는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교내에 참여형 정원 ‘힐링 가든’을 조성했으며, 서울시 지원 아래 정원 교육 프로그램인 ‘서울시민정원사’ 과정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정원 문화 활성화에도 힘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밑거름되어 모두에게 열린 ‘인생 정원’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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