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노 박사는 한국 식물학의 선구자로 한반도 자생식물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입니다. 그의 연구는
단순히 식물 분류에 그치지 않고 우리 땅에 자생하는 식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자연과
깊은 연결을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식물학자이자 생태학자 이영노 박사의 삶을 따라가
봅니다.
글 황인희 역사 칼럼니스트
대학교 졸업 후 줄곧 출판계에서 일하다가 월간 「샘터」 편집장을 끝으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다수의 책을 저술했고, 현재 역사 칼럼니스트, 인문여행 작가로서 집필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사진 및 자료 제공: 이영노 박사 유가족, 『식물학자 啓宇 이영노』
*사진 및 자료 제공: 이영노 박사 유가족, 『식물학자 啓宇 이영노』
한반도를 누빈 식물학자
“이 야생화 어디서 봤느냐? 지금 당장 나랑 같이 가서 확인하자.”
이 말은 식물학자 이영노 박사가 생전에 연구를 위해 가장 자주 한 말입니다. 그는 “우리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
남한 땅은 안 가본 곳이 없다”고 말할 만큼 전국을 누비며 한반도 자생식물을 조사했습니다. 북한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찾기 위해 중국 쪽 백두산을 20여 차례나 오르는가 하면, 남미 아마존 밀림부터 캐나다 북극 지대까지
오대양 육대주를 오가며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식물학자인 이영노 박사의 일생은 온통 자생식물 조사, 연구, 교육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는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전국을 돌며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식물을 샅샅이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동강할미꽃, 노랑무늬붓꽃 등 424가지(국가표준식물목록 기준)의 자생식물을 학계에 보고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Manual of the Korean Grasses』, 『새로운 한국식물도감』 등 식물학계의 백과사전과도
같은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Manual of the Korean Grasses』에는 우리나라 벼과(Poaceae) 식물 240여 종의
형태적 특징, 염색체 수, 서식 및 분포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새로운 한국식물도감』은 197과 4,157종 식물의
사진과 설명을 수록한 두 권짜리 책으로 양치식물*, 종자식물, 귀화식물, 원예식물 등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정리한 1,864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입니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식물을 찾아 이름을 붙이고
분류해 온 그의 평생 연구가 이 책들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이 외에도 그는 한반도 자생식물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들은
우리나라 자생식물 분류 체계를 확립하고, 식물분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양치식물: 꽃이 피지 않고 번식하는 식물
▲ 전주사범학교 입학 사진
▲ 1996년 출간한 『Manual of the
Korean Grasses』
▲ 1984년 식물 탐방차 찾은 브라질 아마존강 밀림에서
▲전주사범학교 입학 사진
▲ 1996년 출간한 『Manual of the Korean Grasses』
▲ 1984년 식물 탐방차 찾은 브라질 아마존강 밀림에서
10만 점의 표본, 이영노 박사의 여정
1920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이영노 박사는 전주사범학교(現 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가 산과 들을 누비며 식물을 찾아다니게 된 계기는 사범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학교에서
왕벚나무를 가장 잘 그렸다는 칭찬을 받은 것이 식물에 관심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영노 박사는 6·25전쟁 이전, 즉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이미 10만 점이 넘는 식물표본을 채집했습니다.
그러나 피란길에 표본을 가져갈 수 없었던 나머지, 그동안 모은 소중한 자료 대부분을 전쟁 중 잃었습니다.
이후 그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표본을 채집할 때마다 반드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전쟁이 나도
둘러메고 도망가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사진 슬라이드가 많아지면서 결국 사진을 들고 피란
가기는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새로운한국식물도감』에 실린 사진 상당수도 그가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사범학교 졸업 후 교사로 재직하던 이영노 박사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미국
캔자스주립대학교 대학원 식물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65년
이화여대 생물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그는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식물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1년 중 절반 이상을 집 밖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인과 주변 사람들은
이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지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영노 박사는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준 주변 사람들을 ‘선구자’라고 칭했습니다. 그들의 도움 덕분에 한 분야에
매진하며 연구 실적을 쌓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 2004년 남북 공동 사진전 ‘꽃으로 본 내 나라’에 참석한 이영노 박사(오른쪽 끝)
▲2007년 제주도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이영노 박사
▲2004년 남북 공동 사진전 ‘꽃으로 본 내 나라’에 참석한 이영노 박사(오른쪽 끝)
▲2007년 제주도에서 연구 활동을 하는 이영노 박사
수많은 꽃에 이름을 붙이다
이영노 박사는 사진작가들의 도움을 특히 많이 받았습니다. 1997년, 동강을 따라 생태 사진을 촬영하던 사진작가
김정명은 귤암리 석회암 절벽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작은 꽃들을 발견하고 이영노 박사에게 알렸습니다.
1999년, 사진작가 문순화, 이경서와 함께 한라산 백약이오름을 찾은 이영노 박사는 이곳에서 한라꽃향유
군락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보통 꽃향유는 키가 50cm 정도까지 자라지만, 이곳에서 발견한 개체들은 키가 10cm 남짓이었습니다. 이후
이영노 박사는 이 식물을 ‘한라꽃향유’로 명명했습니다. 한라꽃향유의 학명은 ‘Elsholtzia hallasanensis Y.N.Lee’입니다. 기존 꽃향유 학명은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가 등재했지만, 한라꽃향유의 학명에는 이영노 박사의
이름(Y.N.Lee)이 새겨질 수 있었습니다. 식물의 학명에는 발견자의 이름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93년, 사진작가 문순화가 처음 발견하고 제보한 야생화에도 이영노 박사는 ‘가지바위솔’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가지바위솔의 학명은 ‘Orostachys ramosa Y.N.Lee.’이며, 2004년 부산 기장군 기장읍 해안에서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부산꼬리풀’의 학명은 ‘Veronica pusanensis Y.Lee.’입니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름다운 꽃들을 친근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이름 없는 야생화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의미를 찾아준 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