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은영 여행작가, 『당신이 모르는 그곳』 발행인 | 사진 플리커, 픽사베이 등
글 조은영 여행작가, 『당신이 모르는 그곳』 발행인 | 사진 플리커, 픽사베이 등
꽃과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국에서 열리는 ‘첼시 플라워 쇼(Chelsea Flower Show)’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2016년 개봉한 아일랜드 영화 ‘플라워 쇼’는 정원 디자이너
‘메리 레이놀즈’의 ‘첼시 플라워 쇼’ 도전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전 세계 정원사의 꿈의 무대인
‘첼시 플라워 쇼’에 대한 궁금증과 환상을 자아낸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을 보려고 사람들은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인간은 곧 자연이며,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생각으로 자연 그대로를 디자인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메리 레이놀즈의
말처럼, ‘첼시 플라워 쇼’는 정원 디자이너들의 철학과 창의성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첼시 플라워 쇼’는 1862년 켄싱턴에서 열린 ‘왕립원예협회 그레이트 스프링 쇼(Royal Horticultural Society
Great Spring Show)’에서 유래했다. 이후 1913년부터 매년 봄 첼시의 왕립병원 정원에서 박람회가 열리며,
세계적인 플라워 쇼로 자리 잡았다. 박람회장은 배터시 공원과 템스강 건너편 슬론 스퀘어역 가까이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2025년 5월 20일부터 24일까지 5일간 열리는 이번 쇼에 방문하고자 한다면, 왕립원예협회 공식
웹사이트에서 티켓을 예매할 수 있다. 또 협회 회원 가입을 통해 왕립원예협회 정원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플라워 쇼 멤버스데이에 참여하거나 티켓 할인 등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유럽의 꽃 박람회는 오래전부터 마을 축제의 일환으로 열렸다. 직접 키운 꽃과 열매를 전시하고 서로
축하하며 교류하는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유럽 곳곳의 넓은 공원에서는 다양한 꽃 박람회가 열린다.
런던의 ‘첼시 플라워 쇼’에서는 여러 스타일의 정원, 새롭게 개발된 품종의 꽃, 다양한 가드닝 제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유명한 정원사들과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창의적인 정원을 감상하며 많은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첼시 플라워 쇼’의 최고 볼거리는 ‘쇼 가든’ 전시장이다. 쇼가 시작되기 약 2년 전부터 준비가 시작되며,
18개월 전부터 전문 심사위원단이 출품작을 심사해 최종적으로 20~30개의 쇼 가든을 선정한다.
이후 디자이너, 스폰서, 시공자들이 협업해 콘셉트에 맞는 정원을 완성하면 디자인과 건축, 식물의 조화
등을 세심히 평가해 금·은·동메달리스트를 최종 선정한다.
2023년에는 ‘지리산’을 주제로 한 한국의 황지해 정원 디자이너가 금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소호, 트래펄가 광장, 버킹엄 궁전,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아이, 타워브리지 등 런던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많다. 그중에서도 첼시가 속한 켄싱턴-첼시 왕립구는 템스강을 따라 이어진 아름다운 산책로와
공원이 있는 지역으로, 런던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주거지다.
첼시는 한때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그러다 16세기 헨리 8세 시대부터 귀족들이 정착하며 ‘궁전 마을’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후, 19세기 말부터는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지금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현대미술 작가 제임스 휘슬러는 런던에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첼시에는 그가 거주했던 ‘화이트하우스’가 있다.
또한 명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남긴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생가도 둘러볼 수 있다.
현재 첼시는 런던에서 가장 비싼 집과 고급 상점, 디자이너 숍이 밀집해 있는 동네로 유명하다. 킹스 로드 쇼핑
거리, 피터존스 백화점, 카도건 홀, 로열 코트 극장 등 문화·예술 공간도 많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켄싱턴-첼시 왕립구 상징, 붉은 벽돌 건축
켄싱턴-첼시 왕립구 상징, 붉은 벽돌 건축
물가가 비싼 런던이지만 박물관 인심만큼은 어느 도시보다 후하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을 비롯해 대영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모던, 사치 갤러리 등 많은 박물관이 무료로 개방되어
여행자와 시민들을 맞이한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세계 최대 공예품 박물관 중 하나로, 유리공예가 데일 치훌리의 화려한 샹들리에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의 정원 내 카페테리아에서 음료나 스낵을 즐기며 봄을 만끽할 수 있다.
첼시의 킹스 로드에 있는 사치 갤러리에서는 현대미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트래펄가 광장의 내셔널
갤러리는 차분하고 고전적인 분위기에서 고흐, 모네, 마네, 세잔, 폴 고갱, 르누아르, 피카소 등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내셔널 갤러리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박물관만 둘러봐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지만, 런던 여행에서 템스강 크루즈는 놓치면 아쉬운 경험이다. 배 안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런던의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은 특별하다. ‘첼시 플라워 쇼’를 놓쳤다 해도 아쉬워할
필요 없다. 도시 곳곳에 작은 플라워 마켓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요일에 ‘콜롬비아 로드 플라워 마켓’을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다양한
종류의 꽃, 관엽식물, 허브뿐 아니라 가드닝용품과 소품을 판매한다.
마켓 주변에는 유명한 카페와 레스토랑도 많다. 햇살 좋은 날, ‘브릭레인 베이글’에서 브런치를 즐기고 나면
활기차고 싱그러운 런던만의 분위기에 푹 빠져들 것이다.
나이가 들어야만 꽃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쫓기듯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고개를 들고 숨을 돌릴 힘만
있다면, 자연은 기꺼이 손을 내민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런던의 봄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여행지다. 꽃 한 송이를 들고 낯선 도시를
거닐며 머무는 숙소에 소박한 꽃다발을 꽂아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인생이 향기로워지는 법을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