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웃을 일 많은 하루하루다. 시도 때도 없이 상냥한 얼굴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노릇. 분노가 치솟아도 우울감에 휩싸여도 일단 얼굴은 맑음이다.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나는, 이 불편부당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에 대하여.
- 글. 편집실
현대인에게 씌워진 스마일 마스크
환하게 웃는 얼굴에 말투는 친절하며 매사 사려 깊을 것. ‘좋은 게 좋은 것’의 미덕까지 탑재하고 있다면 금상첨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타인의 생각과 시선에 어느 정도는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 그래, 밝고 긍정적이라 좋다. 하지만 실은 조금 버겁다.
그렇잖아도 마음대로 못 하고 사는 것 투성인데, 내 감정까지 깎고 다듬고 가면을 씌워 드러내야 한다니.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눈물 마를 날이 없다.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이런 의무 아닌 의무는 일종의 감정노동이다. 직업군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정도가 다르긴 해도 늘 밝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터. 급기야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라는 심리학 용어까지 생겨났다. 이는 일본 쇼인여대 나스메 마코토 교수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웃음 뒤에 우울감이 가려져 있다는 뜻. 가면성 우울증이라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직장인 41%가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을 겪는다는 조사도 있다. 영업이나 서비스업 종사자, 경쟁이 극심한 경우를 기준으로 보면 수치는 더 치솟는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기에 긍정적이라고 해서 내면까지 같은 모습일 거라 속단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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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곪으면 몸도 시름시름 병든다
사람의 감정은 매우 복잡미묘하다. 제 손바닥 뒤집듯 마음대로 확확 움직일 수도 없다. 그런데 불쑥불쑥 올라오는 화, 슬픔, 분노, 절망 같은 감정을 꾹꾹 눌러야만 한다면, 당연히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지 못하는 탓이다.
자신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사람을 대할 때 드러내는 감정의 괴리감이 클수록 불안은 더 커진다. 게다가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에 서툴고 무감각해질 위험도 있다.
이러한 불안 상태는 다양한 증상으로 표출된다. 식욕과 성욕이 떨어지고 불면증이 생길 수 있으며 매사 무기력하게 된다. 또한 면역체계와 호르몬 분비에도 이상이 생겨 두통, 소화불량, 감기, 여성의 경우 생리불순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심할 경우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하는데, 실제로 강도 높은 감정노동이 요구되는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자살충동 정도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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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미는 감정, 인정할 건 인정하자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을 개인이 풀어야 할 숙제로 떠넘기는 건 가혹하다. 분명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 문화적 배경, 사회적 구조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 해부터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소위 ‘갑’의 입장에 있는 고객이 익명성에 기대 상담원 등에게 폭언이나 부당한 요구를 할 경우 처벌을 받는 법이 시행됐다. 물론 스마일 마스크를 벗어 던지겠다는, 혹은 마스크 안과 밖의 괴리를 좁히겠다는 스스로의 의지도 중요하다. 시작은 제대로 인지하고 표현하는 것. 마냥 참는 게 능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표현하지 않고 묵힌다고 사라진다면 몰라도, 실은 차곡차곡 마음에 돌덩이처럼 얹히는 게 현실이다.
치유의 핵심 열쇠는 본인에게 있다. 화, 분노, 우울을 인정하고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어떻게 느끼는지, 무슨 문제를 겪고 있는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게 우선, 해소 노력에도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가깝게는 가족이나 친구, 혹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짐은 한결 가벼워질 테다. 자신이 어떨 때 기분이 좋아지는지를 파악해 취미나 여가 활동을 즐기는 것도 우울감 완화에 이롭다. 그리고 기억하자. 어떤 상황이라도 우선순위는 항상 자기 자신임을. 가면에 가려져 못 보고 있었을 뿐, 행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