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화요일, 부산 벡스코의 오디토리움. 비가 내렸다 그치길 반복하는 궂은 날씨를 뚫고 청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The–K 은빛동행 청바지 콘서트’를 찾아온 이들이었다.
올해로 2회를 맞이한 ‘The–K 은빛동행 청바지 콘서트’는 교단에 있다가 은퇴한 특별회원들이 여전히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준비한 문화복지서비스의 일환이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라는 의미를 담아 ‘청바지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이를 살려 콘서트의 드레스코드 역시 청바지로 정했다. 청바지가 옛 추억과 젊음을 상징하는 패션 아이템이자, ‘지금이 순간을 청춘으로 즐기길 바란다’는 콘서트의 취지를 톡톡히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까지는 한 시간도 넘게 남은 시각임에도 로비는 이미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질서 정리를 위한 안내방송 덕분에 혼란은 없었고, 기념품으로 청바지 에코백을 받은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공연 30분 전부터 시작된 그룹 허밍스테레오의 사전공연 또한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초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로비에 들어선 사람들은 안내에 따라 티켓과 에코백을 받아들고, 포토존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객석에 자리했다.
이날 콘서트에는 사전 응모에 당첨된 1천 150명(동반인 포함 2천 300명)이 참석해 객석을 가득 메웠다. 부산이나 경남 지역 회원뿐만 아니라 순천, 통영, 천안 등에서 청바지 콘서트와 부산 여행을 겸해 찾아온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설렘을 앞에 두고 막을 올린 이들은 팝페라 가수 포엣. 포엣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수록곡인 <지금 이 순간>, 팝페라 버전으로 편곡한 <My way>, 칸초네 <사랑의 맹세> 등을 열창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시작부터 뜨거워진 열기에 포엣은 “여러분들께서 다시금 청춘이 아니라 처음 청춘을 맞이하신 것 같다”며 “청춘은 바로 지금,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로 응원을 보냈다.
뮤지컬그룹 아트레볼루션의 <댄싱퀸> 무대가 이어진 뒤, 콘서트의 진행을 맡은 이재용 아나운서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콘서트가 시작됐다. 청바지 콘서트에는 다른 콘서트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 가장 멋지게 드레스코드를 소화한 관객을 찾는 ‘베스트드레서 시상식’이다. 스태프들이 공연 전 로비에서 1차 후보군을 찾아 사진 촬영을 해두고, 무대에서 이들의 사진을 공개해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사람에게 베스트드레서상을 수여하는 방식이다. 무대 위 스크린에 후보 여섯 팀의 사진이 오르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줄무늬 티셔츠와 청바지로 맞춘 커플룩, 장발과 긴 수염이 포인트가 된 청·청 패션, 부산 바다의 푸른빛을 닮은 부부의 옷까지 누구 하나 우위를 가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자의 요청으로 직접 무대에 오른 여섯 팀은 저마다의 의상을 뽐냈지만, 인터뷰를 통해 모두 같은 말을 했다. “교직에 있으면서 늘 정장을 입었는데, 이제는 정장에서 탈피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 무대 위도, 객석도 한마음이 된 덕분에 여섯 팀 모두에게 상품권이 주어졌다. 심지어 객석에서는 ‘나도 베스트드레서상’을 외치며 기꺼이 무대 위로 나선 이들까지 있었다. 물론 핵심은 같았다. “남은 인생은 마음대로 즐겁게 살아봅시다!”
이번 콘서트의 초대가수는 남녀노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며 공연하기로 잘 알려진 가수 변진섭과 김연자였다. 그리고 지난해 첫 청바지 콘서트를 함께했던 가수 이문세가 올해도 함께했다. 가장 먼저 무대에 선 변진섭은 <그대 내게 다시>, <희망사항>, <너에게로 또 다시>, <새들처럼>의 히트곡을 선보인 뒤 앙코르 곡으로 <비와 당신>을 선택했다. 그의 노래가 끝나자 이재용 아나운서는 “변진섭 씨가 <희망사항>으로 활동하던 당시에 저는 군 복무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희망사항>을 들으면 그때 생각이 나네요. 여러분들께서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그때를 회상하면서 오늘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바람을 전했다. 최근 새롭게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 김연자가 배턴을 받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계속 노래만 해와서 청춘이랄 게 없었던 것 같다”고 운을 떼었다가 “하지만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모습들 자체가 청춘이 아니었나 싶다”는 말로 큰 공감을 얻었다.
김연자는 <10분내로>, <진정인가요>에 이어 가요메들리를 부르며 객석으로 내려가기도 했고, 크게 유행한 <아모르파티>로 공연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달궈진 객석으로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준비한 영상이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청춘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연 직전 로비에서 촬영된 사전 인터뷰 영상 속에서 사람들은 ‘도전’ ‘지금’ ‘꿈’ ‘설렘’ ‘의지’ ‘시작’ ‘여행’ ‘힘’ ‘60부터’와 같은 다양한 답변을 내놓았다. 관객들이 소소하게 웃고 “지금 즐길 수 있으면 청춘 아니겠습니까?”라는 사회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콘서트는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무대에 등장한 이문세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소녀>, 데뷔곡인 <나는 행복한 사람> 등으로 관객들과 추억 여행을 떠났다가 <알 수 없는 인생>으로 다시 흥겨운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그는 실제로 교직에 있다가 정년퇴직한 장인, 장모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자연과학을 가르치시던 분들이 수필과 시를 쓰고, 동양화를 그리고 계십니다. 95세인 지금도 작품 활동을 하시는데 학교에 계실 때보다 열 배는 더 행복해 보이세요.” 그는 자신 역시 “잘 놀다 잘 가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지금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관객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와 함께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할 <붉은 노을>이 울려 퍼졌다.
사전공연부터 마지막 앙코르까지 3시간에 달하는 콘서트에도 청춘들은 지치지 않았다. 미처 아쉬움이 남아있는 공연장에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질 첫걸음을 응원하는 피날레 음악이 잔잔했다. 지금껏 묵묵히 걸어온 이들의 인생 제2막을 격려하고, 그 길의 동반자가 되고자 마련한 이번 콘서트의 또다른 선물이었다.
오늘 오신 모든 분이 청바지를 입고 추억을 회상하며 ‘오늘이 가장 멋진 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는 1년에 한 번 청바지 콘서트를 진행했지만 앞으로는 연 2~3회로 횟수를 늘리거나, 더 많은 지역으로 확대해 회원님들이 더욱 균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고의 가수들이 온다는 소식과 주변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신청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라는 말이 너무 멋졌어요.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드리고, 계속해서 문화 체험의 기회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마음껏 즐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왔는데, 기대보다 더 에너지가 넘치는 공연이라 모처럼 기분 전환이 됐습니다. 퇴직하고 제 자신의 마음이 늙어가는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나를 다시 다잡는 계기가 됐어요. 전에도 청바지를 즐겨 입었지만 앞으로는 더 즐겨 입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