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하기
[+25] 그 쌤의 이중생활

교사이자 변호사로 사는 이유,
결국 목표는 ‘행복한 교육’

서울 영림중학교 박종훈 교사

“쌤은 그냥 쌤 같아요.” 어디서 그가 변호사였다는 말을 듣고 온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변호사에서 서울시교육청 사무관으로 그리고 국어 교사로 역할을 바꾸면서도 그의 관심은 항상 ‘교육’에 닿아 있었다.
  • 글. 정라희
  • 사진. 김도형

Teacher & Lawyer
학교가 행복해질 방법을 고민하며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교사와 학생의 거리감은 컸고, 학생지도의 방법으로 체벌이 흔하게 쓰였다. 학교 가는 길이 전혀 즐겁지 않았고, 속으로 ‘내가 교사라면 학교를 이렇게 운영하지 않을 텐데’ 생각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어느 대학 갈래?”라는 질문 대신 “학교 오가는 길에 풍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니?”라는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웠던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남자고등학교에서 나오기 정말 힘든 질문이었어요. 지금도 친구들에게 ‘밥은 먹었냐’, ‘기분은 어때’ 이 정도 질문만 하지, 상대의 일상에 진심으로 관심을 둔 질문은 거의 하지 않는데 말이죠.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가장 희열에 찬 순간은 언제인지, 어떤 가수의 노래를 듣는지 같은 제 관심사를 궁금해하셨어요. 국어 수업도 정말 재미있게 하셨고요.”
덕분에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회의적인 학생이 비로소 꿈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교사를 진로로 정하고 각 사범대학 입시요강을 붙여 놓고 공부했다.
자신처럼 학교를 지옥으로 여겼던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학교 다니는 재미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교생 실습을 하면서 다시 찾은 교육 현장은 그가 학생일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개인이 학급 하나는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학교라는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군 복무 중 법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제도를 바꾸는 근거가 법에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졸업 후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된 것도 결국 법 전문가로서 교육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바람에서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도 교육위원회 활동을 부지런히 했고, 이후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 담당 부서에 사무관으로 들어가 교육행정가로 3년 동안 일하며 학생인권교육센터를 키웠다. 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교사들은 ‘학교 현장을 아느냐?’는 아쉬움을 드러냈고, 교육청에서도 교육감 임기가 임박해오면서 정책 추진이 더디었다. 결국 2018년 1월에 사표를 냈다. 현장으로 들어가 왜 좋은 정책이 현실과 부딪히는지 직접 알고 싶었다.

교사들이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장받으려면 학교와 교육을 둘러싼
주요 법과 그 법의 핵심 내용을 알아야 한다.
그는 이 책이 교권과 법에 대해
고민하는 교사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현장에서 경험한 우리 교육의 두 얼굴

처음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화려한 스펙에도 그를 뽑아주는 곳은 없었다. 오히려 서류부터 탈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직계구조상 교장급에 해당하던 사무관을 학교에서 선발하기는 부담스러웠을 터. 60번의 지원서를 냈지만 연락한 학교는 불과 한 곳. 애초에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강남 서초동에 있는 중학교였다. 서초동 중학생들은 언뜻 보기에 전인교육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특목고나 자사고 진학률은 당연히 높았고, 공부 말고도 운동이나 악기 다루는 일에도 능숙했다. 인권 문제에도 누구보다 관심이 높았다. 억지로 하는 활동이 아니라, 자율동아리를 스스로 만들어 오히려 그를 지도교사로 초빙했다.
“곁에서 보니 서초동 아이들이 오히려 사회적 이슈에 더 민감하고 잘 수용해요. 경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던 아이들이 잘만 성장하면 사회에 좋은 토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서 희망과 함께 절망도 봤어요. 그런 문화 자본을 학교에서 얻은 게 아니거든요.”
성적이 고등학교 입시에 반영되는 중학교 2학년부터는 대다수 학생이 학원 수업에 길든다. 3학년이면 수행평가는 해치우듯 치러야 하고 수업 진도를 빨리 나가는 일이 더 중요했다. 생각하는 과정보다 당장 빈칸을 채울 답이 중요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곳에서 1년을 보낸 다음에는 심기일전해 혁신학교에 지원했다. 그리고 구로에서 거의 두 학기를 보낸 지금, 그는 다시 우리 교육의 이면을 경험했다. 특목고나 자사고를 목표로 하지 않으니 당장 아이들이 느끼는 학업 스트레스는 적지만, 앞으로 아이들의 진로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상만 말하면서 현실을 외면하기에는, 그도 세상을 알 만큼 아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인권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을 찾았다. 이런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인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외로운 교사들을 향한 응원

학교 현장에 있으면서 교사의 고충도 함께 체감하고 있다. 학부모는 공교육을 불신하고, 학교는 학부모가 공교육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최근 매스컴에서 학교 현장을 언급할 때면 ‘교권 침해’나 ‘교권 추락’ 같은 단어가 빈번하게 따라온다. 그 과정에서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힘들어하며 학교 현장을 떠나는 교사들도 생겼다.
“권력을 휘두르는 교사는 거의 없고 대다수 교사가 외롭게 견뎌야 할 때가 많은데 외부에서는 법이라는 무기를 교사에게 들이댑니다. 그런데 막상 법을 아는 교사들은 없어요. 법과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법을 몰라 혼자 힘들어 합니다. 교사들 스스로 안전감이 들어야 주변을 더욱더 잘 돌아볼 수 있어요.”
변호사였다가 교사가 된 박종훈 교사와 교사였다가 변호사로 일하는 정혜민 변호사가 함께 저술한 「교권, 법에서 답을 찾다」는 교사들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법률 상식과 분쟁 대처 방법을 판례 중심으로 담은 책이다. 교사들이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장받으려면 학교와 교육을 둘러싼 주요 법과 그 법의 핵심 내용을 알아야 한다. 그는 이 책이 교권과 법에 대해 고민하는 교사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특이한 이력 때문에 그를 색안경 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언젠가는 교육 현장을 떠날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매년 수십 장의 지원서를 쓰면서 기간제 교사 자리를 구해야 하는 절실함은 그도 마찬가지로 경험한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쇼한다’거나 ‘큰 그림을 그리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물론 그도 ‘이렇게 살겠다’고 자신 있게 외칠 만큼 확실한 인생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다. 그래도 계획한다고 해서 삶이 그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쯤은 그도 안다. 지금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좀 더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데 집중할 뿐이다.

‘그 쌤의 이중생활’은 독자 여러분이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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