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행복찾기
무장애 교실 프로젝트

진심에 더해진 기술, 교실이 달라졌다!

아름학교 이진석 교사

시각장애학교 교실에 글 읽는 즐거움이 찾아들었다. 전혀 새로운 경험에 교사와 학생의 자존감도 덩달아 높아졌다. 한국교직원공제회와 한국장애인재단이 함께하는 ‘무장애 교실 프로젝트’가 계기를 만든 것. 그리고 이 모든 게 현실이 되도록 이끈 이, 바로 아름학교 이진석 교사의 이야기다.
  • 글. 정은주
  • 사진. 한제훈

보이지 않아도 글을 읽을 방법은 있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니 장애가 있다고 좌절할 이유는 없다. 단순하게 생각해 현실적으로 장애를 없앨 수 없다면, 불편을 만드는 환경을 바꾸면 될 터. 한국교직원공제회와 한국장애인재단이 무장애 교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장애로 인한 불편이 단번에 사라지진 못할지라도 프로젝트가 불러일으킨 변화는 희망적이다.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바뀐 것. 시각장애인 교사로서 시각장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진석 교사의 수업 풍경도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상상해 보건데, 시각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묵자로 된 글을 읽어내기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테다. 점자로 옮긴 것을 읽거나 누군가에게 낭독을 부탁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니까. 혼자 힘만으로는 도무지 역부족이다. 이진석 교사는 그래서 무장애교실 프로젝트를 통해 노바캠리더 지원을 신청, 지난해 9월 말부터 이를 활용해 업무와 수업을 진행하는 건 물론 대학원 연구에도 활용하고 있다. 이진석 교사가 지원받은 노바캠리더는 종이에 인쇄된 묵자를 카메라로 촬영해 텍스트로 변환한 후 음성파일로 들려주는 기기다.
정해진 위치에 종이를 올린 후 노트북 클릭 몇 번이면 10여 초 만에 글이 읽힌다. 종이가 거꾸로 놓여도, 단이 나누어져 있어도 괜찮다. 심지어 휴대도 간편하다. 덕분에 직접 스크랩한 신문 기사를 시각장애 학생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 가능해졌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희망의 출발점

이진석 교사는 시각장애 자녀를 둔 학부모 사이에서 ‘대들보’로 불린다. 장애가 무색할 만큼 열정적으로 수업을 이끄는 건 물론, 꼭 필요로 하는 정보도 폭넓게 섭렵하고 있는 까닭이다. 담당하는 고등학교 이료교과와 중학교 도덕과목 외에 점심시간을 쪼개 점자교육도 하고 있는 그.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최대한 주고 싶은 마음에 휴식도 잠시 미룬다.
“시각장애인 가운데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이들의 비율은 한 자릿수예요. 매우 낮죠. 점자는 손으로 읽는 거라 나이가 들면 감각이 무뎌져 배우기가 쉽지 않은 데다, 학령기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교육을 하고 있어요. 점자를 해야 맞춤법 교정도 되고 작문 실력도 늘거든요.”
하지만 모든 책이나 인터넷 상 정보를 점자로 만들 수는 없으니 노바캠리더 같은 기기를 함께 활용하면 효율이 훨씬 커진다는 생각. 그래서 최근 학생들에게 노바캠리더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런 기계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희망이 돼요. 독서 같은 취미활동에 활용할 수도 있고요. 복지관에 의뢰해 300페이지 정도 되는 책 한 권을 타이핑하려면 3~4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니 그동안 신간은 읽을 엄두를 못 냈죠. 타인의 도움 없이 문서를 즉각 읽을 수 있다는 건 놀라운 발전이에요. 덕분에 의사소통이 훨씬 수월해지니까요. 이건 벽을 허무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안 보이면 못하는 줄 아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네?’라는 생각이 들게 하죠.”

오직 학생들을 위해 움직이는 진심

어느덧 교직 생활 8년 차.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칠수록 이진석 교사의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가깝게는 지금 대학원에서 연구 중인 「시각중복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과정 연구」라는 주제와 접목해 교재 혹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다고. 더불어 기회가 닿는다면 교육청과 연계해 경기도 내 일반 학교에 재학 중인 200여 명의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도움을 전하고픈 바람도 있다.
“뭐든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곤 해요. 작은 계획이 하나하나 늘어날 때마다 부족하지만 교사로서의 제 역량도 늘어나는 듯해 즐겁고요.”
학생이 있기에 교사가 있는 것, 그렇기에 모든 일의 시작에 앞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라는 질문을 되뇐다는 이진석 교사. 비록 빛을 보지는 못하지만, 학생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가 든든한 빛이 되어주려 한다. 그의 진심이 이끈 교실의 변화는 그렇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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