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억하기
에세이

특별한 졸업선물을 위한 72시간,
그것은 사랑이었다

「에세이」는 교사의 마음이 느껴지는 공감 에세이로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선생님들의이 야기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 글. 그림 정우정(경기 성지초교 교사)

졸업식 날 처음 고백해버렸다.
“선생님은 올해 정말 행복했어!”
“저희도요!”
정성껏 그린 연필 초상화 액자와 모두의 얼굴이 담긴 우리 반만의 초상화 앨범을 선물했다. 아이들은 소중히 받으며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특별한 졸업선물을 주고 싶었다.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며 즐거웠던 올해를 남기고 싶었다. 다른 학교로 전근을 앞둔 때여서 더욱 아쉬웠다.
‘아이들의 초상화를 그려줄까?’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걸 알기에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첫 아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24명을 그리는 건 역시나 어려웠다. 적어도 한 사람당 3~4시간씩 걸렸다. 학기말이 되자 성적 처리와 부장 업무로 정신없이 바빠졌다. 퇴근하면 너무 피곤해서 저녁만 먹고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이 힘든 걸 괜히 시작했나 후회도 했다.
짬짬이 했지만 몇 주 동안 2명밖에 그리지 못했다.
마음이 급하다고 대충할 수는 없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싶진 않았다. 얼굴은 관찰하는 시간이 절반 이상이다. 아이들의 사진을 찬찬히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연필을 들었다. 모든 순간의 정성이 그림에 담기길 바랐다.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학년말 업무 처리로 정신없던 어느 점심시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선생님! 진영이랑 수찬이가 싸워요!”
가장 덩치도 크고 힘이 센 진영이가 수다쟁이 수찬이와 다투고 있다는 것이다. 나가보니 발길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급히 싸움을 말렸다. 아이들을 보낸 후 진이 빠져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12월 학년말의 6학년은 정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날은 하나도 그리질 못했다. 하필 그리던 아이가 진영이였다. 피곤한 몸으로 앉아 그리려는데 진영이에 대한 속상함이 밀려왔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고 다른 친구들과 크고 작은 다툼이 제법 있었다. 힘들게 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사진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만둘까…….’
쉽게 연필이 들리지 않았다.
다음 날, 다시 진영이 그림 앞에 앉았다. 초상화는 한 사람만 온전히 바라보고 집중하는 시간이다.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진영이와의 여러 일들이 떠올랐다. 진영이가 항상 말썽만 부린 건 아니다. 분리수거 때면 무거운 폐휴지 상자를 번쩍들어 날라주었고 대걸레 청소를 힘들다 하지 않고 쓱쓱 잘해 주던 아이였다. 찬찬히 떠오른 기억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연필을 들고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아직 6명이나 남았다. 졸업식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날이었다. 결국 퇴근 후마다 집 근처 새벽까지 문 여는 카페로 갔다. 마지막 그림을 완성하고 나오던 새벽 2시, 겨울바람이 알싸하게 코끝을 스치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와! 시원하다!”
벅찬 마음에 추운 줄도 몰랐다. 몇 날 며칠 새벽까지 지새느라 힘들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없이 소중한 기억이다. 그렇게 졸업식 이틀 전, 24명의 연필 초상화를 모두 완성했다.
졸업식 전날, 그림을 액자에 소중히 넣었다. 감격스러웠다. 처음 시작할 때 할 수 있을까 스스로도 의심스러웠던 도전이었다. 몸도 마음도 힘든 때였지만 한 명씩 완성되어 가는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멈출 수가 없었다.
24명, 모두 7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없이 바라보며 그리던 선생님의 시선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예뻤던 아이들, 서로의 경험과 성장을 있는 그대로 함께 나누었던 아이들이었다. 반 전체가 아닌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마음에 들어왔다.
‘그림 속 선생님의 따뜻한 시선을 느꼈으면 좋겠어. 힘들거나 자신이 혼란스러울 때, 작은 힘이 되었으면 해. 너희 모두 선생님의 시선처럼 소중한 존재라는 걸 잊지 마.’

*학생들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정우정 선생님은 행복한 교실을 가꾸기 위해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사랑을 심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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