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대구에서 만난 주인공은 대구광역시교육청 관계회복지원단의 강호민 교사다. 그가 교육청에 들어온 것은 지난해였다. 관계회복지원단 활동을 위해 작년부터 교육청에서 2년째 파견 근무 중이다. 쓰인 단어 덕분에 어렴풋이 짐작은 가지만, 정확한 의미 파악이 어려운 ‘관계회복지원단’이란 무엇일까?
“관계회복지원단은 파견 교사와 학습연구년 교사를 포함한 현장 교사 3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폭력대화는 기본이고, 회복적 생활교육, 회복적 서클, 학급긍정훈육법, 교사역할훈련 등 관련 연수를 최소 200시간 이상 받은 분들로 꾸려졌습니다. 말 그대로 각 학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직접 나가 그 해결을 지원하고 돕는 조직입니다.”
관계회복지원단이 하는 일은 크게 4가지로 나누어진다. 회복적 서클, 교사돌봄 서클과 회복교실, 찾아가는 연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 또래 조정자 교육, 리더십 교육이다. 이 중 가장 핵심이 되는 회복적 서클은 다음과 같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폭력전담기구의 사안 처리 과정은 피해자의 회복과 같은 교육적 시도보다는 가해 학생 징계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그러다 보니 절차적 사안은 종결되었더라도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간의 관계개선은 되지 않은 채 감정적 악순환을 끊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예를 들어, 학교폭력 심의위원회 결과에 따라 서면사과와 사회봉사조치를 받은 가해 학생의 얘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억울하다고 합니다. 피해자라는 친구는 늘 웃고 다니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기만 고생하고 있다고 하는 거죠. 반면에 피해 학생은 보복을 당할까 봐 늘 두렵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회복적 서클’, 즉 일종의 중재 매뉴얼을 통해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가해자의 자발적 책임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돕고 있습니다.”
강호민 교사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그보다 더 빠르게 변하는 학생들이 사는 이 시대에 ‘응보적 정의(잘못된 행동이 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부여하는 것)’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전히 응보적 정의가 주류이고 이는 여러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피해자의 회복보다는 가해자의 처벌에 관심을 더 두게 되는 것, 당사자는 외면되고 제3자에 의해 주도되는 것, 변호사 선임 등으로 고비용이 들어가며 공동체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되는 것 등이 모두 포함되지요.”
‘회복적 서클’은 국내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다. 1990년대 브라질에서 비폭력대화(NVC) 국제인증 지도자인 도미닉 바터(Dominic Barter)에 의해 만들어졌다. 바터는 회복적 서클을 브라질 빈민가의 마약갱 청소년들과의 대화에 적용해서 당사자들 간 만족스러운 동의를 통해 갈등과 폭력 사례 400건 중 93%를 해결했고, 2010년 영국의 사회적 혁신 정책연구소인 NESTA의 「근본적 효율성(Radical Efficiency」 보고서에서는 전 세계 가장 중요한 100개 프로그램(교육·과학·기술·예술 분야) 중 가장 우수한 10개 프로그램 중 하나로 회복적 서클을 선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회복적 서클은 현장에서 어떻게 진행될까? 먼저 학교 요청으로 관계회복지원단 교사들이 양측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각각 따로 만나서 면담을 한다. 이것을 ‘사전 서클’이라고 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이 본인들에게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상대측을 만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과정이다.
그 뒤 당사자 학생과 담임선생님, 그리고 서클 진행자가 모여서 ‘본 서클’을 진행한다. 본 서클에서는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자신의 감정’과 ‘스스로에게 중요했던 욕구’에 대해 경청하는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이때 상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은 상대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대로 표현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서로가 할 수 있는 약속’을 정한다. 회복적 서클의 마지막 단계는 ‘사후 서클’인데, 본 서클 이후 3~4주 뒤에 서로에게 했던 이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고 축하하는 자리다.
“물론 100% 성공하지는 못해요. 도미닉 바터만큼은 어렵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략 80% 정도는 서로 잘 연결되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더라고요.”
이를 통해 성과를 거둔 사례는 상당히 놀랍다. 중학교 여학생 8명이 얽힌 학교폭력 사건이 학부모 갈등으로 번져 고소로 확산된 상황을 원만히 해결하거나,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의 교권 침해에 교사가 회복적 서클을 요청해 결국 서로가 이해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사례들이 그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에는 회복적 서클(25건, 49회), 위기학급 지원 회복교실 프로그램(24학급, 39회), 교사돌봄서클(17회), 찾아가는 연수(72회), 또래중재교육(5회) 등 교사 및 학생 2,456명을 대상으로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교육계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강호민 교사는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된 지 올해로 22년 차지만 담임으로서 자신의 반 학생들의 갈등에 접근하는 것과 달리 관계회복지원단으로 처음 만나는 학생이나 학부모, 교사 사이의 갈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진행교사로서 늘 긴장된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섭니다. 하지만 ‘갈등을 꼭 해결해야지’라는 부담을 가지면 잘 안 되고, ‘이 학생들을 연결하는 데 의미를 두자’고 마음먹으면 의외의 결과가 나왔어요. 회복적 생활교육에서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전환시켜서 꽃피우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꼭 맞아떨어진 경우를 많이 만났습니다.”
강호민 교사는 이번 인터뷰가 자신보다는 회복적 생활교육과 관계회복지원단 활동에 초점을 맞춰주길 바랐다. 사람간의 관계가 개선되고, 치유되며, 갈등이 해결됨으로써 삶 자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이 활동들이 더욱 널리 알려지고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인권이 신장되는 사회로 변화됨에 따라 학생 간, 교사와 학생 간 갈등과 불협화음으로 위기학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선생님과 작은 서클을 만들어 사연을 충분히 들으며 함께 공감한 뒤, 정직하고 열린 질문을 통해 스스로가 답을 찾아가는 교사돌봄 서클과 회복교실 역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그에게는 꿈이 있다. 회복중심생활교육연구회의 출발을 기반으로 교육청에 관계회복지원단이 만들어진 것처럼, 향후 회복중심생활교육 지원센터가 만들어져 보다 다양하게 회복적 생활교육이 이루어지고, 회복중심생활교육에 기반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5년 전 회복적 생활교육을 만나면서 부조리한 제도 개혁에 관심이 많았던 제 삶의 철학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유연해졌고 지도나 지시가 아닌, 열린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갖고 있는 내면의 빛, 내면의 지혜를 스스로 찾게 했어요. 회복적 생활교육을 만난 게 제게는 큰 행운이자, 운명인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존중과 공감, 평화와 인권, 공동체성과 관계 맺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첨단산업 시대에 더욱 필요한 인성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는 이 프로그램의 운영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행자의 자기돌봄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바쁘고, 안 좋은 일이 있거나 몸 상태가 별로면 참가자들이 바로 느낀다는 것이다. 편견 없이 평정심과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강호민 교사에게 회복적 서클은 자신에게서 출발해 교육현장 전체에 이로운 열매를 맺게 하는 아름다운 과정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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