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 교수에게 공부는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가는 생각의 타성을 깨부수는 망치다. 생각의 한계를 온몸으로 체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감 능력이 생기고,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솟아난다. 이렇게 공부하다 보면 공부를 시작하기 이전의 상태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유영만 교수는 “공부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그 자신이 공부하며 깨달은 결과다. 흔히 ‘대학교수’라고 하면 학창 시절부터 학업에 능통해 학문의 외길만을 걸어온 사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는 여러 길을 거친 뒤 캠퍼스에 자리 잡았다. 고등학교 때는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했고, 졸업 직후에는 용접공으로 일하기도 했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미국 유학을 다녀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인력 개발 업무도 맡았다. 하지만 인간을 자원으로 취급하는 교육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의 중요성이 희석되지는 않았다. 교육을 매개로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공부의 영역이 계속해서 넓어졌다.
실제로 그의 연구실에는 전공과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의 책이 가득 쌓여 있다. 1995년부터 25년간 출간한 90여 권의 저서는 그동안 그가 꾸준히 공부해온 결과다. 지금도 책을 읽을 때면 인상적인 구절에 밑줄을 치고 기억에 남는 페이지마다 견출지를 붙인다. 꼼꼼하게 정독한 후에는 밑줄 친 부분을 독서 노트에 기록한다. 그렇게 습득한 내용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한두 문장은 그의 뇌리에 강하게 새겨진다.
한때는 그도 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다. 하지만 수험서를 파고드는 사법고시 준비는 그에게 맞지 않았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하는 노동이 아닌, 스스로 좋아서 하는 진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방황하던 시기에 만난 책은 그에게 진정한 공부의 즐거움을 알려주었다.
“제가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잖아요. 책은 간접체험의 보고입니다. 책 한 권을 읽으면 그 속에 담긴 경험이 제 몸을 관통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남은 흔적대로 현장에 가서 실천해보는 거죠. 삶은 그렇게 변화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저서 가운데 「공부는 망치다」는 그가 직접 공부하며 깨달은 바를 정리한 책이다. 인간의 두뇌를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도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공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공부하는 도구와 방법이 달라질 뿐이다. 유영만 교수가 “공부의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저도 대학에 몸담고 있지만, 모든 아이가 공부 선수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마다 다른 강점을 고려하지 않고, 같은 기준으로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위험하죠. 오리와 참새, 토끼를 모아 놓고 수영 실력으로만 평가하면 수영을 잘하는 오리만 신나지 토끼나 참새는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잖아요. 매뉴얼대로 하면 명문대에 갈 수도 있겠지만,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죠.”
「논어」에서는 공부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이다. 위기지학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공부이고, 위인지학은 남을 위해 하는 공부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는 목표를 달성한 후 공허함을 남기지만, 자발적으로 빠져들어 즐겁게 하는 공부는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나다움을 찾게 한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는 정해진 계획과 목표대로 살기 어렵다. 지금의 그를 만든 것도 우연이었다. 계획과 목표를 이루려고 할 때는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색다른 환경에 스스로 뛰어들고 부딪히며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는 ‘인생 최고의 감독은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들이대고 저지르고 안 되면 다시 하는 일을 반복해야죠. 돼지들은 목뼈의 구조상 고개를 잘 들지 못하기 때문에 자의로 하늘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넘어지면 그때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죠.
사람들도 어제와 다른 도전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가끔 넘어질 때도 있어야죠. 대학에서도 4년 동안 쳇바퀴 돌 듯이 앞만 보고 달리면 바뀌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그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교육 대신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교육을 하고 있다.
“제가 맡은 수업의 많은 부분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학생들입니다. 기말고사 문제를 직접 내게 하고, 채점도 맡깁니다.
방법을 가르치면 모범생이 되지만, 방향을 가리키면 모험생이 됩니다. 아이들에게 바로 써먹을 방법을 알려주기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방향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유영만 교수는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역시 공부를 하면서 글 쓰는 재능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고 싶어서 책을 들고, 즐거워서 공부하니 인생이 행복해졌다. 더불어 몸으로 익히는 공부도 강조한다. 자연과 벗 삼아 뛰어노는 과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배울 점이 있다. 그래서 그는 마라톤을 하고 산에 오르며 신체의 근력을 키운다.
“요즘은 10대, 20대 중에서도 저보다 몸이 늙은 아이들이 많아요. 지덕체(智德體) 가운데 ‘지’만 강조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이를 뒤집어서 체험과 공감, 지혜를 아우르는 ‘체인지(體仁智)’를 말하고 싶어요. 창의성은 남다른 체험과 공감 그리고 실천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채널 콘셉트는 ‘죽은 지식을 깨우다’이다. 유튜브를 통해 ‘원래 그렇다’는 상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유영만 교수. 많은 것을 알아도 여전히 배울 거리는 남아 있다. 그렇게 그의 공부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