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고민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실천은 더더욱 어렵다. 서강고등학교의 봉병탁 교감은 30년이 넘는 교사생활 동안 환경과 생태를 지키기 위해 한결같은 행동력을 보였다. 교내 과학실, 광주 도심에 자리 잡은 무등산, 광주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광주천까지 그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학생들과 사방을 누비며 더 나은 자연환경을 위해 머리를 모았고, 뜨거워지는 지구의 시간을 몇 분이라도 늦추고자 애썼다.
따지고 보면, 자연과 환경에 대한 봉병탁 교감의 관심은 생물교육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나 다름없다. 대학을 다니던 내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공장직원들을 위해 야학봉사를 꾸준히 했던 것도 타인에 대한 애정과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전공과 맞물려 있는 환경과 관련된 분야로 관심을 확장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사립공채 시험을 통해 장성고등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고, 다시 서강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긴 그가 생물교사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서강환경과학동아리(Mars)’를 만든 것이었다. 과학동아리가 아닌, 환경과학동아리라는 이름이 새롭다고 했더니 환경은 생물·과학과 모두 연계되어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지도교사로서 이끈 동아리의 활약은 눈부셨다. 교내 실험실에서만 하는 활동에서 더 나아가, 보다 거시적인 활동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봉병탁 교감이 특히 주목한 것은 ‘일회용품 줄이기’에 대한 고민이었다. 플라스틱 대국,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 세계 2위라는 오명 속에서 ‘환경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플라스틱 사용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학생들과 머리를 맞댔다.
“그래서 나온 게 학생들과 함께 제작한 에코백(시장바구니)입니다. 일회용 비닐 사용을 줄이고자 매년 500개씩 만들어서 학생들이 직접 전통시장 입구에서 장을 보러 나온 분들한테 나눠줬지요. 반응이요? 당연히 뜨거웠죠. 손님들은 물론 상인들도 좋아했고,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름철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에너지 다이어트 부채를 제작했고, 대기전력 스티커를 만들어 교내 모든 전자기기에 부착함으로써 대기전력이 얼마나 소비되는지를 육안으로 보게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사용하지 않을 때 전자 기기의 콘센트를 뽑아놓는 운동으로도 이어졌다. 이야기 도중에 봉병탁 교감이 탁자 위에 놓인 머그컵을 흔들었다. 가느다란 나무막대들 여러 개가 잘그락잘그락 소리를 낸다. “이것은 학생들과 함께 만든 억새 나무젓가락입니다. 나무젓가락을 만들기 위해 많은 나무를 베잖아요. 그로 인한 사막화 문제도 심각하고요. 야생에서 자라는 억새로 나무젓가락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연구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죠.”
길에서 자란 억새를 베어서 중탕으로 삶아 소독하고, 다시 햇빛에 널어 말린 뒤 봉투까지 만들어서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나눠줬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해왔던 일회용 나무젓가락 사용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게 한 이 실험은 그 자체로도 매우 의미가 컸다.
봉병탁 교감의 이러한 활발한 활동은 수많은 이력을 만들어냈다. 2013년 영산강유역환경청 ‘청소년환경대상’ 단체상, 2014년 국회포럼 ‘대한민국 녹색기후상’ 단체상, 2015년 ‘광주광역시 청소년자원봉사대회’ 단체상, 2016년 ‘광주 광역시 청소년자원봉사대회’ 여성가족부장관상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숱한 성과를 냈다. 이는 동아리 학생들 에게 성취감을 준 것은 물론, 환경보호와 생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끌어냈고, 지도교사인 봉병탁 교감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도 됐다.
한편, 그의 환경생태 활동은 교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01년에 (사)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부설 ‘무등산사랑청소년환경학교’를 세워 초·중·고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에게까지 꾸준히 환경생태 교육을 해오고 있다.
“20년 전 TV에서 환경대학에 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생태교육과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저도 환경대학에 입학했어요. 거기서 교육을 받으면서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청소년 환경교육도 한번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된 거죠.”
광주지역 교사 10여 명이 모여 운영비를 모으고, 시간을 따로 내서 주말이면 학생, 학부모와 함께 무등산을 누볐다. 지도를 읽기 위한 독도법 강의, 계곡의 수생생물 관찰 활동, 새를 관찰하는 탐조 활동, 폐 대나무통을 이용한 다양한 물건 만들기, 나뭇잎으로 만드는 배, 청진기로 나무 소리 듣기, 숲에서 하는 스트레칭, 나무에 다가가 속삭이기, 환경 보존과 관련된 3행시 짓기 등 여러 가지 자연사랑 환경 프로그램이 이 안에서 진행된다.
“환경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두 가지 유형이에요. 환경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오는 학생들과 반강제로 오는 학생들이 있지요. 반강제로 오는 학생들은 처음에는 적응을 못해요. 그런데 무등산을 같이 오르내리면서 교사, 친구들, 학부모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면 조금씩 집중력이 생기고 변화하더라고요. 교내 동아리 활동, 환경학교 활동까지 열심히 하던 한 학생이 진로를 아예 환경학과로 바꿔서 대학에 진학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환경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성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봉병탁 교감은 훼손되는 우리 자연 속에 미약한 힘이라도 더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의 미래는 없다고 여긴다.
“환경생태 관련 강의를 할 때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지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가 바로 그것이죠. 지금 당장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결국 이는 내게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생활 속에서 아주 작은 것부터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그가 초등학생들을 위한 환경교육에 발 벗고 나서면서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을 위해 환경과학봉사를 6년간 꾸준히 해왔던 이유도 어릴 때부터 환경보호에 대한 의식을 자연스럽게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요즘 ‘지속가능발전교육(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ESD)’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단편적으로 환경만 보호하는 게 아니라, 환경과 사회를 함께 다루어 생활 속에서 사회문제를 생각하고, 그 안에서 마을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며 환경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발전하는 이 융합교육이 건강한 미래를 앞당기리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제게 환경보호, 생태교육은 늘 즐거운 일입니다. 산에 가면 행복해지고, 학생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건 늘 제 나이를 잊게 만들어요. 자연과 환경에 무심했던 학생들의 생각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은 가장 큰 보람입니다. 퇴직을 한 이후에도 제게 환경보호와 생태교육은 결코 끝나지 않을 사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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