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 작가의 2015년 산문집 「말하다」에는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 친구를 덜 만났으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어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고,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등을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학창 시절 생활 기록부에 ‘교우관계 원만’이라 표기되기를 원했고,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 했고, ‘둥근 사람’으로 보이기를 바랐다. 이는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가.
언택트 시대를 맞이하면서 최소한의 만남을 갖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언택트만을 강제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맥 다이어트도 강제로 경험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당장 참석하기 싫은 회식에 참여하지 않아도 됐고,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의 경우에는 보여주기식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됐다. 오직 성과로만 평가받게 되니 사내 정치로 신경 쓸 에너지를 업무에 더 쏟을 수 있게 됐다.
‘단합’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참여해야 했던 회식 자리에서 에너지가 소모되었던 기억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회식 문화가 전혀 없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인 아마존은 일반적인 조직에서 외치는 ‘단합’, ‘사내정치’, ‘네트워킹’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시간 낭비일지 모르는, 또는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을 맞추느라 쏟게 되는 나의 에너지를 조금 더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SNS를 네트워킹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가 많아졌다. 어릴 적 헤어졌던 친구를 SNS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이도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자랑거리가 될 만한 사람들과 찍은 사진을 SNS에 게시했고, 경쟁 삼아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올리곤 했다. SNS의 친구가 몇 명인가 경쟁거리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돈벌이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SNS 속 친구에는 함정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스스로 진실한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판단력을 키워야 한다.
SNS의 친구 추천을 잘 살펴보자. 비슷한 직업·비슷한 연령·비슷한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친구가 될 수 있게 알고리즘이 추천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비슷한 직업을 갖고, 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자동으로 친구 추천이 되는 식이다. 그런데 이 구조는 우리의 에너지를 더욱 빼앗고 있다. 내가 그에 못 미치면 비교되어 상대적으로 더욱 위축되게 느껴지니 말이다.
또, SNS 속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 행복하다. 우리가 행복한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혹은 기념하거나 자랑하기 위해 SNS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매일 그런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보며 나의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의 기념할 만한 행복한 일상과 나의 평범한 일상을 비교하며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최근에 접한 책의 제목이다. 관계에 지친 모든 이들이 위안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처럼, 죽고 난 뒤까지 체면과 인간관계를 놓치지 못하는 우리네 삶은 어떠한가. 인맥 유지를 위해 거절하지 못하고 수많은 결혼식, 장례식, 돌잔치 등의 행사에 동원되어 그저 참여에만 의미를 둔 채 얼굴 도장만, 혹은 봉투만 두고 나온 적은 없는지 자문해보자. 그것이 진정 의미가 있을까?
언택트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전보다는 상대적으로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다. 이런 때에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계획적으로 가져보는 것을 권해본다. 또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 더 의미 있는 일상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책을 읽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등 자기계발에 힘쓸 수도 있을 것이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거절해도 아무도 나를 욕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꾸며낸 인생을 살기보다는 진짜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