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전통적으로 4년간의 초등학교 교육을 제외하고는 중등교육 시스템부터 서로 다른 세 가지 진로 방향을 지닌 복선제 학제를 운영한다. 대학 진학을 계획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다니는 ‘김나지움(Gymnasium)’, 전문기능직에 종사할 학생들이 진학하는 ‘레알슐레(Realschule)’, 기능직에 종사할 학생들이 진학하는 ‘하우프트슐레(Hauptschule)’가 있다. 학생의 능력과 진로에 따른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는 복선제 학제라는 외양을 지니지만, 알고 보면 1류·2류·3류 학교 체제로 철저히 서열식인 셈이다.
1970년대, 독일에서는 서열식 학교 제도를 극복하고, 공정한 교육 시스템을 제공하고자 평준화 학교 정책을 도입했고 이를 통해 괴팅겐 통합학교가 설립됐다. 그러나 독일은 평준화 학교 정책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통합학교 제도가 도입된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학교 수 기준으로 약 5%, 학생 수 기준으로는 약 9%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괴팅겐 통합학교는 독일에서 매우 보기 드문 평준화 교육의 성공 사례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학제가 깊이 뿌리 내린 독일에서 괴팅겐 통합학교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경쟁 대신 협력을, 분화 대신 통합을, 주입식 전달교육 대신에 대화와 토론을 통한 상호소통의 교육을 강조한다. 괴팅겐 통합학교는 1류 학교인 김나지움 진학을 추천받은 학생, 2류 학교인 레알슐레 진학을 추천 받은 학생, 3류 학교인 하우프트슐레 진학을 추천받은 학생들을 고루 섞어 추첨·선발한다. 그런 다음 이들을 섞어 한 반에 배치한다.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능력과 진로를 가진 학생들로 모둠을 편성하여 함께 협력하고 대화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 준다.
둘째, 능력과 진로가 각기 다른 학생들로 편성된 모둠 즉 ‘책상 그룹’을 편성하여 운영한다. 책상그룹이란 6명의 학생을 한 모둠으로 편성한 그룹을 말한다. 한번 편성된 책상그룹은 1년 동안 지속되는데 대부분의 수업은 책상그룹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각 책상그룹은 김나지움 진학 추천 학생 3명, 레알슐레 진학 추천 학생 2명, 하우프트슐레 진학 추천 학생 1명으로 구성된다. 이처럼 능력과 진로가 다양한 학생들로 구성된 책상그룹을 통해 학생들은 1년 동안 함께 공부하면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운다. 5학년에서 10학년에 이르는 중학교 6년 동안 같은 반을 유지하되, 매년 다른 학생들로 책상그룹이 편성되기 때문에 각 반 학생들은 같은 반의 다른 모든 학생들과 최소한 한번은 같은 책상그룹에 들어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셋째, 학생·학부모·교사가 책상그룹 저녁모임에 의무적으로 참석한다. 책상그룹은 1년에 4차례, 즉 3개월에 한 번씩 저녁 시간(6시 이후)에 학생의 집에서 함께 모인다. 30명의 학생을 담당하는 담임과 부담임 2명, 책상그룹 학생 6명, 학부모 6~12명이 함께 모여 저녁식사 후 학생들과 수업, 책상그룹 활동, 친구관계 등 학교생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이후에는 학부모와 담임이 학생의 학교와 집에서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교사들은 주 24시간 수업을 담당하면서도 학생들의 각종 클럽활동을 지도할 뿐만 아니라 책상그룹 저녁모임도 참석하지만, 교사들에게 별도의 수당이나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열정과 헌신이 넘친다.
넷째, 교사 중심이 아닌 청소년 중심의 교육을 실행한다. 학생을 교사에게 배워야 하는 입장보다는 성장하고 있는 인격적 주체로 본다. 그래서 괴팅겐 통합학교에서는 교장·교사·학생 모두 존댓말로 성을 부르는 대신, 서로 친근하게 이름을 부른다. 교육활동도 독일어·수학·과학 등 인지적 교과만이 아니라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인성, 감수성, 신체 발달까지 고려하여 체육·음악·미술에 연극·사진·요리·각종 기술 등 다양한 활동까지 포괄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학생들은 서로가 탁월한 학생임을 경험하면서 배우고, 서로를 존중하게 된다. 이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교육이 아닌, 자기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자신만의 특기를 발견하는 기회를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