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은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도시다. 어느 거리, 어느 골목을 걷더라도 잔잔한 예술의 정취를 만날 수 있는 까닭이다. 거리 곳곳에서는 지금도 그 옛날 화려했던 ‘대제국의 꿈’을 엿볼 수 있고, 왕궁교회에서는 ‘빈 소년합창단’이 매주 일요일 미사 때마다 성가곡을 부르고 있다.
호주 원주민들이 펼치는 민속공연을 통해서는 그들의 풍습과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나무로 만든 전통관악기인 디저리두 연주, 원주민들이 펼치는 댄스, 재치 있는 입담 등이 이어진다. 쉽고 재미있게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를 몰라도 즐겁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빈 시내 한가운데에는 이 도시의 상징이며,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그 무엇보다도 아끼는 ‘성 슈테판 성당’(사진 1)이 우뚝 솟아 있다. 성 슈테판 성당은 상징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건축양식이 섞여 있는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성당의 안과 밖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서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과 같은 건축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빈 시청사(사진 2)는 건물 그 자체가 훌륭한 관광명소다. 1883년에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빈 시청사는 뾰족한 첨탑이 무척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빈 시청사 광장에서는 수시로 큰 음악회가 열린다. 특히 여름에 열리는 ‘뮤직 필름 페스티벌’이 유명하다. 겨울에는 우리의 서울광장처럼 스케이트장이 설치되고, 크리스마스 마켓도 열린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광장 주변에 다양한 형태의 크리스마스트리(사진 3)들이 등장해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벨베데레 궁전과 슈타트 파크 역시 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전망이 좋은 곳에 세워져 있는 벨베데레 궁전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암살을 당했던 비운의 황태자, 페르디나트가 살았던 곳이다. 빈 시민들의 아늑한 쉼터인 슈타트 파크에서는 황금색 옷을 입은 요한 스트라우스의 동상(사진 4)을 만날 수 있다.
빈은 해마다 1월 1일에 열리는 ‘신년 음악회’로도 유명하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는 세계 각국으로 중계되어 새해 아침을 경쾌한 비엔나 왈츠로 축복한다. 이 음악회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다. 이 곡은 요한 스트라우스가 궁정무도회의 지휘자로 있을 무렵인 1867년에 만든 곡이다. 눈을 감고 들으면 유유히 흐르는 푸른 강물이 연상될 정도로 아름다운 이 곡은 ‘빈 소년합창단’의 대표적인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다. 빈 시내 외곽에는 ‘빈 중앙묘지’가 있다. 오스트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많이 묻혀 있다고 해서 ‘음악가 묘지’ 라고 불리는 곳이다. 음악가들이 묻혀 있는 ‘음악가 지역’에는 베토벤, 브람스, 슈베르트의 묘비와 모차르트의 기념비 등이 한데 모여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나란히 세워져 있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비다. 이처럼 두 음악가의 묘비가 서로 사이좋게 세워지게 된 것은 “생전에 가장 존경하던 베토벤 옆에다 나를 묻어 달라”라는 유언을 남긴 슈베르트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빈을 찾는 여행자들의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정통 비엔나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엔나커피를 맛볼 수 있는 커피 하우스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는 휴식공간이다. 빈 시내에 있는 ‘카페 사카’와 ‘카페 센트럴’(사진 5)을 비롯한 많은 커피 하우스에서 비엔나커피를 마실 수 있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로 유명한 도시다. 구시가지의 게트라이데 거리,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 오래된 성당과 고성 등이 있지만 잘츠부르크를 찾아온 여행자들 대부분은 가장 먼저 모차르트와 ‘사운드 오브 뮤직’을 떠올린다. 이처럼 ‘모차르트’와 ‘사운드 오브 뮤직’은 잘츠부르크의 대명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잘츠부르크의 상징적인 명소인 모차르트 생가는 늘 많은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모차르트 생가는 현재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1층부터 4층까지 모차르트가 사용하던 악보나 악기 외에도 그의 가족과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집에서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 태어나 열일곱 살 되던 해까지 살았다. 생가 근처에는 모차르트 광장이 있고, 광장 한가운데 모차르트의 동상(사진 6)이 세워져 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등장하는 주요 명소들로는 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던 미라벨 정원과 모차르트 다리, 큰딸 리즐이 남자친구와 춤을 추던 헬브룬 궁전, 마리아와 트랩 대령이 결혼식을 올린 잘츠캄머구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잘츠부르크 시내뿐만 아니라 근교의 작은 마을까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등장하고 있다.
잘츠부르크에 가서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인형극을 보는 것이다. 미라벨 정원 근처에 인형극을 공연하는 ‘마리오네트 극장(사진 7)’이 있다. 예약을 해야만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공연장이다. 인형극이 끝나갈 무렵에는 인형들을 조종하는 연기자들의 모습도 잠깐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인형극을 본 사람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인형극의 주요 레퍼토리로는 ‘사운드 오브 뮤직’,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등이 있다.
잘츠부르크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잘자흐 강(사진 8)은 잘츠부르크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구분하고 있다. 잘츠부르크를 찾아온 여행자들은 아무래도 구시가지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모차르트 생가, 게트라이데 거리, 대성당 등을 비롯한 주요 관광명소들이 이곳 구시가지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는 잘츠부르크 구시가지의 중심지다. 좁고 오래된 골목길에는 ‘모차르트 초콜릿’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굳이 물건을 사지 않아도 이 골목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츠부르크의 고풍스러운 정취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유럽의 골목길은 간판 하나에도 독특한 개성이 묻어있다. 게트라이데 거리에 있는 간판들 역시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일 정도다. 예를 들면 안경가게는 간판의 모양이 안경처럼 생겼고, 맥줏집의 간판은 맥주컵처럼 생겼다. 간판을 이런 식으로 만든 것은 예전에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잘츠부르크 시내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사진 9)이 열린다. 하지만 유럽의 다른 도시들처럼 그다지 규모는 크지 않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는 사람들도 관광객들보다는 현지 주민들이 더 많다. 잘츠부르크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주로 현관 앞과 거실을 장식할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많이 팔린다.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주의 그라츠는 무척 고풍스런 도시다. 시내 중심가(사진 10)인 중앙광장 한가운데로는 여행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느린 트램이 운행되고 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도심 속 공원(사진 11)을 걷다 보면 금세 동심 속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그리츠는 빈이나 잘츠부르크처럼 많이 알려진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읽은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곳이다. 소설 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우여곡절 속에 미래를 꿈꾸던 도시로 선택한 곳이 바로 그라츠이기 때문이다.
란트하우스는 그라츠 시민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축물이다. 이른바 ‘르네상스 양식의 보석’이라 일컬어지는 이 건축물은 역사적으로 또는 예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슈타이어마르크의 역사가 대부분 이곳에서 전개되었고, 르네상스 건축의 아름다움이 건물 곳곳에 고스란히 배어있기 때문이다.
란트하우스 옆에는 무기박물관인 란데스쪼이그하우스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무기들을 소장하고 있는 명소 가운데 하나다. 주로 중세 시대 때 기사들이 사용했던 갑옷, 투구, 방패, 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무기 대부분은 17세기 무렵에 만들어졌다.
그라츠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색적인 명소는 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인 슈타트화르 키르헤다. 이 성당을 찾아온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가장 먼저 스테인드글라스로 눈길을 돌린다. 그리고는 그 속에서 무언가 열심히 찾는다. 바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얼굴이다. 예수를 괴롭히는 구경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그 속에 숨어 있는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발견할 수 있다.
슈타트화르 키르헤의 독특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손된 창문을 보수할 때 그려진 것이다. 처음에는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우연히 한 저널리스트의 눈에 띄게 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왜 유서 깊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얼굴을 그려 넣었을까? 아마도 비극적인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라츠는 유난히 재난과 전쟁을 많이 겪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1480년에 일어난 ‘3대 재난’은 그라츠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한 해 동안 끊이지 않고 일어난 메뚜기 떼의 공격, 터키의 공습, 페스트의 창궐 등으로 그라츠 시민의 70% 이상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재난은 200년 후인 1680년에도 일어나 또다시 그라츠 시민 4분의 1을 잃었다.
1809년에는 도시 전체가 프랑스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채 공격을 받았다. 그 당시 그라츠 시민들은 도시의 상징물인 시계탑(사진 12)을 보호하기 위해 보상금을 자발적으로 모금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에는 공습으로 인해 도시의 4분의 1이 파괴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시계탑이 무사했던 것에 대해 그라츠 시민들은 지금도 무척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일명 ‘그라츠의 심장’이라 불리는 쉴로스베르그 언덕은 숲이 우거진 훌륭한 휴식공간이다. 그라츠의 명물인 시계탑은 1560년 이곳 쉴로스베르그 언덕에 세워졌다. 그런데 시계판의 바늘이 조금 특이하다. 즉 일반 시계와는 반대로 큰 바늘이 시간을 가리키고, 작은 바늘이 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언덕 아래에서 시계탑을 보더라도 대략적인 시간을 알 수 있도록 배려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