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애슬론은 ‘둘(2)’을 뜻하는 ‘바이(bi–)’와 ‘운동 경기’를 뜻하는 ‘애슬론(athlon)’의 합성어로, 크로스컨트리(스키를 신고 폴을 쥔 채 숲, 들판, 언덕 등을 달리는 운동)와 사격 두 가지 운동을 결합한 경기다.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종주국인 유럽 국가들에서는 인기 스포츠다. 대회에서는 스키를 탄 시간과 표적 적중률을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사격은 서서 쏘는 입사와 엎드려 쏘는 복사가 번갈아 시행된다. 표적을 맞히지 못하면, 맞히지 못한 표적 1개당 1분을 전체 주행 시간에 더하거나, 일정 거리를 더 달려야 한다.
10㎞, 20㎞ 장거리는 맨땅에서도 달리기 힘들다. 그런데 스키를 타고 눈 쌓인 산을 전속력으로 달려야 한다. 총을 메고 달리다가 중간중간 사격도 해야 한다. 고도의 심폐지구력과 민첩성, 집중력을 필요로 하므로 전문가들은 바이애슬론 을 동계스포츠 종목 중 난이도 1위 종목으로 꼽는다. 철인 3종 경기라 불리는 트라이애슬론 출전 선수들도 고개를 저을 정도라고.
그 힘든 경기에 매년 빼놓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충북공업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하는 박현수 교사다. 그는 2011년부터 매년 전국 대회 바이애슬론 종목에 빠짐없이 출전하고 있다.
“10년 전 충북 바이애슬론 경기 연맹 간부였던 선생님과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어요. 체육교사 중에는 지역 연맹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꽤 많거든요. 전국체육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선생님이 제게 ‘10km 구간 완주만 해도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이틀 연습하고 경기에 나갔죠.”
경기 결과는 참혹했다. 전국동계체육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평균 기록은 30분 전후, 메달권 선수들은 25분 전후다. 그러나 박현수 교사는 1시간 30분 만에 결승점에 들어왔다. 출발한 지 1시간쯤 되자 주변에서 그만두라 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결승점까지 달렸다. 그리고 약속대로 완주했다.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박현수 교사는 소원으로 ‘바이애슬론 선수에 대한 지원’을 말했고, 그 후로 바이애슬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시작은 무모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무모하다. 50세의 나이, 체력적으로 분명 부담이 있다. 교사로 일하면서 연습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경기 연습을 하고 고가의 장비를 관리하려면 큰 비용이 든다. 연맹의 도움이 있긴 하지만, 사비로 충당해야 할 부분도 많다. 사계절 눈 쌓인 산은 고사하고 변변한 트랙도 없으니 연습도 쉽지 않다. 나이, 직업, 경제력, 훈련 환경, 어딜 봐도 박현수 교사에게 바이애슬론은 여전히 무리다. 그런데 경기에 나간다고 해도, 부와 인기를 얻을 수도 없다. 첫 출전에 비해 실력이 많이 향상됐지만, 여전히 30분대 진입조차 어렵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무의미하지 않다. 박현수 교사가 대회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청북도에 도움이 된다. 전국체육대회에서 시도별 순위는 메달 순위가 아닌 메달 득점과 종합 득점에 따라 결정된다. 종합 득점은 부문(고등·대학·일반)별 배점과 단체 종목 가산점 등을 반영해 산정한다.
“2016년에는 개인 경기와 계주 경기에 모두 참여해 12점을 얻었어요. 지금껏 얻은 점수 중 가장 큰 점수죠. 남들이 보기에는 작은 점수 같지만, 불과 1~2점으로도 순위가 바뀔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 노력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아요.”
그가 선수 생활을 시작한 것과 동시에 아내도 조력자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아내 박순희 씨는 평소 박현수 교사와 스키, 스쿠버다이빙, 요트, 카약 등 운동을 함께한다. 바이애슬론도 마찬가지다. 경기를 직접 뛰는 것은 아니지만, 충북 바이애슬론 경기 연맹에 입단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온 가족이 열성인 이유는 한 가지, 바이애슬론의 매력 때문이다.
“스키를 타고 오르막길을 오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을 때, 내리막길이 보여요. 내리막길에서 얻는 달콤함에 취하기도 잠시, 더 높은 오르막길이 나와요. 그래서 경기 중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이겨낸 후 결승점에 들어오면, 쾌감과 만족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요. 꼭 우리 인생을 닮았죠.”
메달도, 프로 선수처럼 좋은 성적을 얻어내는 것도 그의 목표가 아니다. 매년 이 멋진 경기를 해내는 것, 그리고 한 명의 선수로서 자신의 기록을 깨나가는 것이 목표다. 충청북도에 훌륭한 바이애슬론 선수가 나올 때까지, 체력이 닿는 한 박현수 교사는 계속 도전해나갈 계획이다.
돌아보면 박현수 교사의 인생도 바이애슬론과 같았다. 대학 입시 실패 후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던 그는 우연히 학교 관리원으로 취직하게 됐다. 전보다 안정적인 직업이기도 했지만,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만나면 밝고 맑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의 삶이 부러웠다.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불현듯 체육 교사가 되고 싶었다. 이십 대 후반의 나이였고, 대학에 합격한다 해도 집안 형편이 문제였다. 그래도 가야 할 곳이 있으니 멈출 수 없었다.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보다 늦게, 스물아홉의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후에도 매일 새벽 신문을 돌리고 방학 때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교사라는 꿈 하나만을 보며 오르막길을 달렸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임용고시에 합격하면서 소원을 이뤘다.
교사가 되었다고 오르막길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니 여전히 올라야할 산도, 언덕도 있다. 바이애슬론 선수로서 목표도 여전히 남아 있다. 가야할 곳에 맑고 밝은 아이들이 있다면, 그는 마다치 않고 달려 나갈 것이다.
“제 교육 철학은 전공인 ‘체육 교육’의 목표와도 같아요. 체육 교육은 ‘신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심동적(psychomotor)· 인지적(cognitive)·정의적(affective) 영역의 발달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저도 그래요. 체육을 통해서 학생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교육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사제동행 축구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든 반 학생과 교사가 함께 축구 경기를 하는 것이다. 박현수 교사는 학교를 옮길 때마다 이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사제동행 축구를 통해 그는 교사와 학생이 벽을 허물고, 마음을 열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축구 경기를 하고 나면 학생들의 인사 소리가 달라진다고. 박현수 교사는 “퇴임하는 날까지 학생들과 축구를 하려면, 체력관리를 잘해야 합니다”라며 웃는다. 교직 생활이라는 기나긴 레이스에는 깨야 할 기록도, 넘어야 할 결승선도 없다. 다만 어디에나 그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다. 누군가는 오르막길 위에서, 누군가는 꽃밭에서 그를 부를 것이다. 갈 곳이 어디든 거기에 학생들이 있기에, 박현수 교사는 오늘도 기꺼이 ‘철인’이 된다.
‘꿈 너머 꿈’ 코너는 새로운 꿈을 향해 쉼 없는 도전을 하며 많은 분들에게 꿈을 향한 원동력이 되어주시는 회원 여러분들의 신청을 기다립니다. 선생님이 아니어도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혹은 추천해 주셔도 좋습니다.
「The-K 매거진」이 지면에 담아, 많은 교직원분들과 공유하여 학교와 교실의 담장을 넘는 빛나는 꿈과 열정이 더 높은 곳에 닿을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