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달고 처음 교실 문을 열었던 30년 전 3월 2일, 구수진 교사에게 그날은 언제나 어제처럼 생생하다. 68명의 학생들이 성냥개비처럼 총총히 끼어 앉은 채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던 바로 그 순간 말이다.
사회부 기자를 꿈꾸다가 ‘직업은 교사가 최고’라는 할아버지의 엄명에 교사로 진로를 바꾸고 냇가의 조각배처럼 학교로 흘러든 구수진 교사는 그날을 두고 ‘나는 이 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다. 이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 아니다’라는 최초의 각성을 했던 때라고 기억했다.
그렇게 만난 학생들은 참 예뻤다. 학생들도 교사를 사랑했다. “교대 다닐 때 애매했던 지향점들이 교사로 첫해를 보내면서 명확해졌습니다. 저는 이유가 있어야 그곳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가 의미를 찾기도 전에 학생들이 제게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구수진 교사는 학생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학생들은 방과 후에도 옆구리에 끼고 앉아 숙제를 하게 하고, 예습을 하게 했다. 즐겁고 치열한, 보람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뛰었던 구수진 교사는 불현듯 의문에 사로잡혔다.
“짚어보니 제가 공부하던 내용하고 학생들이 배우는 게 다르지 않은 거예요. 분명히 세상은 달라졌는데 왜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을 가르치는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구수진 교사의 학습법은 그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미 교육 연극, 요리 등 다양한 활동을 학습에 접목해온 그였지만, 책에서 배운 것들이 학생들의 삶에 녹아 들어가지 못함을 깨닫고, 따로 노는 이 상황을 바꿔보자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를 들어 “우리 동네는 살기 좋을까?” “아마도요.” “어떤 면에서?” “음, 별일 없으니까요.” “그럼 살기 좋다는 건 뭘까?”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그럼 우리 동네 사람들은 먹을 걸 어디서 구할까?” 등의 식으로 말이다.
끝없는 질문과 빈약한 답변들은 결국 학생들을 동네로 나가게 했다. 우리 동네에 뭐가 있는지 골목길을 뒤져 찾고, 정육점 사장님을 찾아가 인터뷰했다. 학생들은 질문을 통해서 답을 구했고 그렇게 주어진 숙제는 학생들에게 능동적인 적극성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과정은 평가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학생들이 스스로 평가의 의미를 찾도록 쉼 없이 질문을 던졌고, 학생들은 그 안에서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도출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면 결과를 분석해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찾아냈다. 그렇게 자신이 해야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학생들은 해야할 게 별로 없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요청을 받은 친구들은 나서서 친구들을 가르쳤다. 나의 지식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쓰이기도 한다는, 이른바 구수진 교사의 교육 프로젝트 ‘Non Sibi’가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순간이다.
Non Sibi는 라틴어로, Not for one’s self(나만을 위해서가 아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구수진 교사가 진행하는 ‘주제 중심 프로젝트 기반 교육 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그의 교육 철학과 잇닿아 있는 주요한 가치다.
그는 학기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반 학생들을 ‘Hero’로 만든다. H(honesty, 정직), E(empathy, 공감), R(relationship, 관계), O(obligation, 책임)의 약자를 딴 Hero가 된 학생들은 Non Sibi를 통해 자신을 알기 위한 과정에 들어선다.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나는 어떤 학생인지 타인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이다. 이 수업은 학생들에게 매우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친구들이 해주는 조언은 어른들의 잔소리와는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을 만나고 자신을 움직이는 동기를 주체적으로 찾으면서 관계의 소중함을 깨달은 학생들은 ‘Non Sibi’ 정신을 자연스럽게 체화한다.
질문과 교육 연극, 책을 통해 상황을 만나고 공감하는 Non Sibi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구수진 교사는 기억에 남는 몇몇 학생들을 만났다. 예를 들어,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학생이 있었는데 한번은 교실에서 난리를 쳐서 결국 반 학생들이 회의를 열었다. 우리가 거부하면 저 친구는 어떻게 되는지, 고쳐질 수는 있는 건지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면서 울기도 하고, 고민하던 학생들은 결국 그 학생을 받아들였다. 이전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강제로 전학을 당하고 쫓겨났던 그 학생은 친구들이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를 굉장히 크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꾸준히 상담치료를 받으면서 교실을 뒤집는 행동을 더는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역사 뮤지컬에서 큰 역할을 맡았을 정도로 학생들과 잘 어울렸다.
“Non Sibi 프로젝트는 누군가를 버리면 이루어질 수 없는 프로젝트예요. 나만을 위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한다면서 누군가를 버릴 수는 없잖아요. 이 프로젝트 교육의 기반은 내 옆 사람을 배척하지 않는 데서 비롯돼요. 반 학생들의 관계가 매우 좋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지난 30년간 그가 이룬 성과는 무수히 많았다. 학생들과 함께 꾸준히 해온 오케스트라 봉사활동, 방학 때마다 개발도상국으로 나가 펼친 교육활동, Non Sibi 프로젝트를 배우고자 하는 후배교사들에 대한 지원까지.
“제가 낳은 자식은 어른이 돼도 제가 책임져요. 그런데 학교에서 만난 학생을 책임질 수 있는 순간은 지금밖에 없어요. 제가 뭔가를 잘못해서 학생들이 잘못된 길로 간다면 그걸 어떻게 감당해요. 결국 책임감과 두려움이 저를 이 자리까지 데려온 것 같습니다.”
구수진 교사는 내년 8월, 삶의 또 다른 변곡점을 맞이한다. 이곳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캄보디아로 가서 현지 학생들을 위한 교육자로 살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가족들의 전폭적인 응원과 지지 속에서 그는 가난했던 시절, 우리가 외부에서 받았던 도움을 돌려주는 유의미한 시간을 가질 것이다.
“학생들에게 변화의 중심이 자신임을 일깨워주는 가치를 보여주세요. 세상을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고, 혁신은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니까요.”
「노벨교육상 금상 구수진. 2036년 2월 10일 HERO63 일동」 구수진 교사의 책상 위에 놓인 종이상패가 반짝거리는 듯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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